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정부의 선택은?
1.
최근 중국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이지만 ‘쉬쉬’ 하는 이슈는 단연 ‘료녕호’ 사건이다. 중국 최초로 건조된 항공모함인 ‘료녕호’는 건조식을 마친 후 남해에 나가 군사훈련을 하기로 했고, 중국 언론에서는 이 사실을 뉴스를 통해 그야말로 몇 개월 전부터 대대적인 선전을 했다.
건조식이 열린 해남도로 시진핑이 직접 날라가 해군 군복까지 입고 ‘중국의 대양국가’를 외치는 장엄한 모습까지 보여줬으나 가장 결정적 장면인 ‘료녕호’가 남해(대만해협)로 발진해서 바다를 누비며 군사훈련을 하는 모습은 생략되었다. 그 이유는 중국언론에서는 ‘쉬쉬’ 했지만 미국의 진짜(?) 항공모함들이 대거 필리핀 부근으로 모여들어 군사훈련을 했기 때문이다. (아마, 상호 비슷한 해역에서 훈련을 하다가 벌어질 군사적 충돌에 대해 미국이 경고를 했으리라 추측된다)
2.
중미간의 무역전쟁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양국이 경쟁을 하는 것 같지만 그리고 중국 미디어에서는 필사적으로 경쟁구도로 선전하고 있지만 사실은 중국이 완벽하게 발리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3일전 중국의 유력 통신장비업체인 ZTE에 대해 ‘미국이 7년간 어떤 거래도 못하도록 중지를 명령한 한 조치’는 아무리 중국 상무부에서 반발하고 강력한 어조로 비난(중국 상무부에서는 '잘난체 멈추지 않는다면 자업자득'이라는 이해가 어려운 논평을 냈다)하고 있더라도 애국심 강한 중국의 네티즌들마저도 한탄을 하고 있을 정도이다.
이번 ZTE사태에 대한 중국의 보복조치는 ‘붉은수수’에 관세를 100% 부과하는 수준인데 이게 과연 ‘무역전쟁’이라고 해야 할만큼 쌍방간의 경쟁이나 비슷한 데미지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중국인들도 냉소에 가깝다. (미국 수입농산물중에서 가장 큰 GMO(콩)에 대한 규제카드는 이미 써 먹었다)
3.
‘도광양회(韬光养晦)'라는 말은 중국에 대해 약간의 관심만 있어도 들어보았을 것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키운다’는 말로 덩샤오핑의 외교노선을 지칭하지만 좀 더 정확하게는 ‘절대 미국과 경쟁하지 말라’는 이야기에 가깝다.
여러가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나 덩샤오핑은 2030년이 될 때까지 혹은 GDP가 미국의 2배 이상 넘어설 때까지 미국과 경쟁해서는 안된다는 유훈을 남겼다는 설이 있다.
4.
‘도광양회’와 함께 쓰이면서 비교적 반대되는 개념(사실은 중국의 최소한의 자존심을 세우는 개념)으로 사용되는 유소작위(有所作为)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해야 할 일은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중국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하던 장쩌민, 후진타오 시대에 주로 사용되었는데 국제사회에서의 ‘자만과 과시’라기 보다는 ‘국내 정치용 선전’에 가까웠다.
그런데 시진핑 시대에 들어와서는 ‘대국굴기’라는 말을 주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대국으로 우뚝 일어난다’는 뜻으로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경제뿐만 아니라 외교적 영향력과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힘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미국과도 ‘한번 패권을 다퉈 보겠다’는 결의에 가깝다고 보이는데 나는 이게 현재 중국이 대내외적으로 꼬이기 시작한 주요한 이유라고 보는 편이다.
5.
한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강대국으로 인정받기 위한 ‘국력’이라는 것은 통상적으로 두 가지로 구성되는데 바로 ‘군사력’과 ‘경제력’이다.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춰야 비로소 강대국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군사력’만 비정상적으로 강한 북한을 누구도 강대국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경제력’만 월등한 일본을 ‘강대국’이라고 국제사회에서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초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를 세계 최고수준으로 갖춰야 인정받는 것이고 현재는 미국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시진핑 시대에 들어 중국이 미국과 더불어 초강대국에 대열에 들기를 희망했다. 바로 ‘대국굴기’라는 구호와 함께 말이다. 시진핑의 실패한 ‘일대일로’도 사실은 오바마의 TPP에 대항하기 위한 경제 외교 정책인데 그 TPP를 트럼프가 날려 버렸으니 이게 중국입장에서 위안이 되는 것인지 두번 죽는 기분인지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TPP의 중심인 일본 아베 입장에서는 부들부들 할 노릇인 것은 맞다)
6.
어째든 시진핑은 인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혹은 중국 최고 지도자라는 도울 선생의 찬사가 무색할만큼) 집권 이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중국내 정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내수경기 활성화’와 국외 정책의 핵심인 ‘일대일로’가 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경제학자도 아니고 외교전문가도 아니지만 이러한 시진핑 시대 중국의 실패 이유는 미국의 방해(좋은 말로는 견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중국 GDP는 작년 기준으로 11조 9,375억 달러로 세계 2위인데 19조3,621억 달러인 미국에 비해 여전히 격차가 크고, 군사력으로 따지면 그야말로 비교불가 수준이다. 때문에 아직은 ‘도광양회’를 해야 할 때인데 너무 빨리 자신을 들어내서 미국의 견제를 받게 된 것이 시진핑 시대 중국이 경제적으로도 외교적으로 꼬이게 된 주요한 이유인 것이다.
