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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꽃 우동준 Oct 04. 2021

[동준] 솔이야, 매주 글이 늘고 있어!

다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만난 우리. 오늘도 숙제는 두 개. 추석이 있어 2주간 못 본 서로의 일상에 대한 글과 주제로 제시된 '믿음'에 관한 글이었다. 그래도 한 주 건너뛰어서 그런가, 나를 쑥스러워하는 솔이를 보며 내가 먼저 숙제 발표를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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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 이번 키워드는 ‘믿음’          


 나는 오래 믿어온 종교가 있다. 성당과 신부님이란 단어로 표현되는 가톨릭. 유아세례라고 해서 아주 갓난아이일 때 세례를 받고 이제 서른을 넘겼으니 꼬박 삼십여 년 동안 성당을 다닌 셈이다. 그래서 누가 내게 무엇을 믿느냐고 하면 나는 고민 없이 ‘가톨릭이요’라고 답한다. 하지만 능숙히 말을 뱉으면서도 무언가 개운치 않은 건 사실이다. 나는 정말 가톨릭을 믿는 걸까, 아니 믿는다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라는 고민과 함께.      


 나는 믿음을 어떤 감성적인 태도로 여기고 싶진 않다. 믿음은 오히려 구체적인 태도일 것이다. 내가 상처 받아도 좋다는 태도.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용기. 내가 상처 받아도 그래도 계속 믿겠다는 의지. 나는 믿음을 보이지 않지만, 아주 구체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다 떠날 때 그 사람 옆에서 계속 앉아 있는 것, 모두가 그 사람의 반대편에 설 때 계속 그 자리를 지키는 것. 모두가 분노하고 침을 뱉을 때 옆에서 가만히 앉아 함께 욕을 듣는 것. 나는 이런 구체적 행동만이 믿음이란 개념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솔이를 믿는다. 그 말은 곧 솔이의 곁에서 함께 있을 것이라는 선언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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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숙제를 나눈 우리는 솔이의 일기에서 나온 단어 '비행기'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기로 했다. 하지만 앞선 시간과는 달리 '비행기를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비행기로 비유해' 무엇이든 글을 써보기로 했다. 내가 예상한 것보다도 표현력과 관찰력이 좋았던 솔이였기에 이젠 보다 적극적으로 문장을 맛깔나게 쓰는 법에 대해 알려주기로 했다. 


5분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솔이가 참고할 수 있게 예시로 글을 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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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음은 아주 작은 자동차      


나는 마음이 작아. 나는 아주 마음이 작아. 

내 마음에 담긴 사람은 4명. 나와 엄마. 동생. 그리고 여자 친구. 

내 마음은 좁아. 나는 아주 마음이 좁아. 

내 마음에 탈 수 있는 사람은 겨우 4명. 아주 작은 자동차. 


내 마음은 아주 작은 자동차와 같아 겨우 4명이 타지.           

이 사람은 마음은 커. 이 사람은 아주 마음이 커. 

이 마음에 담긴 사람은 수십 명. 그와 그의 가족, 그리고 그가 아는 사람들. 

그 마음은 넓어, 그는 아주 마음이 넓어. 

그 마음에 탈 수 있는 사람은 무려 수십 명. 아주 넓은 비행기. 

그 마음은 아주 넓은 비행기와 같아 무려 수십 명이 타지.         

  

나는 아주 작은 자동차

그는 아주 넓은 비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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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히 나의 글을 듣던 솔이는 무언가 알겠다는 듯 다시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여러 개의 점자가 빠르게 솟구쳤다 사라지며 솔이는 한 글자 한 글자 아주 천천히 글을 지어갔다. 잠시 후 신나게 외치는 솔이. 


"선생님 다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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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비행기 같은 우리의 마음      


우리의 마음엔 곧 비행기가 같은 경향이 있다. 

우리 엄마는 빠른 성격과 하늘로 날 듯 업되어있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무언가에 잘 감동하고, 무언가에 아주아주 들떠있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아빠는 푸른 하늘처럼 부드러운 성격을 가지고 있다. 비행기를 타고 꼭 푸른 하늘로 날아간 것 같이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다. 구름처럼 부드럽고, 햇살처럼 따스한 성격이 있다. 그리고 포근한 성격까지 있다. 


내 친구 규린이는 빠른 성격을 가지고 있고, 비행기가 사고 나지 않도록 운전을 열심히 한다. 다른 비행기가 지나가려 하면 비켜주고. 하지만 빠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규린이는 뭐든 빨리 하고 싶어 하지만, 친구와의 관계만큼은 사람들과의 관계만큼은 아주아주 느리게 가고 싶어 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느리게 천천히라고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다. 하지만 행동만은 빠르게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내 친구 한나는 오직 빠르게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누가 보면 비행기랑 친구인 줄 알 것 같은 그런 성격이 있다.


내 친구 수연이는 빨리빨리라고 외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오직 빠르게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규린이처럼 친구의 관계는 느리게 하지 않고, 친구의 관계마저 빠르게라고 외치는 성격이다. 그것 때문에 교통사고는 많이 나고 있다. 


우동준 선생님은 운전을 열심히 하지만, 하늘처럼 푸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고 있는 것같이 그리고 그 하늘처럼 푸르고 따뜻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구름처럼 부드럽고 햇살처럼 따스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우리 모두 비행기 같은 성격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아마 우리 마음 구석에 한 가지씩은 있을 것 같고. 우리의 성격은 비행기 같은 성격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그럴 수 있다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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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안내해준 과제가 아니었음에도, 솔이는 본인이 할 수 있는 대로 비행기의 특징을 상상하고 찾아낸 특성에 맞춰 주변인들을 비유했다. 어쩌면 솔이에게는 문장에 대한 교육은 불필요할지 모른다. 이미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냈고,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다. 솔이에게 필요한 건 오히려 더 재미난 글을 쓸 수 있도록 하는 무기. 다양한 어휘와 이를 이해할 수 있는 직접적인 경험이 필요하다. 시각적 자극으로 개념을 이해하는 것에는 제한이 있기에 손으로 만져보고 귀에 가져가 들어보는 보다 직접적인 체험이 필요하다. 앞으로 나는 솔이가 하나의 어휘를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이미 인지하고 있는 단어를 보다 넓게 사용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비유하는 문장 구조를 연습해야 한다. 나는 솔이에게 5번째 시간엔 '따스함'으로 글을 써보자고 했다. 무엇이든 따스함을 중심으로 내가 경험했던 상황과 고민에 대해 비유하고 묘사하며 글을 써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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