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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May 19. 2020

기자에서 마케터로 직종을 바꾼 방법

기자 시절 취재하러 정말 많이 왔던 대한상의. 오늘은 마케팅 제휴 미팅을 위해 다녀왔다.

대학교 4학년 때 인턴으로 언론사에 입사해 5년간 기자생활을 했다. 그 후 일반기업에 들어와 콘텐츠를 만들고 마케팅을 한지도 3년 반이 지났다. 기자생활은 까마득한 옛일 같건만 아직도 뒤를 돌아보면 일반기업에서 일한 기간보다 언론사에 있었던 시간이 길다. 대학교 때 학보사 기자였던 나는 20대 중후반을 언론사에서 보냈고, 30대에 처음 '회사원'이 되었다.


기자생활만족스러웠다. 그럼에도 나는 자주 직종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이 애써 만들어놓은 결과물을 평가하는 일에 지쳤다. 욕을 먹어도 좋으니 내 손으로 제품이든 서비스든 무언가를 만들어서 세상에 내놓고 싶었다. 기사가 아닌 무언가를 직접 내 손으로 만들어 본 적이 없으면서 모든 것을 아는 양 글을 쓰는 일에 회의가 들곤 했다. 공개된 자료를 잘 가공해서 기사를 쓰는 일은 어렵지 않다. 순위를 매기고 실적을 비교하는 일은 참 쉽다.


그러나 숫자는 종종 거짓말을 한다. 통계는 어떻게 조사하고 가공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고, 작은 변수 하나가 전체의 결과를 뒤바꿔놓기도 한다. 공시된 자료를 접하는 기자들은 그 이면까지 알기 어렵다. 기자들은 두루두루 아는 게 많지만, 동시에 깊이 아는 일은 없다. 취재원들은 출입처 기자에게 살갑게 대하지만 결코 '우리 쪽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자는 영원히 이방인이자 떠돌이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올해 초 진행한 전속모델 섭외와 스튜디오 촬영. 모델 선택부터 촬영, 광고 지면 활용까지 해볼 수 있었다.


물론 기자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직업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기자를 꿈꿔왔다. 말하기보다는 글 쓰는 일이 편했다. 내가 느낀 것을 글로 적어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내가 몸담았던 매체는 작은 회사라 자유로웠으며, 내 이름 세 글자 달고 개인사업자처럼 오너십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더 나이를 더 먹기 전에 '보통'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해보고 싶다는 갈망에 시달렸다. 핵심 사업으로 매출을 내는 일터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대부분의 언론사는 핵심사업인 뉴스가 아니라 광고라는 우회수익으로 근근히 먹고 산다.) 큰 조직생활에 대한 갈망도 있었다. 대기업의 의사결정구조와 조직의 생리를 경험해 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뜻밖의 이직 제안이 들어왔다. 오래전 일을 쉬었을 때 어딘가에 제출해놓은 이력서가 떠돌다 그 헤드헌터의 손에까지 들어갔나 보다. 콘텐츠 사업을 기획하고 해당 서비스에 기사 쓰기를 병행하는 포지션이었다. 지금까지 해온 일과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기업 생태계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았다. 그렇게 지금의 회사에 입사하게 됐다. 처음부터 '마케터'라는 이름을 달고 이직을 한 건 아니었다. 기자 경력으로 마케터 경력직으로 입사한다는 건 불가능한 얘기다. 콘텐츠 제작 업무로 시작했지만 몇년 간 수 차례의 조직개편을 거치며 콘텐츠 제작자가 아닌 브랜드 마케터 일을 주로 하게 됐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아주 만족스럽다.


인터넷 기자가 어떻게 마케터가 되었는지를 장황하게 적어본 이유는, 20대 중후반의 내가 전직을 갈망했던 기억이 떠올라서다.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20대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나는 1년 차쯤 되었을 때 이직을 하고 싶었지만, 당시 나는 탈출구가 없어 보였다.(지금 생각하면 참 오만한 얘기다. 고작 스물여섯이었는데.) 1년 차 조무래기를 경력으로 받아주는 언론사는 고만고만한 곳 밖엔 없었고, 신입으로 일반 회사에 들어가자니 스펙도 변변찮고 나이도 많아서 불가능할 것만 같았다. 3년은 버텨야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일을 하다 보니 첫 직장에서 3년을 보냈다. 버티고 나면 길이 열릴 것 같았는데 웬걸, 더 어려워진 느낌이었다. 29살에 진짜 기자는 그만두어야겠단 생각으로 퇴사하고 일반기업 입사 준비를 했지만 실패했고, 3개월 만에 다시 언론사로 돌아갔다.

PB로 만든 마스크와 마스크케이스 세트. 마케팅을 하다 보면 상품 기획 업무에 관여하기도 한다.


그때의 이직 제안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기자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 인생이 잘못되었다거나 하지는 않았겠지만, 지금 겪고 있는 수많은 경험들은 하지 못했을 거다. 변화의 기회를 잡는 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새삼 한다. 마케터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사실 마케팅 캠페인을 기획하는 일보다는 신규 프로젝트 론칭하는 게 더 재밌는 사람이지만, 그런 게 뭐가 중요하겠나.


 조직의 규모가 일정 정도 이상 되면 내 이름표 달고 하는 일은 많지 않다. 나 혼자 하는 일도 거의 없다. 정말 사소해 보이는 일도 팀원과 같이 하고, 다른 팀 하고도 같이 하고, 대행사 직원들과도 머리를 맞대고, 계열사 직원들과 협력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사람이 더불어 하는 일이라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스트레스도 크지만 끝나고 나면 그 쾌감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나를 힘들게 했던 프로젝트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프로젝트에 내 이름표가 달려있지는 않지만 여럿이 협력해 결과물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소중하다. 프로젝트 결과가 늘 성공적인 것은 아니고, 노력한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다. 준비하다 미끄러지는 일도 많고, 실적이 미비해 론칭을 지만 중단하는 프로젝트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게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좌절할 필요도 없다. 여러 가지 이유로 프로젝트가 잘 되지 않은 거지 내 인생이 실패한 건 아니니까. 내가 기자 시절 갈망했던 일반회사에서의 성취와 실패의 경험들이다.  




제니의 첫번째 책이 나왔습니다! 

마케팅 부서 발령을 받았습니다. 5년간 기자로 일했기에 홍보 업무에는 자신이 있었고, 마케팅이라고 뭐 다를 게 있겠나 싶었습니다. 오만한 생각이었습니다. 누구나 마케팅을 말하지만. 진짜 체계적으로 잘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며, 매우 전문적인 분야입니다. 5년차 마케터인 제가 감히 '전문가'라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여러분과 같은 위치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과정들을 책에 담아 보았습니다. 너무 기본적이라 주변에 물어보기도 부끄럽고, 인터넷에 검색해 보아도 속 시원히 해결되지 않았던 부분들을 최대한 모아서 작성했습니다.

https://bit.ly/topgimil_m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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