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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Aug 16. 2024

나는 이곳에, 생각보다 많은 것을 남겨두었다

“한국으로 오기 전에 모든 것을 처분하고 왔어요"라는 대답은 사실이 아니었다. 정말 모든 것을 처분한 건 아니었다. 그랬었다고 기억이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고 한쪽 구석에 박스 몇 개 정도만 남기고 모두 중고 시장에 내다 팔았다고 생각했다. 막상 돌아와서 보니 내가 남겨두었던 박스는 생각보다 컸고 개수도 나의 기억보다 더 많았다.


목요일에 도착해서 일요일이 될 때까지, 지난 4일간 다시 캐나다에 정착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사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일주일간 렌트한 카니발에 이민가방 5개와 캐리온 가방 4개, 배낭 4개를 싣고 바로 한국식품으로 향했다. 고기와 야채는 동네에서 해결한다고 해도, 고추장, 된장, 간장, 젓갈, 굵은소금, 흰쌀, 고춧가루 등은 한국식품에서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곳에서 큰 한국식품은 고속도로 한 시간을 타고 나가야 있기 때문에 집으로 오는 길에 일부러 들러서 장을 봤다.


먹을 것은 해결되었지만, 식탁이 없다. 하루저녁과 둘째 날 아침을 바닥에서 해결한 후, 페이스북 마켓플레이스 (캐나다에서 당근처럼 쓰는 중고시장)에서 봐두었던 식탁을 사러 갔다. 식탁을 사러 가보니, 식탁보다 판매자의 집이 더 눈에 들어왔다. 하얀색 외관이 딱 내 스타일이었다. 지은 지 몇 년 안 돼 보이는 새 집으로 하얀색으로 칠한 나무로 마무리된 집이었다. 집주인에게 너네 집 너무 이쁘다고 칭찬을 엄청 해주고, 가격은 하나도 깎지 않고 바로 돈을 보낸 후, 렌터 카에 실어 왔다.  


매트리스는 새것으로 미리 주문해 둬서 우리보다 먼지 집에 도착해 있었고, 이제 식탁도 샀으니 다음 품목은 자동차를 선택할 차례이다. 차는 정말 어려웠다. 처음엔 팰리세이드를 원했는데, 렌터카로 미니밴을 타보니 자동으로 옆문이 열리는 건 신세계였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약 10년 동안), 나는 아이들이 문 열다가 옆 차를 찍을까 봐 항상 신경 써야 했다. “기다려, 엄마가 열어줄게”가 차 타고 내릴 때 하는 내 기본 대사였다. 그러다 카니발을 타 보니 옆으로 문이 열리니 내릴 때 손을 잡아주기도 좋고, 차 문 끝을 내 손으로 감싸지 않아도 되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우린 결국 중고 기아 세도나(카니발)를 집 근처 딜러샵에 가서 계약했다.


40살이 되면 BMW, Benz 정도는 탈 줄 알았다던 남편은 차 욕심이 없는 나 때문에 이번에도 경제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 5년 타고 다음 차는 꼭 좀 더 좋은 거로 하자고 돈 안 드는 말로 남편을 위로했다. 과연 그때라고 하이 엔드 고급차를 맘 편히 선택할 수 있을지 자신은 없지만, 우선 남편에겐 뭐라 위로에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차고에 있던 박스들을 하나씩 열어보며, 크리스마스 선물을 풀어보는 것 같다고 남편이 말했다. 냄비 세트, 도마 세트, 컵, 접시, 포크, 수저, 젓가락, 한국식품에서 비싸서 사 오지 않았던 김치통 여러 개, 등이 쏟아져 나왔다. 다 부엌 찬장에 넣고 보니, 한국에서 2년 동안 프라이팬 하나로 버텼던 세월에 비하면 갑자기 부자가 된 것 같았다. 나에게 이렇게 물건이 많았나 싶은 게 조금 정신없다고 느껴지도 했다. 떠날 생각을 하며 살면 물건 개수가 적은 게 나중에 떠날 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니, 아쉽다 생각하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20년 살던 토론토를 떠나 이곳으로 이사와 2년 가까이 살았다. 그리고 한국으로 가 2년을 살고 이번에 다시 돌아왔다. 앞집, 옆집 이웃들을 다시 만나니 내가 정말 지난 2년간 잠시 한국으로 떠나 있다 돌아온 것이 맞나 싶다. 많은 것이 그대로라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생각보다 많은 것을 남겨 두었었기에, 돌아와서 자연스럽게 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익숙한 곳으로 돌아왔지만,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캐나다 라이프를 시작하려고 한다. 도전하고 경험하고 배우면서 하루하루를 채워나갈 계획이다.


8인용까지 늘어나는 식탁. 의자 6개 포함해서 500불 주고 샀다.
미리 주문해 뒀던 아이들 메트리스. 침대 프레임은 배달을 기다리는 중이다.
우리가 떠나있었던 2년동안 키가 더 자란것 같은 나무
집으로 가는 길. 여름인데 저 멀리 산 꼭대기엔 눈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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