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산부인과에 가서 미레나 제거 시술을 받고 왔다. 미레나는 우수한 피임효과를 가지고 있는 장치로, 자궁 내에 설치하는 루프와 비슷한 모양을 가지고 있고, 매일 극소량의 황체호르몬을 분비하여 임신을 막는 역할을 한다.
나는 5년 전, 캐나다에서 미레나 시술을 받았다. 둘째를 낳고 1년쯤 지났을 때, 극심한 복부 통증으로 근처 병원 응급실에 간 적이 있었다. 다양한 검사를 받으며, '아.. 내가 죽을병에 걸렸을지도 모르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응급실에 간지 두세 시간이 지났을 때, 의사가 다가와 한마디 했다. "아무래도 임신인 것 같습니다."라고. 그러면서 너무 초기라 임신수치가 높지 않으니 다시 한번 산부인과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 했다. 죽을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고, 남은 가족들은 어쩌나 생각하다, 그게 아니고 가족이 한 명 더 생길 거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사실 그렇게 기쁘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두 명의 아이를 출산할 때 모든 과정이 참으로 무난했다. 결혼 후, 지금쯤 첫 아이를 가지면 좋겠다 싶을 때 임신이 되었고, 입덧으로 인한 고생 없이 자연분만으로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다. 둘째는 지금쯤 둘째를 가져볼까라며 노력했을 때 딱 되지 않아 포기하려던 때에 임신이 되었다. 둘째도 자연분만으로 건강하게 출산했다. 출산 후유증도 없었고 모유수유도 잘했다. 그렇지만, 거기까지였다. 임신과 출산이 수월했다고 해서 셋째도 낳고 넷째도 낳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의사의 임신인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그 사실을 말할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기쁨의 눈물 또는 죽을병이 아니라는 안도의 눈물보다는 어딘가 모르게 절망의 눈물이었던 것 같다.
첫째를 낳았을 때도 그렇고 둘째를 낳았을 때도, 한 달 후 검진에서 만난 산부인과 의사선생님의 첫 번째 질문은 이거였다. "앞으로 피임은 어떤 방식으로 하실 예정인가요?". 나는 아니 뭘 그런 걸 물어보시나 사실 대답하기 불편했던 경험이 있다. 그러면서 나에게 각각의 피임법에 대한 확률을 설명해 줬던 기억이 난다. 그때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상담을 받았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엄마가 되는 과정은 참으로 힘든 것 같다고 느끼던 때였다. 응급실을 다녀온 날 밤, 고민을 했다. '이아이를 당연히 출산하는 게 맞는 거겠지?'라고 고민했다. 그렇게 자고 일어났는데, 생리를 하기 시작했다. 추측해 보건대, 건강하지 않은 수정란이 착상을 하지 못하고 유산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극심한 복부 통증을 느꼈던 것이라 짐작했다. 하룻밤 동안 양극을 오가는 감정을 경험한 날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바로 미레나 시술을 받았다. 또다시 임신이 되는 걸 막고 싶었다. 미레나는 5년 정도 유효한데, 5년이 지나면 새것으로 교체해 줘야 한다. 그리고 올 해가 바로 5년째 되는 해이다. 어느 정도 부작용에 대해선 알고 있었다. 살이 찔 수도 있고, 호르몬을 조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드물게 우울감을 경험할 수도 있고, 배가 아플 수도 있고 등등이 있었다. 나는 미세하게 얼굴과 손이 붓고 아랫배가 나온 것 같다는 개인적인 느낌 말고는 편한 점이 더 많았다. 생리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5년이 다가올 즘, 남편에게 말했다. 나는 새것으로 교체하고 싶지 않으니 네가 가서 시술을 받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올 초 남편이 비뇨기과에 가서 시술을 받았고, 나는 마음 편히 미레나 제거 시술을 받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5년간 내가 참 불편하게 살고 있었구나..라고. 길이 4cm, 직격 2mm의 아주 작은 물건이 내 몸에 있었을 뿐이데, 그걸 제거하고 나니 몸이 확실히 가벼워졌다. 바로 몸에 부기가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몸이 가벼워지니 기분도 좋아지는것 같다.
나와 함께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서, 물건이건 생각이건 몸과 마음에 지니고 있을 땐 잘 모른다. 그걸 떠나보내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나를 짓누르고 있었는지 알게 되는 것 같다고 느끼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