《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더디의 감정일기 2 - 나의 자리

by 지혜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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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나왔어요.


극장 안이 환해졌는데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어요.


열다섯 살이었어요.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삼면이 강으로 막힌 곳으로 보내진,

그... 어린.. 여린.. 단종.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자리였어요.


웃는 장면에서 가장 많이 울었어요.

환하게 웃을수록

끝이 가까워지는 것 같아서요.


처음엔 감시자였던 엄흥도가

어느 순간부터 그냥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돼 있었어요.


아무도 거두지 말라고 했던 자리를

결국 혼자 지킨 사람.


극장을 나왔는데 괜히 눈물이 났어요.


저도 가끔 제 자리가 버거울 때가 있거든요.

대단한 자리도 아닌데,

잘해야 할 것 같고, 무너지면 안 될 것 같고.


그래도 오늘 하루,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들,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이 자꾸 생각났어요.


혹시… 보고 나서 한참 자리를 못 뜬 장면이 있으셨나요?





코끼리 이야기

코끼리는 다친 가족이 생기면 무리의 속도를 늦추고, 그 곁을 에워싼 채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아요. 건강한 코끼리가 앞이나 옆에 서서 길을 터주고, 코로 몸을 받쳐 일으키거나 천천히 함께 걸음을 옮기기도 해요. 위험이 느껴질 때는 주변 코끼리들이 둥글게 둘러서 보호벽을 만들고, 낮은 울음과 몸짓으로 서로를 진정시키죠.


죽은 동료나 가족의 몸, 혹은 뼈를 찾았을 때도 코끼리들은 코로 천천히 어루만지며 긴 시간 그 주변을 맴돌아요. 몇 해가 지나 하얗게 바랜 뼈가 되었는데도 다시 찾아와 가까이 다가가 냄새를 맡고, 조용히 서 있는 모습이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어요.


더디에게 지킨다는 건 모든 걸 해결해 주는 게 아니에요. 다치고 지친 존재 곁에서 속도를 맞추고, 자리를 함께 지켜주는 일이에요. 말이 아니라 몸으로, 끝까지 곁을 내어주는 것. 그게 버티는 사람 옆에서 함께 버텨주는 또 하나의 위로라는 걸, 더디는 알고 있어요.


감정이 꺼지지 않는 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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