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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적응 중

by 안개꽃

도대체 예전엔 어떻게 살았던 걸까. 지금 보다 더 어린아이 둘을 키우며, 아침저녁으로 데이케어에 아이들을 직접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면서, 도시락도 가족 수대로 4개씩 싸면서, 아침도 해 먹이고 퇴근 후 저녁도 해 먹으면서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다 하면서 살았나 싶다.


약 3년 반 동안 정규직 없이 지내다가 다시 취직하여 일한 지 곧 6개월이 된다. 회사에서 6개월이 지나면 자동으로 defined benefit pension (연금플랜)에 가입된다고 연락을 해 주어 알게 됐다. 벌써 반년이 지났구나.. 시간이 총알같이 흘러간다.


정신없는 워킹맘은 오늘이 큰아이 농구게임 있는 날인줄 알고, 또 한 번 앞집 여자에게 문자를 날렸다. “오늘 너네 딸 경기에 가면, 혹시 우리 애 좀 데리고 농구경기하러 가줄 수 있어?”라고. 한참 후 문자를 확인하니, 오늘 경기가 있었냐면서 자기 딸에게 그런 얘기 못 들어서 몰랐다고 답장이 왔다. 다시 생각해 보니 오늘이 아니라 내일 이었다. ‘아.. 이런..’. 앞집 여자에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 “내가 완전히 날짜를 착각하고 있었어.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야. 미안해!” 그럴 수도 있지 싶다가도 나의 정신없음에 한숨이 한번 새어 나온다. 그러면서 내일은 누구에게 부탁하나 또 고민한다.


이번엔 집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친구집에 놀러 간다고 했는데, 내가 퇴근길에 데리러 가야 하나?”, 남편에게 답장이 왔다. “아니 자기가 걸어온다고 한 거 같은데? 그런데 난 친구 집에 가는 줄 몰랐어.”. 아침에 딸아이가 나에게 물어봐서 허락했는데, 집에 있는 남편에게 업데이트해 주는 걸 깜빡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 퇴근길에 또 전화를 했다. “큰 딸 집에 왔어?”. 좀 전에 막 집에 왔다고 한다. 다행이다.


초등학교 5학년인 딸아이는 점점 행동반경이 넓어지고 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곳도 많아지고 학교에서 소풍이나 졸업여행 갈 때는 이젠 엄마 아빠가 봉사활동 차원에서 따라갈까라고 물어보면 절대 싫다고 한다. 맘 놓고 놀 수 없기 때문이다. 다 컸다.


아직까지도 9-5 회사 생활에 적응 중이고, 바쁘고 피곤해서 일주일에 한 번 청소기 돌릴 틈도 겨우 찾는 생활에도 적응 중이고, 일주일에 두세 번 돌아가는 세탁기 내용물을 간간히 처리하는 속도에도 적응 중이다. 한국에서 하던 민화 그리기, 일주일에 두 번 수영 가고, 두 번 요가 다니기 생활은 꿈도 못 꾼다.


일 년 정도 지나면 적당한 발란스를 찾으려나 긍정회로를 돌려본다. 일 년 후면 아이들도 조금 더 자라 있을 거고, 회사일도 거진 적응 했을 테고, 다시 한번 글쓰기와 다른 취미생활을 틈틈이 끼어넣을 여유가 생각지 않을까 하고 상상해 본다.


그래도 한 가지 뿌듯한 것이 있다면 바쁜 와중에 열심히 집밥을 해 먹고 있다는 점이다. 김치도 여전히 담가먹고, 물김치, 치킨 무, 냉면 무, 등도 만들어 먹는다. 집안이 조금 너저분해졌고, 스케줄이 가끔 꼬이고, 분명 잤는데 아침에 왜 계속 피곤한 거지 싶은 날들이지만 잘하고 있다고 종종 셀프 칭찬해 주는 걸 잊지 않으려 노력하며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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