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영어 선생님 죄송해요
미국 와서 실전 영어를 많이 쓰는 곳이 있다. 바로 커피숍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맥도날드, 스타벅스, 던킨도너츠 그리고 웬디스가 있다. 나는 커피를 좋아해서 미국 온 초반에 여기서 커피를 자주 주문했다.
주문을 받는 사람은 주로 흑인, 아시아인, 남미 쪽 사람들이다. 물론 백인도 있다. 한국에 있을 때 커피 주문하는 건 정말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쉬운 일이었는데 여기 오니 이 사람들에게 커피 한잔 주문하는게 왜 이리 부담되고 어려운지.
매장에 들어선다. 줄을 선다. 내 차례가 되기 몇 초 혹은 몇 분 동안 커피 주문에 대한 영어 표현 몇 개를 생각해본다. 내 앞에 있던 사람은 현란하게 영어 몇 마디를 뱉더니 바리스타도 웃으면서 결제를 해준다. 내 차례다. 그 동안 영어로 커피를 수백번 주문한 전문가처럼 정통 문장을 구사하고 싶다. I want는 좀 건방져보이는 것 같아 would를 떠올린다. 그래. I'd like to를 써야겠다. 여기에 나는 커피 두잔이 아닌 한잔을 살 예정이니 a cup of coffee라는 표현도 생각해낸다. 그래서 마침내 나온 표현. I'd like to buy a cup of americano. 물론 발음도 완전 굴렸다.
바리스타가 이 문장을 한번에 알아들으면 그 날은 운이 좋은 날이다. 내 경우는 그랬다 ㅎㅎ. 대부분 그들은 나한테 다시 물어본다. Can you repeat again? 약간 당황이 되고 내 뒤에 줄 서 있는 사람 눈치도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발음에 신경을 쓰면서 I would like to buy a cup of americano 를 말해 본다. 눈치빠른 바리스타라면 ah, americano? which size? would you like to have a cream or sugar on it? 이라고 다시 물어본다. (물론 처음엔 cream and sugar도 안들렸다. 아메리카노에 왠 크림?) 나는 ye, ye,를 연발하며 that's fine이라고 답한다. 결제를 하고 후~~ 한숨과 함께 '커피 한잔 마시기 어렵네'라고 혼잣말하며 주문을 끝낸다.
내가 글 실력이 없어 이 에피소드를 재밌고 임팩트 있게 정리하는게 쉽지는 않지만 하여튼 여기 와서 몇 번 이런 스트레스 받는 경험을 하니 곰곰히 생각을 하게 되었다. 뭐가 문제지? 왜 나는 커피 주문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a cup of 라는 표현 때문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교과서에서 배운 여러 영어 표현 중 특히 이 표현을 금과옥조처럼 여긴다. 신기하게 쉽게 잊혀지지도 않는다. 한국 사람 입장에서 발음이 쉬운 표현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이것 때문에 자주 발음이 꼬였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주문할 때 자세히 들으니 사실 이 표현을 자주 쓰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냥 americano tall please 아니면 cafe latte venti please 정도였다. 격식 차릴 것 없고 심플했다. 그래서 나도 I'd like to have a cup of americano를 버리고 americano tall please 혹은 coffee one cup please (브루 커피 파는 곳들은 종이컵만 달랑 주기에)라고 했더니 자연스레 통했다.
a cup of coffee는 분명 영어에 있는 표현이고, 훌륭하다. 교과서에도 올라와 있고, 영어를 쓰는 수많은 사람들이 애용한다. 그러나 최소한 나는 이제 이 표현을 자제하려고 한다. 내가 스트레스 받고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전달하는데 애를 먹고 있기 때문에다. 그리고 이를 대체할 좋은 표현이 많기 때문이다.
간단히 한숨 돌리러 커피숍 갔는데 언어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면 좀 슬프지 않나. 바리스타도 나의 이상한 발음 때문에 애를 먹고.
덧붙여)
Latte 이 녀석 참 쉽지 않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내 경우 우리말로 하듯 '까.뻬.라.떼.'라고 하면 70%는 못알아 듣는 듯 했다. 대신 '카.페.라.테'라고 해야 잘 통했다. 끝에 '테' 가 핵심이다. 어렵다 어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