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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정훈 Sep 02. 2021

택시운전사 - 나, 그리고 우리 각자의 수많은 광주.

우리 각자 모두에게 광주는 어떤 곳일까. 아무 의미가 없는 사람이 분명 많을 것이고, 떡갈비와 한정식이 맛있는 곳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쓰린 상처와 같은 곳일수도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그저 지나가봤던 도시일수도 있다.


나에게 있어 '광주'는 단순한 호남의 도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항상 이야기했지만, 고등학교 1학년때 사회선생님이 보여주셨던 1980년 5월 광주의 사진들은 너무나도 참혹했고, 충격적이었다. 법치주의의 상식과 바른 민주주의의 당당함을 배우기도 전에, 잘못 작동된 공권력의 잔인함을 먼저 배웠다. 공권력에 대한 분노를 가지고 대학에 갔고, 이런 저런 것들을 배웠고, 어쩌다보니 이렇게 진보적인 정치성향을 가진 평범한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내 모든 정치적인 사고와 분노의 시작은 1980년 5월 18일의 광주, 그 사진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학습된 분노가 내 정치적인 성향을 만들어낸 셈이다.  



택시기사 만섭에게 광주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외국인 호구 손님이 상상도 못할 가격을 불렀고, 그 돈만 있다면 넉달이나 밀린 사글세를 낼 수 있었다. 사우디에 다녀와서 기본적인 영어는 할 수 있고, 저 외국인 호구를 데리고 무사히 통금 전에만 서울로 돌아오면 목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만섭에게 광주는 그런 곳이었다.



힌츠페터에게 광주는 궁금한 도시였다. 동료기자에게 한국에서 벌어진 이야기들을 구두로 전해들었고, 아시아 특파원으로서, 그 곳을 취재하고 알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직접 보고 기록해야 했고, 그렇게 무례한 택시기사를 견디면서 광주까지 가야헸다. 힌츠페터에게 광주는 그런 곳이었다.



각자 다른 목적과 생각으로 도착한 광주는 각자의 생각과 너무나도 다른 곳이었다. 그 들의 시선으로 광주로 함께 달려갔던 관객 모두, 광주의 말도 안되는 상황을 함께 목격한다. 어떤이에겐 돈벌이, 어떤이에겐 궁금함, 어떤 관객에겐 아무런 의미없던, 어떤 관객에게는 분노의 시작점이었던 그 도시, 그 시간을 함께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는 왜인지 모를 분노와, 뜨거움과, 울컥함을 함께 느끼게 된다.



(사족 : 혹자는 외부인의 시선 그 이상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전형적인 감정선을 따라가는 영화를 비평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관객의 몰입도와 공감대가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송강호의 연기가 빛나는 시간은 그 때부터다. 이 영화의 모든 감정선은 오로지 송강호가 이끌어가고 있다. 영화 속에서 변해가는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 우리나라에서 1등인 송강호의 연기는 이 영화에서도 빛을 발한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식상함 속에서도, 그 단단한 감정선을 묵직하게 끌고 나간다. 순천 터미널에서 국수와 주먹밥을 먹고, 택시를 운전하다 신호 앞에서 주저앉은 그 모습은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 관객들의 당혹감과 분노, 그리고 울분을 그대로 표현해주고 있다. 바로 만섭 개인에게는 '돈벌이의 대상이었던 광주'가 의미있는 도시로 가슴에 쿵! 하고 들어차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울분과 부채의식을 느낀 순간이다.



결국 그 울분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분노와 울분은 해소되지 않은채 그렇게 말도 안되는 긴 시절이 지났다. 그리고 그 긴 시절동안 그 때 그 광주에 대한 잘못된 이야기들과 루머들은 갑절로 늘어났다. 하지만 그 곳에서의 희생과 그 곳에서의 뜨거운 감정들, 그리고 그들에 대한 부채의식들이 모여서 87년 6월의 그 투쟁을 만들었고, 2016년의 광화문을 만들었다. 이제서야 그 분노가 잘못되었던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겠다. 아무도 구하지 못해 몰래몰래 돌려보던 광주의 비디오와 참혹한 사진들이, 그리고 그런 것들을 통해 쌓여진 학습된 분노들이, 87년을 만들었고, 우리들의 민주주의를 만들었고, 끝내 2016년의 광화문을 만들었다는걸 나는 이제서야 제대로 알겠다.



딸의 구겨진 신발을 보며 우리에게 맞지 않았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보았고, 벗겨진 재식이의 신발에서 어그러진 민주주의와 공권력의 폭력을 보았다. 그리고 딸에게 사준 그 이쁜 구두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본다. 과연 2017년,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그렇게 이쁜 신발처럼, 딱 알맞게 우리에게 다가와 있을까.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을까. 부디 그 이쁜 신발처럼, 우리의 민주주의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하는 영화. 장훈감독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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