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30분 집을 나선지 18시간만에 집에 돌아왔다. 가벼운 두통에 불쾌한 생리통, 종일 서있던 탓에 다리 근육통까지. 몸 상태가 그 어느 때보다 최악이다. 칼퇴를 한 날엔 귀갓길 광역버스 안에서 쿨쿨 잘도 자건만, 이렇게 극도의 피로 상태에선 오히려 정신이 또렷하다.
23시 20분. 한치의 망설임 없이 회사 앞에서 잡은 카카오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내내 창밖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운 좋게도 택시 기사님은 배려가 넘치는 분이었다. 장거리라 목적지까지의 경로를 네비게이션에 미리 찍어 놓았지만, 안내음성은 들리지 않았다. 보통 네비게이션은 눈으로 보기보다 귀로 듣지 않나. 이상하다. 차안에는 그 흔한 라디오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밤 늦게 탄 택시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좋아하지만, 이렇게 고요 속에 귀가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싶었다.
현란한 테헤란로 불빛을 바라보며 무음의 택시 안에서 아무런 말없이 귀가하는 건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핸드폰도 보지 않고, 이어폰도 꽂지 않고, 가만히 앉아 바깥을 바라봤다. 택시 기사님은 내가 처음 탔을 때 ‘주로 이용하시는 길이 있느냐’고 한번 물음을 던지고는 집 앞에 올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말 고마웠다. 사실 나는 이 지나친 ‘고요’의 이유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집 앞에 올 때까지 꾹 참았다. 승객이 기사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달까.. 대화의 물꼬를 한번 트고 나면 그때부턴 걷잡을 수가 없다.
도착하기 3분 전쯤 넌지시 물었다. “기사님, 네비게이션 음성 안내 소리가 안 들리네요” 그랬더니기사님은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차 안이 어두워서 이어폰을 끼고 있는 줄도 몰랐다. 네비게이션 소리가 시끄럽다는 승객들이 있어 안내음성을 이어폰으로 듣는다고 했다. 운전 중에 음악을 틀지 않는 것도 물론 같은 이유에서였다.
집에 와 생각해보니 그 K5 택시는 내가 살면서 이용해본 최고의 택시였다. 일단 뒷좌석에 앉자 마자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실내가 매우 깨끗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차안에선 과하지 않은 선에서 좋은 향기가 났다. 늦은 시각이라 도로에는 차가 별로 없었지만, 결코 과속하지 않았다.(얼마 전에 같은 노선을 운행했던 한 택시운전사는 시속 160km로 나를 집에 데려다 줬다. 진심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오늘 그 기사님은 정말 프로페셔널 했다. 고객을 배려하는 세심함, 택시 운전에 최적화된 전문가. 생각해보면 그분은 택시운전이 아니라 그 어떤 일을 해도 그렇게 잘 해낼 것이다. 모든 비즈니스의 기본은 고객의 눈높이에서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일이 아니던가.
길고 힘든 하루 끝에 특별한 경험을 해 이렇게 꾹꾹 키보드를 눌러 글을 적고 이제 잠을 청한다. 정말로 치열했던 2019년 6월 7일 금요일 하루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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