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삐약이 Oct 09. 2024

3. 시각장애인과 옷

시각장애인이 옷을 입는 방법

사람들에게 있어서 의복은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색을 잘 맞춰 입으면 세련 돼 보이기도 하고, 그곳에서만 입어야 할 옷들도 있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에게 있어 옷 입기는 감각으로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눈이 조금 보이는 시각장애인들은 색을 보고 옷을 선택해 입지만, 눈이 전혀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은 색은 포기하고 옷을 고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시각장애인들은 어떻게 옷을 고르고 입을까?


나는 평소 옷을 고를 때 색을 잘 모르므로 누군가 골라주는 옷을 자주 입는 편이다.


그렇다보니 내가 옷을 입고도 옷이 어떤 색인지 모르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렇다고 해서 불편한 건 아니다. 옷을 입는 것도 나름의 노하우가 있기 때문이다.


전혀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 옷을 입을 때 중요한 건 옷을 거꾸로 입지 않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옷을 입을 때 앞이 어디인지, 뒤가 어디인지를 늘 손으로 더듬어 확인 한 후에 옷을 입는다.


웃옷의 경우 앞이 파인 곳을 중심으로 해서 옷을 입거나 단추가 달린 부분을 앞으로 해서 옷을 입는다.


바지도 마찬가지로 특정 표시가 있는 부분을 앞으로 하여 입는데, 구별 할 수 없는 옷에는 표시를 해두고 입는다.


가끔 앞 면과 뒷면이 어디인지 모르는 옷은 가족들에게 물어보는 경우도 자주 있다.


하지만, 그것도 안 되는 게 딱 하나 있는데 바로 양말이다.


양말은 표시를 하기도 애매하고 신고나서도 짝이 바꼈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양말을 신을 때 늘 한 짝의 양말을 내 방식대로 개어 둔 후에 꺼내 발을 넣는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일상이지만, 시각장애인에게 있어 옷이라는 건 늘 미지의 영역이다.


새로운 옷이 생기면 먼저 앞과 뒤를 확인하고 입는데, 가끔 잘못 입어서 거꾸로 입는 경우도 있다.


요즘은 옷을 보면 표시가 안 된 옷들이 있다. 그런 옷을 볼 때면 조금 답답하다.


보이는 사람들은 바로 입지만, 그 옷을 산 시각장애인에게 있어서 그 옷은 입기 어려운 미지의 옷이 돼 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시각장애인은 옷에 무언가가 묻어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옷에 핫초코가 흘러도 모르고 있다 발견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고, 흘린 지 조금 지나서야 알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옷에 뭔가를 묻히고 다니는 것을 봤을 거라고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하고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내 옷에는 밝은색 위주의 옷이 없고 어두운 색의 옷이 많다.


무언가 묻어도 티가 안 나는 옷을 선호하는 것도 그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 번은 어머니께서 내가 옷에 무언가를 묻히고 온 걸 보고 웃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넌 몰래 음식 먹는 건 못할 것 같다. 다 들키잖아.”


그 말이 맞다. 나는 무언가를 먹어도 금방 티가 나고 다들 알게 된다.


때로는 주변에서 “너 뭐 묻었어” 라고 하면 나도 웃으면서 “어? 정말? 알려줘서 고마워” 하고 인사를 하기도 한다.


무언가 묻었을 때마다 속상해 하고 힘들어 하는 것보다 ‘아, 오늘도 흘렸네’ 하고 담담히 받아 들이는 게 낫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각장애인이 어두운 색만 좋아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밝은색을 좋아하기도 하고, 색을 모른다면 주변인들에게 물어서 옷을 사기도 한다.


오늘도 나는 옷을 입을 때 손으로 옷을 만져본다. 그러면서 옷의 감촉과 입는 법을 알아 간다.


아마 이것은 내가 평생 해야 할 일이 될지도 모른다. 또, 무언가를 묻히는 것도 평생 이어 갈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웃으면서 살아 가고자 늘 노력한다.


날이 어느정도 추워지고 옷들이 길어지는 가을이 찾아 왔다.


이번 겨울에는 예쁘고 멋진 옷을 하나 사 볼 예정이다.

이전 01화 1. 글을 시작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