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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름 Oct 29. 2020

한국에 있지 않아서 마음이 무거운 날

어설퍼도, 미국살이.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라는 고전영화에 나오는 "Sunrise, sunset"이라는 유명한 노래가 있다. 주인공의 여러 딸들 중 첫째의 결혼식 장면에서, 뭔가 분주하고 축복과 기쁨이 가득할 것이라는 나의 짧은 생각과 반대되는 차분한 분위기의 음악이 흘러나와 의아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인생의 깊이 있는 체험이 전무한 20대 초반의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노래였다. 해 질 녘에 울려 퍼지는 "Sunrise, sunset... sunrise, sunset..." 합창은 그 풍부한 하모니와 함께 자녀를 다 키워낸 부모의 연륜과 추억과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전달한다. 2020년 4월27일, 나는 종일 이 음악이 떠올랐다.



 1년 정도 기다려 얻은 우리 아이는 나의 태속에 자리를 잡자마자 그 까다로운 성미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나는 극심한 입덧으로 식사는커녕 밥 냄새만 맡아도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고, 어찌어찌 식사를 조금 하고 나서도 이내 달려가 게워내고 마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먹어 소화시키는 것이 없으니 하늘이 핑핑 돌았지만 그 와중에도 직장에서 죄인은 되기 싫어 밤늦게까지 스스로를 달달 볶아대고는, 친정엄마에게 전화해 엉엉 울던 짐승 같은 나날들이었다. 손주는 커녕 딸을 잡겠다 싶었던 친정엄마의 강권에 나는 못 이기는 척 일주일 병가를 내었었다. 멀리 친정에서 용인까지 한달음에 오신 엄마는 나를 조수석에 거의 눕히다시피 앉히고는 네 시간 거리를 거의 여덟 시간에 걸쳐 천천히 운전해 가셨다.

 

 그 와중에도 식사시간은 다가왔고, 엄마는 차를 외갓집으로 몰았다. 대전 어드매에 있는 허름한 빌라에 들어가면서 나는 오늘 식사도 물 건너갔다고 생각했다. 외갓집에서 은근히 베어 나오는 콤콤한 냄새가 내 속을 또 뒤집어놓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외할머니께서 말없이 한상 가득 청국장찌개와 물김치, 김 그리고 계란찜을 차려주시고 곁에 앉으셨을 때만 해도 심드렁했지만, 예의상 계란찜을 한술 떠서 입에 넣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어어...? 완전 맛있어...! 그리고 거짓말처럼 허겁지겁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계란찜은 아주 뚝배기의 바닥까지 벅벅 긁어서 끝까지 먹어치웠다. 입덧은 온데간데없었다.


 이런 추억이 있어서 그런가, 나는 까다로운 내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의 엄마, 그리고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된다. 해는 쉼없이 뜨고 지고, 시간은 시작도 끝도 없이 흐르고 흘러서 한 여자가 딸을 낳고, 또 그 딸이 딸을 낳고, 또 그 딸이 외할머니의 집에서 밥을 먹으며 입덧을 달랬다. 아, 나의 아이가 또 딸이었으면 이야기가 참 완벽했을텐데! 현실은 그렇게 의도한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나는 아들을 낳았다. 우리 외할머니는 태어난지 며칠 안 된 증손주를 한참동안 들여다보시다가 "아기 밥줘라."한마디 하시고는 대전 외갓집으로 향하셨다. 아기의 생김새가 어떻다 울음소리가 어떻다 언급일랑 하나도 하지 않으시고 말이다.




 그 날 아침 일찍, 가장 가까운 사촌동생이 한국에서 전화를 해왔다. 외할머니께서 심근경색으로 몇시간 전에 주님품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엄마에게 부랴부랴 전화해서 어째서 알려주지 않으셨는고 하니, 어차피 한국으로 급히 와봐야 2주동안 격리되었다 만날 수 있고 하니 아예 연락을 않으려고 했다고 하셨다. 아무래도 미국에서 지내면 이런일이 있겠지 생각은 했지만, 막상 이렇게 코로나와 함께 일이 부닥치니 더욱 죄인같은 마음이 되었다. 만약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그래서 도리를 다 할 수 있었다면, 그러면 마음이 조금은 편안했을까? ..


 친정엄마랑 통화하면서 "우리 엄마 이제 어떡해? 세상에 엄마 없는 사람이 제일 불쌍하다는데, 우리 엄마 불쌍해서 어떡해?" 하니 엄마가 허허 웃으시면서 엉엉 우셨다. 나는 엄마를 따라 엉엉 울면서 하하 웃었다. 나를 억지로 미국에 데려온 것도 아니면서, 여보는 나에게 참으로 미안스러워했다. 너무 가라앉아있는 나를 데리고 무작정 차를 몰더니 근처 해변에 차를 세웠다. 눈 앞에 펼쳐진 너른 바다와 수평선을 바라보니 마음이 시려온다. 저편 한국에서는 이제 발인준비로 정신없으시겠지? 여기서 나는 뭐하고있는걸까. 또 해가 진다, 그리고 내일은 또 해가 떠오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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