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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Dec 01. 2022

내가 컨설팅에 적응해 가는 과정

컨설팅 업계에 발을 들인지도 어느덧 반년이 지났다. 입사를 하면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PI(프로세스 개선) 프로젝트 또는 전자제품 회사의 디지털 마케팅 프로젝트를 하기로 되어있었는데, 예정된 프로젝트가 무기한 연기되는 바람에 현재의 이 프로젝트에 들어오게 되었다.


입사하고 난 뒤로는 PI 프로젝트 투입이 확정되었다. 상암에 있는 고객사라 출퇴근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며 투입을 기다렸다. 처음엔 2주 정도 대기였다가 3주, 4주로 길어졌다. 고객사 사정으로 프로젝트 시작이 지연되고 있다고 했다. 그동안 놀 수는 없으니 다른 프로젝트 지원을 다녔다. 용인에 있는 고객사에 3주간 지원을 나갔고, 본사에서 디지털 마케팅 프로젝트를 1주간 지원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 진짜 프로젝트 시작일. PM과 팀원들과 상견례를 하고 업무 진행 계획을 공유했다. PM은 그날이 우리 회사 첫 출근일이었다. 우리 회사에는 첫날이지만 컨설팅 업계에 20년 이상 몸 담아온 전문가였다. 침착하고, 합리적으로 일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믿음이 갔고, 함께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메일 한 통을 받았다. 한 달간 대기했던 그 프로젝트가 무기한 연기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어리둥절. 그렇게 오전 시간을 보내고 점심시간 즈음 파트너로부터 소식이 들려왔다. 다른 프로젝트에 배정되었으니 그리 알라고. 머리를 긁적이며 그 프로젝트 PM을 만나러 갔다. 고객사는 전자제품 제조사로, 시장 조사기관의 수요 전망 데이터로 데이터셋을 구축하고 분기별로 인사이트 보고서를 작성하는 프로젝트였다. 우선 나를 가장 당황하게 만든 건 모든 보고서가 영문이라는 것. 프로젝트를 의뢰한 부서가 글로벌 업무를 맡고 있어 모든 산출물은 영어로 써야 했다. 고객사 담당자도 한국인, 우리도 한국인이지만 보고서는 영어로.


두 번째로 나를 당황하게 만든 건 전략 프로젝트라는 점이다. 컨설팅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우리 팀이 주로 하는 업무는 데이터 분석 프로젝트로 고객에게 필요한 데이터를 가공하고 분석해서 시각화하는 일을 주로 한다.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고, 조직은 어떻게 구성해야 하며, 최근 트렌드는 무엇인지 데이터 관련 전략을 짜주기도 한다. 많은 프로젝트들이 고객의 실무와 맞물려 돌아가는 운영성의 프로젝트로, 이쪽 동네에선 오퍼레이션 컨설팅이라고 부른다. 좋게 말해 컨설팅이고, 안 좋게 말하면 하청이다. 세간에서 생각하는 컨설턴트는 전략 컨설팅이다. 기업의 현황을 분석해서 전략을 제시하는 일을 한다. 구조화된 사고를 바탕으로 가설을 수립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슬라이드로 나타내 고객을 설득하는 일인데 참 어려운 일이다.


오퍼레이션 컨설팅이냐 전략 컨설팅이냐에 따라 경쟁사도 달라진다. 오퍼레이션 컨설팅은 빅4라 불리는 회계법인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PwC, KPMG, 딜로이트, EY다. 반면 전략 컨설팅은 MBB라 불리는 맥킨지, BCG, Bain이라는 회사가 업계의 탑티어다. 오퍼레이션보다는 전략 컨설팅이 업무 강도도 높고 인력들의 스펙도 높고, 그만큼 처우도 좋다. 내가 속한 빅 4에서도 전략 컨설팅을 일부 겸하고 있는데 그 프로젝트에 오게 된 거다.


내용만큼이나 형식도 중요한 세계다. 글자크기, 자간, 대소문자 하나로도 대차게 까인다. 내용이 중요하지 껍데기가 무어 중허냐는 말 따윈 안 먹힌다. 비싼 돈 주고 컨설팅 업체를 썼는데 보고서가 이게 뭐냐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기본적인 것부터 완벽해야 한다. 처음에 이런 업계 분위기를 모르고 보고서 초안을 가지고 갔다가 PM에게 욕을 한 바가지 먹었다. 대학생 리포트도 아니고 이게 돈 받고 프로페셔널 펌에서 나올 수준이냐며 질책했다. 직장 생활 10년 이상 했고, 경영진 보고 자료도 많이 만들어봤기에 페이퍼 워크에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피드백을 받아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큰 소리로 꾸짖으니 쪽팔리기도 했다. 아, 내용은 당연히 훌륭해야 하는 거고 우선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않으면 안 되는 동네구나. 뼈저리게 느끼며 긴장감을 갖게 됐다.


처음 이 프로젝트에 들어왔을 땐 2개월만 하자고 했다. 8월에 프로젝트에 착수해 9월 말이면 이번 분기 보고서가 마무리되니, 그 이후엔 다른 프로젝트에 가도 좋다는 거였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업무 경험이 많지 않으니 다양한 프로젝트를 겪어 보는 게 좋으니까. 그러나 10월이 지난 후에도 나는 계속 프로젝트에 남아 다음 분기 보고서를 준비하고 있다.


마음먹으면 다른 프로젝트에 옮겨 갈 수도 있지만 아직은 계속해보고 싶다. 한 사이클 돌아가는 걸 경험해 보니 두 번째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심층적으로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첫 분기 때는 모든 게 처음이라 서툴렀고 시행착오도 많았는데 그 과정을 다듬어 가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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