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눈이 오는 날

눈에 대한 나의 생각

by 삐약이

며칠 전부터 눈이 내렸다. 그것도 아주 많이. 원래 나는 눈에 그렇게 신경을 안 쓰는 편이었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일을 갈 때마다 눈 때문에 늦을까 걱정했고 눈이 조금만 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냈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부터 날씨가 안 좋아서인지 장애인콜이 잡히지 않았다. 겨우 9시가 넘어 차가 잡혓고, 차를 타고 복지관 프로그램을 하러 갈 수 있었다.

그렇게 프로그램을 마치고 집에 오기 위해 다시 차를 잡앗는데 그 전부터 눈이 내리고 있어 쉽게 잡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차가 내 생각보다 빨리 잡혔고, 차를 타기 위해 밖으로 나간 순간 나는 눈 폭풍을 만나야 했다. 바람에 몰아치는 눈보라를 뚫고 차를 탄 후 집에 와 오늘 가기로 했던 병원과 학원을 모두 접고 집에 있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눈이 오는 날에는 어디를 가도 장애인콜이 잘 안 잡히니 집에 있는 게 나앗다. 병원에 가는 것 역시 약이 있어서 아직은 괜찮았기에 다음주에 가기로 마음을 정할 수 있었다. 만일 Adhd약이 다음주까지 먹을 게 없었다면 오늘 눈길을 헤치고 병원에 가야 했을 것이다.

어릴 때는 눈이 오면 참 좋았다. 아이들과 어울려 눈싸움을 하고 신나게 옷을 적시며 썰매를 탄다고 하면서 미끄러지기를 반복했다. 때로는 눈사람을 만들고, 눈 위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 오는 날을 만끽하곤 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눈이 오면 이래저래 움직이기가 참 불편해져서 눈은 오히려 비보다 못한 신세가 됐다.

시각장애인들에게 있어 비보다 무서운 게 바로 눈이다. 비는 어느정도 커버도 되고, 움직일 때 미끄러움이 덜하다. 반면 눈은 미끄러움이 배가 되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시야를 방해하는 게 더 커서 위험할 수 있다. 그래서 시각장애인들은 눈보다 비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나도 그렇다. 어릴 때 좋아했던 눈을 이제는 그저 무덤덤히 보게 됐다. 나이를 먹어 갈 수록 내가 편하게 다닐 수 있는 동선을 찾듯 눈이 오면 더 신중해지고 더 예민해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내일은 눈이 더 온다고 한다. 우선은 집콕을 할 예정이지만,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정말 난감했을 거다. 부디 아침에 오지 말고 오후에 오기를... 그나저나 내일 잠시 병원에 가야 하는데 눈길을 뚫고 갈 생각을 하니 조금 씁쓸하다. 좋았던 게 이제는 아니게 되는 그런 기분을 느낄 때마다 어릴 때와는 달라진 나를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ㅛ해진다.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만큼 사람들에게 여러 생각을 가져다주는 눈은 어쩌면 우리의 마음과 같을지 모르겠다. 마음이 편할 때는 좋앗다 불편하거나 화가 나면 안 좋아지듯이 눈 또한 그렇게 여겨지는 게 아닐까?

눈이 내린다. 오랜만에 내리는 눈이다. 이 눈이 내려 땅을 적셔줘서 땅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으면 하고 생각해 본다.

keyword
수, 금 연재
이전 10화장애가 있어도 변함 없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