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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짱 Mar 28. 2022

002. 내가 프리가 된 이유


회사를 퇴사하는 날 나는 인스타에 이런 글을 올렸다.



갑작스럽게도 오늘을 끝으로 저는 ooo에서 퇴사하게 되었습니다.

가끔 퇴사를 상상하면 웃으며 떠날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웃는 마지막도 아니라 아쉽기는 하네요. 그동안 저에게 퇴사 안 하냐, 이직할 때 되지 않았냐 하는 말을 건네는 분들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저는 우스개 소리로 “갈 때 됐지” 하면서도 이곳에서 10년이고 20년이고 책을 만들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답니다. 순진하게도.

...

아직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아서 사실 내일이 캄캄하긴 합니다만, 어떻게든 되겠지요.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당분간 쉬며 지나간 날들과 다가올 것들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3주 후 프리랜서로 전향하며 사무실을 마련했음을 알렸다. 다들 불도저다, 실행력 갑이다, 어떻게 그러냐, 별 말을 다 들었다. 놀라는 사람도 있었고 축하하는 사람도 있었고, 근데 그 중에 걱정을 표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것이 좀 특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프리가 된 이유는 간단하다.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회사에 입사할 생각을 하니, 정말 하기 싫었다. 

어디서 날 뽑을지 알 수 없었으나, 일단 지원부터 하기 싫었다. 

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기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잘 하는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퇴사 의사를 밝히고 한 달은 회사를 다니며 인수인계를 정리했다. 애정하는 작가님들에게 연락 드리고, 마무리 짓지 못한 저자들에게 사과 인사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과장님이랑 같이 갈래요" 하시는 작가가 이렇게 많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말씀만으로 정말 감사한 마음이었다.


처음에는 출판계를 떠나야지 생각 했었다.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무렵에 이미 사양산업이라는 말을 매일같이 들었다. 그리고 최근 2~3년간은 정말 피부로 와닿게, 책은 이제 정말 소수의 취미가 되어버렸구나, 느끼고 있었고. 편집자는 기본적으로 프로젝트 매니저이기도 하고 카피라이터이기도 해서 그동안 했던 일들에서 새로운 직무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실제로 어떤 벤처 기업에는 이력서를 내기도 했다. 3~5년차 경력자를 뽑는 자리였기 때문에 될 거라는 기대는 안 했지만, 나 정도 경력이면 적어도 면접은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서류 전형 탈락 통보를 받던 날, 이건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취준생'으로 돌아가기엔 난 너무 '과장'이었고, 너무 주도적으로 일을 해왔던 터였다. 이력서에 학력이며 자격증이며 다시 적고 다시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 상상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캄캄하게 느껴졌다. 


퇴사 직후 작가님이 프리로 알바라도 해보라며 한 업체를 소개해주었다. 그 업체 매니저와 만나서 저는 이런이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설명을 했다. 그도 프로젝트가 픽스된 것이 아니라서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기획의 요소로 사용하기 위해 미팅을 진행하는 듯 했다. 이런 것도 하실 수 있나요 묻기를 여러차례, 서로 웃으며 곧 다시 보자 하고 헤어졌다. 미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프리랜서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런 미팅으로 일을 따내는 것이라면, 작가에게 기획 제안을 하고 미팅으로 설명해 계약으로 이어지는 편집자의 업무와 그렇게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프리가 될까 고민할 즈음에 아는 편집자님이 그런 말을 했다. "일 달라고 말하는 거 어렵지 않죠? 그럼 프리 할 수 있어요." 나는 기본적으로 잘 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 일을 주세요,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말하는 게 어렵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프리랜서가 되겠다고 결심을 하자 마음이 무척 편안해졌다.


그 뒤로 한달은 정말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게 흘렀다. 

세네 달 정도 부동산을 보러 다녀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일찌감치 매물을 살폈는데, 돌아다닌지 3~4일 만에 딱 내가 원하는 모습에, 적당한 가격의 자리를 발견했고 바로 계약했다. 집 근처에 넓고 대로변이었고 층을 혼자 쓴다. 물론 화장실도 전용이다. 싱크대도 있고 보일러가 있어 바닥 난방이 되었다. 자리를 결정하고 퇴직금 입금일에 맞춰 계약일을 조정했다. 한 일주일~열흘 정도 텀이 있었는데, 그 동안은 어떻게 꾸밀지 가구를 알아보고 인테리어를 살피고 그곳에서의 나의 모습을 디자인했다. 


12월 23일 계약을 마치고 마침내 입주.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가구를 들이고 그렇게 나는 외주 편집자가 되었다. 생각해보니, 여러 인맥에 기대 "저 외주 하려고요, 일 좀 주세요" 하는 것 보다, "편집 스튜디오 인의 정인경이라고 합니다. 교정, 편집 관련 외주 일 있으시면 의뢰 주세요" 하는 게 훨씬 진지해보일 것 같았다. 무게 자체가 다를 것 같았다. 나를 설명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사업자가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새벽에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서 스튜디오 인 이름도 아무렇게나 짓고 명함이랑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명함을 만들고 대충 일러스트레이터로 편집을 했다. 주소도 넣고 업무 범위도 넣고. 첫 명함이니까 힘을 주자 싶어서 딱 100장만 박을 발라 비싼 명함을 만들었다.


이런 것 하나하나도 나의 색으로 나의 취향대로 결정한다는 것이 즐겁고 자유로웠다. 

다행히도 바로 일이 들어와서 인스튜디오 사무실에서 교정을 보면서 '와, 이거구나, 이 맛에 자기 회사 차리는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 문득 문득. 무척 외로웠다. 후배도 팀장님도 없는 사무실이라는 게. 일하다 문득 혼잣말처럼 농담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없다는 게. 외로움이 갑자기 불쑥 고개를 들 때면, 혼자라서 좋다는 이 생각도 회사를 타의로 떠나야 했던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은 나는 회사를 더 다니고 싶었다. 이런 저런 상황들이 있어서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지만, 마지막에는 정말 퇴사하기 싫어서 뚝섬역 플랫폼에서 숨이 막히도록 엉엉 울기도 했다. 회사에 미련이 남았다기보다, 주도적으로 가꾸던 브랜드를 손에서 놔야 한다는 것이 너무 서럽고 억울했다. 


퇴사 후 조금도 쉬지 않았다. 계속 준비하고 궁리하고. 결국 사무실을 차리고 혼자 일하고 있다. 어쩌면 나는 사건을 곱씹기 싫어서, 내가 상처받았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바쁘게 움직인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런 생각을 하기 싫어서 더 일을 벌리고, 더 바쁘게 생활한다.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지금 내가 하는 일에도 자신이 없어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아서 무서워진다. 그래서 일부러 더 나를 지킬 수 있는 공간 만들기에 힘을 들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일은 벌어졌고, 나는 이제 혼자다. 애초부터 혼자였는지도 모른다. 농담을 건넬 상대도 없고 작업물을 피드백해줄 동료도 없다. 하지만 혼자 가꾸는 공간이 있고, 해가 잘 드는 창이 있다. 어쩌면 나는 식물을 키우는 데 기어코 성공할지도 모른다. 베이킹이 새로운 취미가 될 수도 있다. 공간을 마련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일단은, 일단 오늘은 여기서 일어날 일들이 너무너무 기대되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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