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을 샀다. 팥빙수에 넣어 먹을 팥을 만들기 위해서다. 남편은 팥빙수를 좋아한다. 한국에 2년 살았을 때도 어디 여행 가면 꼭 동네 팥빙수 맛집을 검색해서 찾아가곤 했었다. 캐나다 시골로 돌아오니 동네에 팥빙수 파는 곳은 없다. 그래서 집에서 만들어 먹기로 했다.
우선 연유를 사서 믹서기에 연유 한 캔을 붓고, 그 캔에 우유 세 번, 물 두 번을 더 넣어 섞어 준다. 처음엔 우유로만 섞었는데 그럼 얼음을 갈았을 때 너무 금방 녹아버려 물을 추가했더니 딱 좋았다. 얼음 큐브 얼리는 케이스에 얼음을 가득 얼렸다. 그리고 얼음 가는 기계도 하나 장만했다. 이제 팥만 있으면 된다.
예전에 팥죽을 해 먹으려 사고 남았던 팥이 생각났다. 잠들기 전 팥을 물에 불려놓고, 아침에 인스턴 팟 (전기 압력솥)에 팥을 넣고 30분을 설정했다. 소금 조금, 설탕 많이 대략 눈대중으로 때려 넣고 뚜껑을 닫았다. 압력이 올라간 후부터 30분이라 총 요리 시간은 약 50분 정도 되는데, 냄비에 만들면 팥이 들러붙지 않게 저어줘야 할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니 편하고 좋다.
드디어 팥이 완성됐다. 대구 여행 때 서문시장에서 사 먹었던 옛날 팥빙수 가게의 팥 맛이 난다. 훗 흐뭇하다. 얼음을 갈고, 집에 있던 망고도 잘라 얹었다. 서울 신라 호텔에 망고빙수가 11만 원 이라던데, 집에서 만든 망고빙수의 비주얼이 나쁘지 않다. 사실 너무 이쁘다. 듬뿍 올린 망고 위로 수제 팥까지 올리니 정말 먹음직스러운 망고 빙수가 완성됐다.
온 가족을 식탁으로 불렀다. 요란스럽게 사진을 찍고, 한입 먹어보는데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우와! 진짜 맛있다. 정말 파는 맛이야 ㅎㅎㅎ” 특히 남편이 매우 좋아했다. 그 후로 우리 집엔 시도 때도 없이 망고빙수 파티가 열렸다. 심지어 동네에 새로 사귄 한국 가족을 초대해 망고빙수를 대접하기도 했다.
이렇게 먹고 싶었던 음식을 정성스럽게 만들어 먹을 때, 딱 이런 게 호사스러운 행복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분명 나만 아는, 나만 느끼는 기분이지만, 조용히 채워지는 만족감이 있다. 이런 만족감은 공들여 만든 음식을 먹을 때 많이 느끼는 편이다. 그래서 더 열심히 요리를 해 먹는 것 같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가족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