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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yoon Mar 07. 2021

애플 전용서체 이름은 왜 샌프란시스코일까

애플, IBM, 에어비앤비 등 IT기업 전용서체의 이름과 역사에 대하여

기업 전용서체는 특징이 뚜렷한 서체든, 중립적인 서체든 브랜드의 정체성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국내에선 아무래도 배달의 민족과 네이버가 서체 디자인에 가장 큰 의지를 가진 기업이라 할 수 있겠다. 배달의 민족은 한나체·주아체·도현체·연성체·기랑해랑체·을지로체·을지로10년후체 등을 배포했고, 네이버는 나눔고딕·나눔명조·나눔손글씨·나눔스퀘어 등을 배포했다. 두 기업은 서체의 "이름"부터 큰 차이를보인다. 기업이 서체를 만드는 이유, 배포하는 방식, 작명법 등으로 브랜드의 정체성을 체감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전용서체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배민 을지로10년후체와 네이버 나눔글꼴


그래서 글로벌 IT기업들의 전용서체가 만들어진 과정과 그 이름에 얽힌 흥미로운 사연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1. Apple San Francisco

2014년 발표된 후 지금까지 San Francisco는 디지털 제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서체이자 수많은 IT기업들이 참고하는 주요 레퍼런스로 자리했다. 영문, 숫자, 기호의 균형감, 사용성은 물론이고 Display, Compact, Text, Mono, Rounded 등으로 서체를 확장하여 제작한 방식까지 매우 혁신적이었다.

가독성과 심미성 모두 뛰어난 SF.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샌프란시스코는 그 태초의 형태와 매우 다르다. 애플의 초창기 아이콘과 서체는 수잔 케어가 전부 디자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녀가 그린 1984년의 샌프란시스코를 보자.

출처 : 수잔 케어 홈페이지 http://kare.com/apple-icons/


잡지나 신문에서 글자들을 오려내서 누가 쓴 것인지 못 알아보게하는 것을 Ransom Note Effect라고 한다. 첫번째 샌프란시스코는 이 효과를 이용해 다소 개구진 서체를 만들었다. 서체보다는 그림에 가깝기도 하다. 그저 이름만 같고 현재의 샌프란시스코는 극단적인 가독성과 시원한 형태를 가진 산세리프다. 마찬가지로 애플의 세리프 서체인 뉴욕도 옛 서체의 이름만 빌렸을 뿐 형태적 유사성은 전혀 없다.


잡스는 애플 서체들에 누구나 알만한 대도시의 이름을 붙이라고 지시했다. 이 도시들을 고른 이유는 알 수 없고 그냥 잡스가 그렇게 짓고 싶어했다는 사실 밖에 찾지 못했다. 현재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 2개 밖에 없어서 무슨 유래인지 짐작하기 어렵지만 1990년대에 존재했던 애플 서체들의 리스트를 보면 모나코, 시카고, 로스앤젤러스 등 일관되게 대도시 이름으로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서체들도 모두 수잔 케어가 그렸다.

*참고: 매킨토시의 서체 역사 / 샌프란시스코 서체의 역사




훨씬 더 이전으로 돌아가보면, 애플은 2002년까지 Garamond를 전용서체로 사용하였고,



2002년부터 2014년까지는 Myriad를 전용서체로 사용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애플 인하우스 디자이너들이 제작하여 정확히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미리어드는 Robert slimbach와 Carol Twombly가 디자인했다. 각각 Adobe Garamond와 Adobe Caslon을 디자인한 사람들로 타입 디자인의 마스터라 할 수 있다. 미리어드는 당시엔 최신 기술이었던 Multiple Master Font로 개발되었다고 한다. 이는 한 서체에 Condensed, Wide, Italic 등 다양한 Weight와 Style을 담는 기술을 의미하는데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방식이다. (볼드와 라이트를 각각 따로 설치하지 않는 것처럼) 미리어드도 이름의 유래를 찾을 수 없었지만, "무수히 많은"이라는 뜻을 지녔기에 당시 상황을 고려해보았을 때 참 잘 지은 이름이라 느껴진다.






