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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유나 Mar 22. 2018

리틀 포레스트

결국 내가 찾아내야 할 나의 리틀 포레스트

정말 오랜만에 꼭 봐야겠는 영화가 생겼다. JTBC 뉴스룸에 출연한 배우 김태리와 손석희 앵커의 인터뷰. 예측할 수 없는 대답들에 오히려 손석희 앵커가 당황하는 모습이 재미있었고 김태리라는 배우가 인상 깊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매력 있었다 엄청. 일본 원작영화 리틀포레스트_여름과 가을, 리틀포레스트_겨울과 편을 VOD로 예습하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김태리, 류준열, 진기주, 문소리_ 출연하는 배우들도 모두 마음에 들었다. 이 정도면 봐야겠는 영화다. 


"생각해보니 한 해의 시작과 끝은 겨울"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서울에서만 살았으니 사전적 의미의 내 고향은 country가 아닌 city겠지만. 아빠의 고향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엄마의 고향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기억도 안나는 어린 시절부터 대학생이 된 후로도 부모님과 함께 찾아갔던 그 곳들이 감정적 의미의 진짜 내 고향이다.


아빠의 고향이 내 고향인 이유. 설 명절에 눈이 많이 오면 넓게 펼쳐진 빈 논은 고요하게 덮이고 추석 명절 즈음의 지평선을 넘어가는 석양은 도시의 그 것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때때로 금강 하구둑 근처의 철새 떼가 내 머리 위를 떼지어 지나가면 돈 주고도 못 볼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고 낫이 그대로 걸려있는 할아버지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는 게 좋았다. 아빠가 어린시절 썰매를 타고 놀다는 할아버지 댁 뒷동산의 키 큰 소나무들은 내 어린 시절 역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엄마의 고향이 내 고향인 이유.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_ 서울에 다녀가시는 할아버지를 따라 버스를 타고 외갓집에 내려갔다. 한 여름 뙤약볕 아래 한 달 넘게 시골 외갓집에서 지 나는 다시 만난 엄마가 깜짝 놀랄 정도로 새카매져서 서울로 돌아왔다. 사촌 언니, 육촌 언니들과 산으로 들로 열심히 쏘다녔다. 손으로 덥석덥석 매미를 잡기도 하고, 아직 익지도 않은 호두며 밤 열매를 따다가 괜히 들쑤셔보기도 하고, 그때만 해도 물이 참 맑았던 개에서 놀다가 종아리에 붙은 거머리를 뒤늦게 발견하고 엉엉 울기도 했다. 밤이 되면 할아버지마당에 모깃불을 피워주셨고 나는 평상에 누워 할머니가 주시는 수박이며 포도며 복숭아를 신나게 받아먹었다. 20년도 더 지난 기억인데 그 때 내 눈으로 쏟아지던 밤하늘은 아직도 사진처럼 영상처럼 기억 속에 생생하다.


그 때는 잘 몰랐는데 이제 와서 보니 유년시절의 저 모든 경험들은 축복이었다. 내 또래 대부분 나와 같은 경험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내 기준에서의 착각이었다.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

"유우타, 넌 왜 코모리로 돌아왔어?"

"도시 사람들은 코모리랑 말하는 게 달라. 사투리를 얘기하는 게 아니야. 자신이 몸으로 직접 체험해서 그 과정에서 느끼고 생각하며 배운 것. 자신이 진짜 말할 수 있는 건 그런 거잖아. 그런 걸 많이 가진 사람을 존경하고 믿어.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주제에 뭐든 아는 체하고 남이 만든 걸 옮기기만 하는 놈일수록 잘난 척해. 천박한 인간이 하는 멍청한 말 듣는 데 질렸어. 난 말야, 남이 자길 죽이는 걸 알면서도 내버려두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진 않았어. 여기를 나가서 처음으로 코모리 사람들을, 우리 부모님을 존경하게 되었어. 참 말을 할 수 있는 삶을 사셨구나 하고."

'유우타는 자기 인생을 마주하려고 돌아온 것 같다.'

"나의 인생을 마주할수 있는 곳이 결국 나의 리틀 포레스트"


도시의 삶은 공허하다. 내가 아닌 나로 살아야 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내가 되고 싶지 않은 나로 살아야 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 구두보다는 운동화가 좋은데 7일 중에 5일은 구두를 신어야 한다. 게다가 지금의 삶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자꾸 생겨나는 것 같다. 아니 사실은 내가 그 이유들을 자꾸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다.


애초에 속도에는 별 관심 없었다. 결국은 방향인데 언제든 마음먹으면 틀어버릴 수 있으니 아직은 조금 더 버텨보자는 마음인 건지 아니면 이미 확신은 서있으면서도 단지 실행을 못하고 있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고민이 길어져봤자 좋을 건 없는데. 어쩌면 지켜야 할 게 더 많아지기 전에 지금 결정해야 할지도 모를 일인데.


남은 인생이 길다면 그 긴 인생 중에 1-2년 정도 멈춰있어 보는 건 지나고 보면 별 일 아닐 테고, 남은 인생이 짧다면 더욱이 당장의 1-2년은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인데. 나는 왜 자꾸만 내 인생의 리틀 포레스트를 우선순위 저 뒤로 미뤄두는 건지. 대체 뭐가 문제인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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