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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짱 Apr 12. 2022

004. 인사가 하고 싶어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던 규칙은 '건물 안에서 만난 사람에게는 그게 누구인지 몰라도 무조건 인사해라'였다. 이건 처음 입사했을 때 팀장님이 전달해준 주의할 점 중에 한 가지였다(나중에 들어보니 그런 지침을 말로 전달한 건 그 팀장님이 유일했던 것 같고, 그 점에서 감사함을 느낀다).

나는 여기에 나만의 규칙을 덧붙였는데 '하루에 세 번을 마주쳤다 할지라도 처음 만난 것처럼 다정하게!'였다. 말로 안녕하세요를 하지 않더라도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숙였다.

명백하게 상대가 인사를 했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이 규칙은 사실 암묵적으로 굳어진 사내 분위기에 가까운 것이라 이걸 규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았을 것 같다. '오가다 마주친 사람에게 인사하는 것은 상식 아니야?' 할 수도 있지만 의외로 또 그렇게 생각 안 하는 사람도 많다. 사옥이 워낙 아담(?)하고 엘레베이터가 없어서, 계단에서 수없이 다른 팀 직원들을 마주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라서 이런 문화가 자리잡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회사가 이전을 하고 다른 건물에서 근무하던 본부와 같은 층을 쓰게 되었는데 그들은 먼저 인사를 하지 않을 뿐더러, 인사를 해도 마주 인사해주지를 않았다. 우리 본부의 다른 직원들도 이 얘기를 꺼낸 적이 있으니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니었던 거 같다. 

그들에게 인사는 규칙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기에 건물이 커지고 조직이 개편되면서 다른 층을 오가는 일이 적어졌고, 층을 오가는 통로도 여러 군데로 나뉘어서 굳이 통로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일 자체가 많이 사라졌다. 그래도 우리 본부 사람들은 화장실이나 탕비실이라도 갈라치면 좁은 골목에서 자주 마주치기 마련이었는데 그때마다 너무나도 다정하게, 웃음기를 띄고 인사를 나누었다. 다른 본부와 거리가 생기면서 우리 본부끼리는 더 단단해진 느낌이었다.

인사는 서로를 묶어준다.

이상한 유대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저 사람과 내가 아는 사람이라는 것, 우리가 한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것.

인사를 하면서 우리는 상대가 해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안심하고 나도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어필한다. 아무 뜻 없는 안녕하세요 한 마디가 하루를 기분 좋게 만들기도 한다. 게다가 사적인 대화 한 번 한 적 없는 직장 동료도 매일 인사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친근하게 느끼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직장에서는 인사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공동체로 묶여 있지만 실체는 확인하기 어려운 유대감을 느끼기 위해서라도.

다시 나의 경험으로 돌아가서 내가 인사하는 문화를 좋아했던 것은 이것이 그 회사 사람들의 특징일 수도 있지만, 인사를 하는 그 순간에 모두 다정하고 슬며시 미소를 띄고 있어서 '괜찮아' 혹은 '너를 응원하고 있어' 하는 마음을 전달받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혹시 나만의 착각이라고 해도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느꼈다. 일때문에 초조하거나 사람때문에 피곤할 때도 복도에서 한 번씩 주고받는 '안녕하세요' 한 마디, 고개 끄덕임, 잔잔한 미소가 너무 큰 위로가 되었다.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느낌, 어딘가에 속한다는 느낌.

혼자 일하니 인사를 할 일이 없다.

대화를 할 일이 없는 것보다도 인사할 일 없는 것이 더 아쉽다.

이제는 인사란 용건이 있을 때 건네는 것이 되었다.

전처럼 아무 의미 없이 그냥 '네가 거기 있다는 걸 알고 있어'라는 의미로 건네는 인사는 이제 나에게 없을 것 같다.

그때의 다정함을 다시 느낄 방법은 뭐가 있을까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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