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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Oct 31. 2020

아무리 똑똑해도 연봉이 낮은 이유

직장인의 연봉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연봉과 업무 능력은 비례하지 않는다. 연봉은 학력과도 비례하지 않는다. 물론 업무 능력과 학력이 높을수록 연봉이 높을 확률은 높겠지만 말이다. 연봉은 내가 다니는 회사가 어떤 업을 영위하느냐에 따라 일차적으로 좌우된다. 5년간 언론사에서, 4년간 유통회사에서 일하며 깨달은 사실이다. 내가 몸담았던 언론사에 있던 선배들은 모두 똑똑한 사람들이었다. 학벌도 좋았고, 아는 게 많아서 늘 놀라곤 했다. 전문성이 있어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버는 돈은 200만 원도 안 됐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제대로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처음 받았던 월급은 128만 원이었다. 아르바이트로 했던 은행 청원경찰이나 한의원 코디네이터보다 낮은 급여였다.


급여가 낮은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내가 일하는 회사에 수익구조가 없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직장도, 두 번째 직장도 모회사로부터 투자를 받아 근근이 직원들 월급을 주고 있었다. 정상 기업이라면 핵심 사업을 통해 매출을 내야 한다. 기사라는 정보서비스를 제공하는 언론사라면 콘텐츠를 팔아서 돈을 버는 것이 마땅한 일이나, 우리 모두 알다시피 우리나라에는 돈 내고 기사를 읽는 문화가 없다.


그러니 언론사가 돈을 벌려면

1. 기사를 읽기 힘들 정도로 광고를 덕지덕지 많이 붙이거나

2. 돈 많은 광고주를 물어서 좋은 기사를 꾸준히 써주면서 용돈을 받거나

3. 만만한 기업을 하나 물어서 악의적인 기사를 지속적으로 써서 삥을 뜯거나

4. 연말마다 'ㅇㅇ브랜드 대상' 같은 수상제도를 만들어서 돈 받고 상장을 팔거나

5. 'ㅇㅇ포럼', 'ㅇㅇ써밋' 같은 행사 만들어서 권위도 세우고 기업들한테 참가비를 받거나


이런 방법들을 써야 한다. 소위 말하는 양아치 짓들이다. 기업에나, 독자들에게나 암적인 방법으로밖에 돈을 벌 수밖에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돈 내고 뉴스를 구매하는 문화 자체가 없으니 저렇게 돈을 벌 수밖에 없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가 몸담았던 회사는 저런 일을 벌이지 않았으므로 돈 나올 구석이 없었고, 급여가 낮은 것은 당연했다.


언론사를 떠나야겠다고 다짐한 순간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의도치 않게 나보다 20년 선배인 급여를 알게 되면 서다. 나와 거의 차이가 없는 것을 알고 아.. 여기서는 미래가 없겠구나 싶었다. 내가 지금처럼 정직하게 취재하고 기자 생활을 하고 싶다면야 상관없겠지만, 지금 보다 경제적인 풍요를 원한다면 빠르게 탈출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렇게 연봉을 꽤 많이 올려서 5년 경력직으로 일반 회사에 이직을 했다. 그때 놀란 건 나보다 나이 어린 친구들이 나보다 많은 연봉을 받고 있는 거였다. (20년 선배인 그 분보다도 많은 금액이었다) 그 친구들이 엄청난 인재 같은 것도 아니었다. 물론 일 잘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취미 정도로 회사에 와서 출근카드 찍고 메신저 하고 놀다 가는 월급루팡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루팡들은 내 기준에서 꽤 많은 월급을 받아갔다. 1년에 1500억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 유통회사였으니까. 물건을 팔아서 돈을 버니, 그 돈으로 직원들한테 월급을 줄 수 있는 거였다. 처음부터 일반 회사에 다녔다면 당연했을 사실이 그때의 나에겐 정말로 신기했다. '돈을 버는' 회사에 다닌다는 사실이. 그때 깨달았다. 업무 능력 이전에 내 연봉의 수준을 결정하는 첫 번째 요소는 내가 속한 회사의 산업군이라는 것을. 내가 다니는 유통회사는 그 정도의 연봉이지만, 금융회사나 제약회사는 훨씬 더 많은 돈을 준다.


일단 특정 산업군에 몸을 담았다면 그때부터 연봉의 차이는 '적절한 이직'에서 나온다. 급성장하는 스타트업이 아니라면 한 회사에서 인상할 수 있는 연봉의 인상률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대기업들은 기본 인상률이 1~2% 정도고, 중소기업도 많아야 10% 정도다. 그러나 이직할 때는 부르는 게 값이라 나를 모셔갈 회사에서 내가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20~30%도 올릴 수 있다. 내가 이전 회사에서 받던 급여를 확인하기 위해 각종 서류를 요구하고 - 이때 굉장히 위축되는 느낌을 받는다 - 연봉을 깎기 위해 애쓰지만, 뽑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되도록 맞춰주는 편이다. 그러니 회사에서 나를 마음에 들어했다고 생각하면 자신 있게 불러도 된다.


안타깝게도 근무 시간과 연봉도 비례하지 않는다.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요즘 근무 문화가 바뀐 영향도 있기는 하지만, 나는 지금보다 훨씬 적은 월급을 받을 때 훨씬 더 오래 일했다. 9시에 출근해 저녁 7시 퇴근이 기본이었고 9~10시까지 일할 때도 있었다. 토요일에도 격주로 출근을 했었다. 지금 나는 아침 8시에 출근해 보통 5시에 퇴근을 한다. 더 많은 급여를 받으면서 워라밸도 지켜지고 있다. 


중소기업에 다닐 때는 대기업에 대한 막연한 편견 같은 것들이 있었다. "야, 대기업은 돈 많이 주는 만큼 일 죽도록 시킨다더라" 10년 전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이제는 아니다. 일 가정 양립이 대세이다 보니 기업 규모가 클수록 고용노동부 규제도 깐깐해서 그렇게 일을 많이 못 시킨다. 우리 회사만 해도 조금만 초과 근무를 해도 인사팀에서 경고 메일이 온다. 왜 그렇게 야근을 하는지 소명을 하라고, 자꾸 야근이 반복되면 부서장에게 업무 조정을 요구한다. 그러니 짧은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아, 회사 내에서는 '출신 성분'도 연봉에 영향을 준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라지만 같은 회사에서 같은 일을 해도 연봉은 천차만별이다. 10년 차 경력직보다 신입 대졸 공채 연봉이 더 높은 경우도 있다. 업무 능력으로 보자면 야 경력직이 훨씬 우수하겠지만 급여의 현실이 그렇다. 나 같은 경우 회사의 사업구조 개편으로 모회사에 흡수 합병된 케이스라, 대기업 직원이 되어도 연봉 테이블은 이전 기업 그대로였다. 아니, 오히려 실수령액은 줄어들었다. 큰 회사들은 급여 쪼개기를 좋아해서 이런저런 명목으로 급여를 세세하게 나눠서 한 달에 내 손에 쥐어지는 금액은 적어졌다. 우리 회사 신입들과 얼마 차이 나지 않는 월급을 받으며 성실하게 일하고 있다. 하지만 이건 누구를 원망할 일도 아니다. 그 친구들은 수백 대 일의 경쟁을 뚫고 입사한 인재들이고, 나는 어쩌다 흘러 들어온 사람이니 말이다. 이건 내 업무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와는 무관한 얘기다. 그게 억울하면 돈 더 주는 곳으로 이직하면 될 일이다. 그게 직장인의 세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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