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꽃 우동준 Sep 29. 2021

[동준] 불안한 이가 좋은 글을 쓸 수 있단다

솔이와 나의 세 번째 시간. 우리는 지난 시간 MBTI 검사를 하며 서로의 성향을 파악했고, 각자가 무엇에 강점이 있는지 또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나누었다. 나는 나의 쓸모와 의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을 두려워했고, 솔이는 무언가를 향해 밀려오는 불안함을 두려워했다. 

 

우리는 숙제를 하나씩 더 하기로 했다. 수업 이후의 일상을 담은 일기를 쓰는 것과 함께 매 수업마다 나왔던 중요한 감정을 붙잡아, 그 감정에 대한 에세이를 추가하기로 했다. 나는 추가 글감으로 솔이가 말했던 '불안'에 주목했다. 솔이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불안을 느끼고 있었고, 내가 무엇인가를 잘못하지는 않았는지 혹은 내가 방금 내뱉은 말로 나의 친구가 기분 나빠하진 않았을지 늘 염려하고 불안해했다.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불안을 직시하는 일이다.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고, 내가 어떤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지 글로 쓴다면 막연했던 불안의 안개가 조금씩 걷힐 것이다. 솔이와 나는 서로의 내면을 깊이 바라보면서 '나의 불안'에 대한 글을 추가로 작성하기로 했다. 


시각장애가 있는 솔이는 '불길한 소리', '어떤 큰 소리'에 불안을 느꼈다. 벌레를 싫어하는 솔이는 작은 소리마저 크게 들리는 늦은 밤이 그렇게 불안하다고 했다. 내가 보지 못한다고 해서 벌레가 가만히, 얌전히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과 함께. 자신만의 감각을 동원해 주변에 뭐가 나타났는지 알 수 있다는 솔이는 벌레가 움직이는 것마저 나의 몸으로 알 수 있었다. 솔이의 글을 보고 조금씩 더 질문을 던졌다. 벌레를 왜 두려워하는지, 특히 어떤 벌레를 무서워하는지. 


그리고 알게 되었다. 솔이에게 여러 질문을 던지고 그가 말하는 답을 들으며 명확해진 한 가지는, 솔이는 무언가 소리가 들릴 때보다 갑자기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를 불안해했다. 벌레 소리가 갑자기 들리지 않거나, 나와 잘 얘기하던 친구의 음성이 갑자기 들리지 않을 때. 내가 무언갈 잘못하진 않았는지 점검하고 내가 실수하진 않았는지 자책에 빠지는 그 시간을 불안해했다. 


나는 솔이에게 불안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마다 꼭 어디에서든 글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글은 내가 어떤 실수를 하든 갑자기 말을 뚝 멈추는 친구가 아니라고, 누구에게도 나의 비밀을 먼저 말하지 않고, 언제나 조용히 나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여주는 가장 좋은 친구가 글이라고. 그 누구보다 글을 가장 가까운 친구로 둘 때 우리는 불안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나도 그랬다. 알 수 없을 불안한 떨림과 자기 파괴적인 분노가 끓어오를 때 나는 급히 알약을 찾아 입에 털어 넣듯 빈 노트에 무엇이든 휘갈겨 적어댔다. 한 문장을 쓸 때마다 한 번의 숨을 내뱉었고, 하나의 긴 문단을 완성하자 나의 심장박동도 조금씩 잦아들었다. 솔이에겐 민망해 말하지 않았지만, 불안은 좋은 글을 위한 맛깔난 재료다. 좋은 글은 한 번의 영감이 아니라, 수백 시간의 쏟아냄과 검게 그을린 노트로 완성된다.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 글에서 안정감을 느낄 때 좋은 글을 만들기 위한 최적이 조건이 완성된 셈이다. 


담담하게 써온 솔이의 일기를 보며 나는 한 가지의 팁을 알려주었다. 문장 구조를 동일하게 짜거나, 같은 단어를 반복 사용해 조금 더 글의 리듬감을 살리는 것. 마치 연극처럼 마치 드라마처럼 문장에 감정이 실린다면 솔이의 글도 조금 더 자신 있게 무대 위로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조금의 연습을 거친 후 수업을 마무리하는 짧은 글을 지었다. 나도 솔이도 오늘로 한 뼘 더 성장했다. 


---------


<솔이> 나는 이럴 때 불안해요.   


             

벌레소리가 내 옆에 있는 것 같을 때 불안하다 

그리고 

친구의 답을 기다릴 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불안하다. 

순간 말을 고치게 되는데 그럴 때도 불안하다. 

생각하다가 친구의 답을 못 들을까 봐 생각할 때도 불안하다. 

그래도 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친구는 글. 

나는 글을 쓸 때 좋고. 행복하다.      





<동준> 나는 솔이를 믿는다. 



나는 솔이와 함께 하는 이 시간의 힘을 믿는다. 

솔이와 내가 글이라는 친구를 함께 사귀며 

글에게 털어놓은 모든 순간이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또 다른 용기와 계기가 될 거라 믿는다.      

솔이는 자신의 불안을 솔직히 말해주었다. 

이제 솔이는 전처럼 불안해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든 글에게 털어놓으면 

그때부턴 글이 나를 지켜준다.      

벌레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아 이걸 글로 써야지라는 생각에 웃음이 나올 테고 

친구가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을 때 

아 이 불안함을 또 글로 써야지라는 생각에 뿌듯해질 테다. 

글은 그렇게 힘이 세다. 솔이도 힘이 세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