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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ng Oct 07. 2022

상관없는 거 아닌가?

장기하 산문

상관없는 거 아닌가?

1판 1쇄 2020년 9월 11일

1판 12쇄 2022년 5월 9일


지은이 장기하

펴낸곳 (주)문학동네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210)


- 대표적인 것이 취중진담이다. 술을 마시면 더욱 솔직하고 진실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얘기인데, 나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술에 취한다는 것은 결국 그냥 좀 멍청해지는 거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게 내가 이십 년 정도 마셔오며 내린 결론이다. 멍청해진 상태에서 하는 이야기가 평소보다 더 진실된 것이라면 좀 이상한 일 아닌가. 물론 멀쩡할 때에는 용기가 나지 않아 하지 못했던 말을 술에 취하면 할 수 있게 되는 일이 종종 있기는 하다. 뇌에서 술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곳 중 하나가 자기억제를 관장하는 부위라고 하니, 자연스러운 일일 테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밝히는 마음이 더 ‘진실된’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야기를 꺼내기 주저하는 마음도 어쨌든 진심이다. 그 마음을 극복할 수 있는 요기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진실된 대화란 그렇게 상충하는 여러 진심들을 빠짐없이 마주한 후 적절한 방식으로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뇌의 일부를 마비시키고 특정한 진심만을 꺼내놓는 것과는 다르다. [26p]


- 만약 내가 “나는 적어도 하루에 한끼는 흰쌀밥으로 먹어야 힘이 나”라고 말한다면, 흰쌀밥이 건강에 안 좋다고 굳게 믿는 친구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기분 탓이야.” 이 표현이 널리 쓰이고 있다는 것은, 아마도 많은 이들이 이 ‘기분’을 좀 하찮게 여기고 있다는 뜻일 터다. 하지만 나는 기분만큼 믿을 만한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의 기분이 어떤지를 잘 살피는 일이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생에서 좋은 기분보다 중요한 것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52p]


- 나는 밴드를 했던 것이 아니다. 밴드를 ‘믿었다’. [106p]


- 나는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산다. 그런데 이것은 달리 말하면 하고 싶은 것이 없을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한다. 물론 공연이라든지 녹음이라든지 정해진 일정이 있을 때는 그럴 필요가 없지만, 그 일정들도 따지고 보면 매일 고민한 결과로 생긴 것들이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나는 잠에서 깨는 순간 출근을 하는 셈이다. 정신이 들자마자 ‘너는 무엇을 하고 싶냐’고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물음에 나 자신은 그리 자주 대답해주지 않는다. 대답을 듣더라도 불명확하고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뾰족한 수 없이 하루를 지나 보내는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 너무 실망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크게 좌절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그리고 하루의 어느 순간에는 스스로 퇴근해야 한다. 그런데 이 퇴근이라는 것도 간단하지 않다. 정해진 장소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뇌만을 이용해 내 뇌를 퇴근시켜야 한다. 그것은 대체 어떻게 하는 거냐고? 나 역시 아직 연구하는 중이다. [116 ~ 117p]


-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는 순간 사라져버리는 가치도 세상에는 있는 것이다. [153p]


- 적어도 아직까지는 내 일상의 일부를 콘텐츠로 만들고 싶지 않다. 일상이 콘텐츠가 되는 순간, 그것은 더이상 일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155p]


- 카메라로 찍어도, 인스타그램에 올려도, 유튜브 콘텐츠로 만들어도, 삶은 결국 증발한다.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해 몇 시간짜리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넷플릭스에 공개한 인생이라 해도 예외는 될 수 없다. [158p]


- 우리말을 더렵허서는 안 되고 순수한 상태로 보호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차피 순수한 언어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다만, 가사는 마음의 표현이지 않나. 마음이 말이 되고, 말이 음악이 되고, 그 음악이 다시 마음에 가닿는다. 일상생활에서 늘 사용하는 자연스러운 말에 담긴 운율을 고스란히 가사에 담으면 그 과정은 물흐르듯 부드러워진다. [167 ~ 168p]


- 나는 자연을 통제할 수 없다. 헤일, 지진, 태풍 앞에서 내가 한 명의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인공지능도 이제는 점차 일종의 자연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자연은 독자적인 생명력을 가지고 움직인다. 그리고 굉장히 힘이 세다. 그 두 가지 점에 있어서는 인공지능이나 바다나 별다를 바 없지 않은가. -중략- 바다위에서 서퍼가 할 수 있는 일, 딱 그 정도가 세상에서 한 사람이 가진 몫이 아닐까. [213 ~ 214p]


- 이십대와 사십대는 마치 아프리카와 아시아처럼 다른 문화권인 것이다. [24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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