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결속

열등감

by 푸른 반딧불

사실 송현진은 열등감 덩어리였다. 그는 중학교를 나왔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영어에 막히게 된다. 영어라는 게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무조건 혀를 굴린다고 되는 건 아니었다. 아주 기초적인 것조차 매우 혼란스럽고 그렇다고 어디서 가서 배울 수도 없고 숨길 수 없고, 기초부터 안 해서 학력이 들통나고 말았는데 그녀가 영어 강사이다 보니 아무래도 모르는 걸 물어보다 보면 매우 친절하게 대답을 해 줄 때 또는 남들 앞에서 아내가 영어강사라고 소개하면 다들 놀라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눈 빛으로 잠시 좋았다가 결국 자신이 부족하게 보이는 게 싫었다.


순미는 재혼하면서 배우자 선택할 때 굳이 학력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었다. 부부 사이에 학력이 낮아 못 사는 것도 아니고, 남자다운 매력이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학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리더십도 없고 자기 결정을 못하는 우유부단한 사람보다는 말하자면 결단력이 중요하다 생각했고, 특히 원가족의 모임이라든지 결정적 순간일 때 눈치 보지 않고, 온전한 자기편이 되어주는 남자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그 사내는 겉보기엔 차가운 눈빛이나 웃을 땐 경계를 풀게 했다. 적어도 자기 아내만큼은 가족 속에서 지켜주고 아무도 그를 건들 수 없는 장남이었다. 누이들이 있지만 아무도 시집살이시키지 않고 그의 곁에 살아주는 여자이면 족하게 생각했다. 그녀는 왠지 박력 있는 송현진에게서 아버지의 이미지를 느꼈다. 특무상사로 10년 군생활 했던 아버지는 언제나 어머니를 도왔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아침이면 늘 요강부터 들고 나와 비워주었다. 밤이면 피곤해서 지쳐서 주무시더라도 아침이면 부엌으로 가서 큰 솥에 물을 길어 부어 주시고 아이들의

세숫물을 데우고 깨워 밥을 먹이고 어머니는 밥상을 준비하는 모습은 매우 익숙한 아침 풍경이었다.


사랑은 그런 소소한 작은 일상이지만 바늘 가는 데 실이 따라가듯 부부가 그렇게 도우며 사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전 남편에서 느끼지 못한 자상한 면을 다섯 살 연하의 그 사내가 갖고 있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주도하고 아껴주는 그 모습 속에서 그런 남자를 만나고 싶고 자기 가정을 갖고 싶어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면 배우자가 아내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해 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순미가 원하는 결혼의 의미는 절대적인 부부의 결속이었다. 아버지는 나갔다가 들어오면서부터 어머니를 찾는다. "순미엄마!!"라고 하면서 대문을 열고 들어오신다. 아버지가 오신 신호다. 이런 소리를 24년 듣고 살아온 그녀는 부부는 그렇게 온전히 의지하고 서로가 자신의 갈비뼈를 찾듯이 저녁이면 아내를 찾아 집으로 들어오는 남편의 모습을 연상했다. 하지만 시어머니와 시동생 시누이와 함께 사는 장남으로서의 첫 결혼은 절대적인 여성왕권 군주국가였다.


남편은 중학교 다닐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머니와 누이들 틈에서 자랐다. 또한 두 딸을 출가시킨 후 사 남매를 키우시면서 가정을 꾸려왔기 때문에 결혼한 누이들로부터 오직 어머니께 순종하는 법을 훈육받은 남자였다. 결혼을 해서 아내를 먼저 챙기는 것은 남자의 배신으로 배웠다. 어머니를 섬기지 않는 것은 인간 이하의 짐승이나 하는 짓으로 배웠다. 그녀는 15년 사는 동안 전 남편과 온전한 결속감을 느끼지 못하였다. 어머니나 누이들의 눈치를 보는 그런 남편의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한 혼란은 늘 순미를 외롭게 만들었다. 그렇게 15년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이었다. 순미는 아버지가 엄마를 부르며 들어오듯이 그런 온전한 결속이 그리웠다.


그런데 두 번째 만난 송현진은 폭력 전과로 교도소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무것도 없었고, 어찌 보면 기반을 어떻게 잡을지 늘 5살 때 애 엄마와 헤어진 자신의 불쌍한 딸을 위해 가정을 새로 꾸리고 싶었고, 좋은 여자 만나 아이에게 따뜻한 엄마를 느끼게 해주고 싶어 했다. 그러던 차에 순미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순미가 데리고 온 두 딸은 송현진의 딸보다 나이가 두세 살이 더 많았다. 하지만 이것저것 가리는 것보다 우선 5년간 여동생에게 맡긴 딸이라도 찾아와서 아이를 맡기고 일어서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재혼 생활이었으나 송현진은 애들을 보내라고 순미를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때리고 때로는 시비 걸며 어느 날 퇴근 무렵이었다.

"집 앞이야 내려와 봐"라고 하여 아파트 1층으로 나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홈웨어를 입고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어디 가는데?"라고 물었을 때 "잠깐 할 말이 있어서. 내려와 봐" 하는 말을 듣고 나왔다. 면허증도 없지만 차는 타고 다녔다. 운전대를 돌리던 그는 강변 근처에 차를 댔다. '애들 때문에 할 말을 못 해서 그러나?' 하고 생각한 순미는 현진의 발길질에 너무 놀랐다.

송현진이 무엇을 원하는지 처음 알게 된 것이었다. 두 딸들을 애들 아빠에게 보내라는 협박이었다. 양육비는 챙겨 오게 하고서 1년 반이 지나자 애들을 보낸다는 게 순미의 마음에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애들은 커도 엄마를 의지하고 좋아한다. 더욱이 주말부부로 살아왔던 순미의 아이들은 주로 엄마와 정서적으로 매우 안정적인 유대관계이었던 터라 이별은 1초도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런 세 모녀에게 송현진은 악마의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것이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진퇴양난이었다. 지속되는 괴롭힘과 가스라이팅은 그녀를 꼼짝달싹 못하게 하였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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