2. IBM Plex

서체를 만드는 것에는 꽤 큰 비용과 시간, 노동력이 투입된다. 하지만 전용서체를 만드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땐 더 이득이다. 2017년, IBM이 IBM Plex를 내놓기 전까지 IBM의 전용서체는 헬베티카였다. 한 때 애플을 포함한 여러 기업들의 전용서체이기도 했던 바로 그 헬베티카. IBM은 헬베티카 라이선스 비용으로 매년 100만 달러 이상을 Monotype에 지불했다. 관련 기사


1960~70년대엔 IBM 일반적인 기계가 니라 좀 더 근대식 기계를 만든다는 점에서 모던하고 효율적인 헬베티카 알맞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 IBM 사업 영역은 PC 하드웨어를 넘어 전세계인을 대상으로 미래적인 소프트웨어, 비지니스 컨설팅 으로 크게 확장됐고 브랜드 차원에서의 변화가 필요한 국면을 맞았다. 이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Mike Abbink 합류하면서 IBM만의 서체를 제작하기로 한다.


2017년에 발표된 IBM Plex는 로고에서 느껴지는 직선과 곡선의 대비가 신기하게 합쳐진 서체였다. Mike Abbink가 말하길, 이 서체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과 기계적으로 구현되는 순간 사이의 기이함을 글자의 형태로 담아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래는 IBM 아이덴티티를 디자인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Eliot Noyes 이름을 따서 서체 이름을 Eliot이라 지으려 했지만 가족들이 거부했다. Abbink 새로운 이름을 생각해야했고 plex라는 이름을 고안했다. -plex 다른 단어와 붙어서 다른 의미를 생성해내는 접미어로 IBM  부분이   있는 메타포였다. Multiplex, Duplex 같은 단어처럼 IBMplex 하나의 단어로 기능하는 것이다. Eliot이라 지었다면 낭만적이고 유서깊은 이름이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Plex   IBM스럽고 매력적인 이름인  같다. 관련 기사





3. Airbnb Cereal

에어비앤비는 오랜 기간 LL Circular를 전용서체로 사용했다. 2013년에 출시된 LL Circular는 특유의 지오메트릭한 디자인으로 에어비앤비, 스포티파이를 비롯해 많은 IT기업의 사랑을 받았고 제 2의 Futura라는 명성을 얻기도 했다.

LL Circular로 제작된 광고


2018년 5월, 에어비앤비는 시리얼이라는 이름의 전용서체를 발표한다. Circular처럼 지오메트릭하지만 좀 더 둥글고 개구진 인상을 지녔다. 만든 이유는 모든 기업이 마찬가지겠지만... 시중에 있는 기성 폰트는 오프라인 인쇄물에서는 좋은데 디지털 환경에선 적합하지 않거나, 반대로 디지털 환경에서의 가독성은 높지만 브랜드 서체로써는 매력이 없거나, 글로벌 기업들은 여러 환경에서 아주 많은 언어를 제공해야하는데 복잡한 옵션들이 완벽하게 모두 구현된 서체를 찾는 것이 불가능해서- 등 엄청나게 많다.

2008년, 창립자 Brian Chesky와 Joe Gebbia는 에어비앤비를 창립했지만 그들의 서비스에 들어오는 사용자도 없었고, 돈은 바닥나고 빚이 쌓이고 있었다. 빚 청산을 위해 그들이 선택한 것은 미국 대통령 선거에 맞추어 민주당 버락 오바마와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가 그려진 시리얼 박스를 파는 것이었다. 다른 창립자는 미쳤다고 했지만 그들은 밤새 접착제로 상자를 붙였다. 실제로 오바마 박스 Obama O는 3일 만에 매진됐고 이베이 같은 쇼핑몰에서 중고로 350달러에 팔리기도 했다. (슬프케도 존 매케인 얼굴이 붙은 Cap'n McCain은 매진되지 않았다고) 관련 기사


처음 서체를 만들었을 땐 전통적인 네이밍 방식도 고려했지만 경쾌하고 개방적이며 단순한 형태를 지닌 이 서체에 약간 별난 부분을 가미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시리얼이 회사를 구한 사연을 담아 전용서체의 이름이 시리얼이 되었다.




