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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를 하면 그 담엔 뭐 하지?

오늘의 아이디어 - 재능기부?

by 안개꽃

어제는 사슴 꿈에 일할 힘을 조금? 얻었다면, 오늘은 아침부터 스트레스받는 중이다. 뭐 어찌 보면 그런 거 가지고 그러냐 할 수도 있는 작은 일 일수도 있지만, 이런 작은 스트레스도 안 받을 수 있으면 안 받고 살고 싶은 요즘이다.

그래서 또 퇴사 후를 고민한다. 아 일 년만 일해보자 했는데 일 년도 힘들 것 같다. 나는 직업이 Financial Planner (QAFP)이다. 한국말로 하자면 공인 재무상담사인 것 같다. 은행에서 손님들을 만나 어떻게 하면 손님이 원하는 목표를 이루는데 도움이 될지를 같이 고민하고 설계해 준다. 그런데 이제는 은행에서 나와 좀 더 자유롭게 다른 사람들의 재정상 담을 들어줄 수 있으면 더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Fee for service라고 해서 시간당 상담비를 받고 일하는 재무 설계사들이 있다. 특정 금융상품을 직접 팔거나 개설해 주지 않고, 독립적으로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상담'만 해 주는 것이다. 시간당 돈을 받을 수도 있고, 손님의 총 투자 액수에 몇 % 이렇게 받을 수도 있다.


어제는 새 회사 트레이닝 코스 중 하나인, role play validation (역할 극) 이 있는 날이었다. 내 매니저는 관찰자로서, fiancial planner 인 나와 손님 역할을 하는 다른 직원의 대화를 듣고 나중에 나에게 피드백을 주는 역할이었다. 고등학교 때 이민 왔을 때도, 대학을 다닐 때에도 몇 번 해봤던 아주 아주 민망한 롤 플레이이다. 가상의 손님 부부 시나리오가 미리 주어졌다. 나이는 50대 이고, 남편이 최근에 30년 동안 일한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받았다. 퇴직금을 받을 예정이고 이 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또한 현재 우리 은행에 이런이런 투자 상품에 얼마가 가입되어 있다 정도로 요약된 상황이다. 가상 시나리오지만, 실제 손님과 대화한다고 생각하고 대화를 이어 가야 한다.

상상만 해도 매우 불편한 상황이지만, 도망갈 수 없으니 내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 또한 나에게 도움이 되리라 (비록 내가 퇴사를 앞두고 있더라도) 되뇐다. 아침부터 고민하고 있으니 역시 든든한 성훈이가 롤 플레이를 도와준다. 손님 역할이 아니라, 대화를 이끌어 나가야 하는 내 역할이 되어서 자기라면 이런 질문을 할거 같다면서 보여주는데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자 실제 3자 미팅 시간이 되었다. 2주 휴가 후 처음으로 매니저와 만났다. 다른 사람도 있으니 나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하지 못하고 잘 쉬다 왔냐고 간단한 안부 인사가 오고 갔다.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잘 쉬다 왔다고만 짧게 말했다.


화상 채팅으로 미팅을 한다. 실제 요즘은 화상채팅으로 은행 손님들을 많이 만난다. 처음 만나는 손님이니 은행 내에서 내 역할을 소개하고, 내가 어떤 도움을 손님에게 줄 수 있는지 먼저 설명한다. 그다음 우리가 대화에 사용할 은행 프로그램에 대해 짧게 설명하고 이제부터 손님 부부 상황에 대해 내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자연스러운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한다.

한 줄로 ' 뭘 도와드릴까요?'로는 부족하다.



지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무엇인가요?

그것들을 이루려면 얼마의 돈이 필요한지 아나요? (여기부터 나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지금 현재 자산이 얼마인가요? (보통 잘 모른다. 그러니 어떤 다양한 자산들을 어디 어디에 가지고 있는지 질문해서 다 더해본다.)

지금 자산으로 아까 원했던 것들을 이루는데 갭이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 상담한다.


매우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지만, 이 안에는 정말 다양한 대화가 오고 간다. 부양가족이 있는지, 자녀는 몇 살인지, 교육 관련 비용은 얼마로 예상하는지, 그에 대한 대비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부양해야 할 부모님이 있는지, 은퇴는 몇 살에 하고 싶은지, 본인이 상상하는 은퇴 후 라이프는 어떤 모습인지, 은퇴 후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드는 비용은 얼마인지, 지금은 어떤 일은 하는지, 연봉은 얼마인지, 현재 저축 상황은 어떻게 되는지, 집은 월세인지 자기 집인지, 자가라면 은행 융자는 있는지, 있다면 어느 은행에 얼마나 있는지, 집에 나가는 비용 포함에서 한 달 생활비가 얼마인지, 월급에서 그 액수를 제외한 남는 돈은 어떻게 굴리고 있는지 등등 질문하자면 끝도 없다. 그래서 어제 롤 플레이 미팅은 90분 짜리였다.


어제 미팅의 목표는 손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현재 경제 상황이 어떤지 파악하는 데 있고, 내가 제시하는 솔루션은 포함되지 않았다. 다행히 긴장하지 않고 잘 마쳤다. 난 긴장을 덜 하기 위해 화상 채팅 창은 다른 화면으로 가려 버리고 전화 통화를 하듯이 대화를 이어 나갔다. 얼굴을 안 보니 훨씬 나았던 것 같다. 요즘 화상 채팅하면서 든 생각인데, 저 사람하고 대화하는데 내 얼굴을 나도 볼 수 있으니 좀 어색한 거 같다. 보통은 실제 만나서 얘기를 한다면 내 얼굴을 내가 보면서 대화 하진 않으니 말이다. 화 상챙팅은 어쩔 수 없이 보이는 내 얼굴이 약간 신경 쓰이기도 하다.


우리 부부는 최근 몇 년간 회사의 월 정산을 하듯이 매월 체크, 연간 체크를 하면서 엄청난 성장이 있었다. 학자금을 갚고, 여러 가지 투자를 시작했다. 가진 자본이 없으니, 우리가 가진건 시간이라는 배짱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다 우리 같을 순 없지만, 적어도 본인 재정 상태를 파악해서 알고 있으냐 없느냐는 큰 차이인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를 알려주는 역할을 은퇴 후 내가 한다면 어떨지 생각해 본다.


오늘도 이렇게 일하는 시간에 딴생각을 열심히 한다. 조만간? 있길 바라는 퇴사 후, 자유로운 삶을 꿈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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