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을 향한 마음
전 남편과의 이혼은 시어머니와 같이 살면서 준비된 생각이었다. 그의 태도가 시어머니 중심적인 가정이었기 때문에 부부로서의 삶이 아니라 생각하고 15년 만에 약속대로 이혼을 진행했었다.
하지만 폭군 같던 그 남자는 재혼 후에 아이들과의 삶을 철썩 같이 믿고서 양육비를 챙겨온 순미에게 애들 둘을 보내라는 말과 협박은 청천벽력과 같은 사건이었다. 세상 일은 꼭 예기치 못한 데서 생긴다. 이삿짐을 준비하면서 순미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 일이 생겼는지 생각을 돌이켜보니 무엇이든지 마음 먹으면 하고야 마는 자신의 성격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과의 이별은 엄청난 일이었다.
순미는 전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공중전화기의 벨소리가 그를 호출하였다. 그녀의 음성은 풀어 죽어 있었다.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던 거라 면목이 없었다. 살아 있어도 살아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한 편의 시가 그 순간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고 그것을 떨리는 목소리 체념하 듯 전달했다. 뭐라고 해야 할지 순미도 사실할 말이 없고 면목도 없었다. 시의 한 구절을 인용하였다.
"정몽주의 시, 단심가 아시죠?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하는 시요!"라고 하면서 단심가를 읊었다.
"음. 알아." 작은 목소리로 대꾸하였다.
두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이들을 향한 사랑만큼은 엄마로서 영원히 변치 않을 거니까 염려하지 마세요. 미안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순미의 마음은 찢어지 듯 아팠다.
하지만 순미도 진심이었고 이것은 목숨과도 바꿀 정도의 확고한 마음이었다.
사실 이혼 한 것이 잘 못 되었다고 느낀 건 채 2년이 지나지 않아 깨달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사실 전 남편은 내성적인 성격으로 너무 대화가 없었다. 결혼 한 뒤로 대화다운 대화 한 번 제대로 못하고, 그 흔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이야기 한번 한 적이 없다. 싸우거나 큰소리 한번 안 내고 이혼을 통보했고 실행으로 옮겼다. 바쁜 일상이 서로를 서서히 멀어지게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어려서 바쁘고 시집살이 하느라 바빴다.
시어머니와 함께 살다가 나온 건 결혼 6년 차였는데 그때는 순미도 전 남편도 다 일에 빠져 있었다. 그러면서 발령받아 객지 생활 하게 되면서부터는 주말 부부라서 집에 오는 것도 고생이고 집에 오면 파김치가 되어 대화할 기력도 없이 되면서 체념하게 된 것이다.
한 번 잘 못 놓은 패는 어쩔 수가 없이 윷놀이처럼 끝나야 끝이 나는 것이었다. 인생에는 '백 도'가 없었다. 공동 양육자로서 최소한 인간으로서 양심 고백을 하였다.
"엄마와 자식으로 만나 엄마 노릇은 영원히 하겠으니 지켜보세요. 미안해요." 하며 아이들을 받아 달라고 부탁하였다.
"내 자식인데 당연하지... 애들이 상처받지 않을까 그게 걱정이지."
"그건 나도 마찬가지예요. 한 달에 한 번씩 애들과 만나기로 했으니 그때 애들을 고속버스 태워 보내주세요."라고 말하며 목이 메어 더 이상 말할 수가 없었다.
결국 학기 초가 시작되기 전 2월, 스산한 바람 부는 날이었다. 순미의 마음만큼이나 날씨도 스산했다. 1톤 트럭에 아이들의 책과 옷가지, 애들 옷장, 책상 등과 그녀의 결혼 앨범도 다 보냈다. 순미는 재혼하고 1년 반 밖에 안 지났고 송현진과 사는 이 집에서는 둘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리고 매월 1달에 1번씩 애들 만나는 날은 나가도 된다는 것과 작은 애가 혹시 수술을 하게 될 땐 2박 3일을 함께 병원에 가 있어도 된다는 규칙을 정했기 때문에 나가서 세 모녀가 만날 수 있었다.
두 딸은 엄마가 밉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지만, 너무 좋고 어쩌다 애들 입장에서도 워낙 엄마가 힘들어하여 엄마를 도와주는 마음으로 이혼을 하면, 엄마가 좀 나아질 줄 알고 이혼을 도운 거였다. 사실 워낙 집에 오면 안 움직이려는 아버지는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세 모녀끼리 가벼운 여행이나 놀이등은 자주 해오던 습관이었던 터라 애들도 아빠가 변할 거라 기대하지 않아 엄마의 이혼을 나름대로 도와줬던 것이었다.
원래부터 순미와 두 딸은 너무 가까웠다. 이별 후 다시 만나면 맨 먼저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그리고 노래방으로 가서 노래를 부르며 실 컷 울기도 하고, 안아주고 달래주기도 하였다. 직장도 다니고 있어서 승용차를 갖고 있었다.
큰 딸은 고등학교 2학년이고, 작은 딸은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작은 딸은 엄마와 헤어지면 공부 안 하겠다고 하여 너무 많이 괴로워했다. 그녀는 막상 애들과 헤어지고 나니 살아도 살아 있는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