7.
이런 가운데 사실상 영구집권을 선언한 시진핑 정부입장에서는 대단히 난감한 지경에 놓이게 되었다. 그나마 표면적으로는 점잖은 오바마와는 ‘짜고치는 고스톱’으로 대국들끼리 적절하게 주고 받는 모양세를 살려가면서 적당한 실리를 양보하면서 봉합할 수 있겠는데 어디로 튈지 모르고, 직설적이까지 한 트럼프는 이런 체면을 살려주는 협상이 전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싸우자고 하면 (질 것이 확실한) 진짜 싸움이 되어 버리고, 양보를 하자니 진짜 엄청난 양보가 되어 버리면서 시진핑의 국내 정치를 위한 가오가 완전히 상해 버린다.
하지만 시진핑 정부는 대내외적인 여러가지 이유로 미국과의 경쟁이 잘못된 것이고 미국중심의 세계질서에 순응하는 것으로 양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의 발전이 더 이상 어렵다는 것을 모르는 바보가 아닐테니까 말이다. (혹자는 시진핑의 판단력이 정말 문제가 있는 낮은 수준이라는 말을 하는 이들도 있다. 한국의 503호 처럼 말이다)
8.
대외적으로는 미국에게 계속 굴욕적인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국내정치 관련해서는 당분간은 더 철권을 휘두를 수 밖에 없는 것이 또 시진핑 정부의 딜레마이자 선택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국가주석의 인기가 떨어지면 국가 통치체제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수경기도 안 좋고 외교적으로도 밀리는 내우외환의 상황인데 이 경우 정부가 택할 수 가장 손쉬운 방법은 역시나 대정부 선전을 강화하고, 미디어를 포함한 각종 민간 콘텐츠를 강력하게 규제하는 것이다. 사실 이 모습이 독재국가의 전형적인 방법이다.
억측이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판호에 대한 주무부서가 광전총국에서 선전부로 바뀐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이해하고 있다.
9.
작년 여름 중국 박스오피스를 강타한 <전랑2> 이후 소위 국뽕 영화 제작은 가속되고 있는데 지난 춘절(설) 연휴 박스오피스의 승자는 중국 해군의 영웅담을 다룬 <홍해행동>이다. <홍해행동>은 36억4천만 위안(약 5.8억 USD)으로 현재 중국박스오피스 역대 2위까지 올라섰다. 그런데 개봉 2개월이 넘어갔는데 여전히 극장에서 상영중이다. 스크린당 좌석 점유율이 높아서라기 보다는 극장에서 스크린을 열심히 밀어주고 있는 탓이다.
더 심한 영화는 '厉害了, 我的国(Amazing china)'라는 영화인데 이 영화는 제목이 주는 느낌과 같이 소위 '대 놓고 국뽕을 추구'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인데 상영 50일을 넘어가는데 누적매출은 4억7천만 위안에 불과한 수준이지만 여전히 극장들은 (비자발적으로) 스크린을 몰아주고 있다. CCTV가 제작하고 배급한 영화인데 거의 모든 공무원들과 국영기업 그리고 대기업들의 직원들이 동원되고 있다. (나도 내용이 궁금해서라도 '한번 볼까' 고민하다가 포기했다. 내가 극장에 가서 볼 정도의 가치가 있는 영화도 아니고 어차피 곧 온라인에서 볼 수 있을테니까...)
10.
최근 중국 IT업계에서 텐센트나 알리바바의 투자나 도움없이 거대한 유니콘으로 성장한 ‘今日头条’라는 서비스가 있다. 한 마디로 뉴스앱인데 사용자들이 자발적인 뉴스를 공급하는 서비스이다. 이 서비스는 '유저들이 참여하는 뉴스공급'이라는 사업모델로 어마어마한 AU를 확보했다. (내 개인적으로는 그 만큼 진짜 뉴스를 보고 싶은 중국 유저들의 갈망이 이 서비스의 성공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이 회사가 최근 중국정부로 부터 두들겨 맞고 GG쳤다. 표면적인 규제의 이유야 허위광고 등으로 규제를 당하는 것이지만 사실은 '정부가 통제하기 힘든 뉴스들 때문'이라는 것이 역시 내 생각이다.
‘今日头条’ 자회사 서비스중에 ‘内涵段子’라는 '유머 커뮤니티 서비스 앱'이 있는데 여기는 아예 서비스가 하루아침에 영구 정지 되었다. 이유는 역시 유머를 빙자한 통제 불가능한 내용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현재 밸류가 시총 30억 달러에 육박하는 거대 유니콘임에도 불구하고 한방에 이 서비스는 날라 갔는데 ‘今日头条’를 우선 살려야 하니까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는 여전히 중국이 무시무시하다)
11.
이렇듯 현재 중국은 국가 선전을 강화하고 모든 민간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그런 정책적 일환으로 국가 선전부의 역할이 강화된 것이고 판호도 여기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내가 오늘 쓴 글의 핵심내용이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정보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는 인민들을 언제까지 정부가 통제할 수 있을까?
12.
현재 중국은 변화의 길목에서 대단히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과거 마오쩌뚱 시대와 같은 철권통치만으로 인민들을 통제하는 것이 이제는 불가능한 시대이다. 왜냐하면 인민들은 과거처럼 배고프지 않고, 사유재산에 대한 강력한 열망이 있으며, 무엇보다 더 이상 ‘죽의장막’에 갖혀 그들만이 사는 갈라파고스 같은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