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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꽃 우동준 Sep 15. 2021

[동준] 선생님은 infJ야. 솔이는 MBTI가 뭐야?

첫 수업을 마친 나는 솔이에게 첫날의 교육 후기를 일기로 적어보자는 숙제를 내주었다. 선생님도 열심히 고민하고 써 올 테니 15주 간 서로의 글을 듣고 같이 성장하자는 말과 함께.  이 매거진에 가장 앞서 올라갔던 글이 솔이가 가져온 첫 숙제고, 바로 이전에 업로드된 글이 첫 시간을 마친 나의 후기이자, 내 몫의 숙제였던 셈이다. 


솔이와 나는 15주 차의 수업을 진행하고, 각자 15개의 후기 총 30개의 글을 쌓을 것이다. 우리의 만남과 우리의 소통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지금은 아무도 모르지만, 솔이가 가졌던 꿈- 나와 친구들 모두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그 소중한 꿈을 응원하기 위한 밑 작업을 홀로 그려갈 것이다. 


두 번째 수업에서 우린 함께 MBTI 검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물론 내가 전문적인 검사 자격증을 보유한 건 아니지만, 요즘 또래 사이에서 워낙 유명한 검사를 해본 적이 없다는 솔이를 위해 모든 문항을 내가 읽어주고, 솔이의 답변에 따라 하나씩 문항을 체크해가며 알아보기로 했다. 우리의 수업 시간은 40분 남짓. 초등학교 4학년이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40분이라고 했다. 


아직 점자 지원이 없는 MBTI 문항이어서 그런 걸까.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는 것보다 솔이에게 문항의 뜻을 풀어서 설명하는 일이 더 어려웠다. 많은 문장이 딱딱한 번역투였고, 사회적 관계성을 묻는 문항을 학교 생활만 하는 솔이의 일상에 대입해서 풀어내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솔이도 중언부언 말이 길어지는 나를 짐작했는지, '선생님 혹시 이런 뜻인가요?' 라며 적극적으로 되물어주었다. 첫 시간에도 느꼈지만, 내가 짐작하는 것보다도 훨씬 타인을 위하는 사려 깊은 존재다. 40분으로 예정된 우리의 수업 시간은 어느새 60분이 넘어갔다. 솔이에게 힘들진 않느냐 물었지만, 그녀는 어서 빨리 진행해 나의 성향을 알고 싶다며 오히려 나를 재촉했다. 


그렇게 1시간 10분이 지나고, MBTI 최종 결과가 나왔다. 나는 INFJ 선의의 옹호자라는 타입, 솔이는 ISFJ 용감한 수호자 타입이었다. 첫 시간에 좋아하는 음식과 과자를 고백하며 짐작했던 서로의 성향이 이젠 네 글자의 영어 알파벳으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솔이와 나는 직관과 감성의 영역만 다를 뿐, 내향적인 성향도 느낌과 판단을 내리는 영역도 닮았다. 이상하게 나와 많이 닮았다고 느꼈던 이유가 여기 있었다. 


솔이도 이제 친구들에게 나의 MBTI가 무엇인지 말할 수 있다며 신나 했다. 솔이가 아직 접해보지 않은 새로운 영역, 내가 누구인지 타인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민이 많을 시기에 작은 안내판을 하나 선물한 것 같아 기뻤다. MBTI 질문을 던지며 솔이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이해했다. 솔이는 누구보다 당당했지만, 타인의 시선이 많이 신경 쓰는 아이였고, 자신의 감정보다 함께 하는 이들의 감정을 우선하고 더 많이 요동치는 아이였다. 일상 속에서 많은 불안을 느낀다는 솔이를 위해 우린 3번째 시간을 준비하며 두 가지의 숙제를 함께 하기로 했다. 


먼저 오늘의 이야기를 각자의 방식으로 기록하는 것이 첫 번째 숙제, 각자가 느끼는 '불안'에 주목해 어떤 형식의 글이든 짧게 써오는 것이 두 번째 숙제였다. 불안이란 감정에 직면하는 것. 열한 살의 솔이에게 만만한 작업은 아니겠지만, 그 어떤 감정도 글로 마주할 수 있고, 함께 꺼낼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나도 이제 두 번째 숙제를 해야 한다. 솔이와 나눌 나의 불안. 어른의 삶이라고 해서 그리 늘 편안한 것만 아니라는 걸 솔이가 너무 놀라지 않도록... 잘 전달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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