4. Google Product Sans

구글은 2015년 리브랜딩을 진행하면서 전용서체를 만들었다. 새로운 로고는 아주 순수하게 기하학적으로 다듬어진 형태로, 단순하면서도 친근하고 이해하기 쉬운 스타일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독특한 부분은 어린아이가 글자 쓰는 것을 연습하듯 획을 그리는 순서와 방향을 정직하게 그린 듯한 인상이라는 점이다. 구글은 이를 "Childlike simplicity of schoolbook letter printing"이라 설명한다.

더 귀여운 부분은 살짝 비틀어진 e이다. Google에서 e만 비뚤어진 것은 구글이 항상 조금씩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색다른 도전을 한다는 것을 상기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구글 프로덕트 산스는 새로운 브랜드 시스템을 완벽하게 이행하기 위해 제작되었고, Simple, Humble, Approachable을 중요한 키워드로 선정했다. 여기서 Humble이라는 키워드가 인상깊다. 서체의 디테일을 보면 로고의 e를 비튼 것처럼 소문자a, 대문자Q 등의 디테일이 약간 엉뚱하고 어설퍼보인다. 왠지 이런 의도된 어설픔이 구글이 생각한 Humble 아니었을까.


전용서체는 구글 로고와 함께 쓰이기 때문에 비슷하면서도 달라야했다. 그래서 적당히 중립적인 요소를 넣었다고 한다. Google Product Sans는 이름 그 자체로 제품에 사용되는 서체라는 의미다. 구글의 제품 지향적인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관련 기사





5. Android Euclid

2019년 안드로이드 역시 리브랜딩을 하며 새로운 전용서체를 지정했다. 아직 어디에 쓰이는지는 모르겠고 공식 홈페이지 android.com에만 적용되어 있다. 왜 유클리드인지, Swiss Typefaces의 유클리드인지, 앞으로 전용서체로 계속 쓸 것인지 등 구체적인 정보는 알려진 바 없다. 세세하게 서체 디테일을 뜯어보았을 때 Swiss Typefaces의 유클리드를 약간 커스텀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기하학적인 형태를 원했기에 (이름부터 아주 기하학적인) 유클리드를 선정하지 않았나 싶다.







6. Microsoft Segoe

애플이 헬베티카를 전용서체로 사용하던 시절, 마이크로소프트는 헬베티카와 정말 비슷하게 생긴 전용서체 Arial을 만들어 전용서체로 사용했다. 이 때 라이선스 비용 안 내려고 헬베티카를 베꼈다는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아주 재밌다고 생각하는 역사의 한 장면이다) Arial을 만든 Monotype에서는 애써 변호에 나섰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헬베티카 라이선스 비용을 절대 피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고, Arial 개발에도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갔다고 공식적으로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완벽하게 자폭이 동일하다는 점은 피할 수 없는 부분 같다.

출처: https://www.marksimonson.com/notebook/view/how-to-spot-arial


현재 마이크로소프트의 공식 전용서체는 Segoe다. 2012년 마이크로소프트가 25년 만에 로고를 리뉴얼하며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이 서체 또한 Monotype에서 개발했지만 Arial보다 완성도는 훨씬 높다. 체스 글립이 포함된 Segeo Chess부터 Segoe Print, Segoe Script, Segoe UI, Segoe UI Emoji, Segoe UI Symbol, Segoe UI Historic까지 폭넓은 스타일과 언어, 자족을 지원한다.

Segoe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로고를 비롯해 홈페이지, 각종 프로그램, 하위 브랜드들에 일관되게 사용되며 Google Product Sans와 같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Segoe와 Arial이 무슨 의미인지는 절대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 무슨 의미있지 아시는 분이 있다면...! 도움을 주시길 바란다.






지금까지 애플, IBM, 에어비앤비, 구글, 안드로이드, 마이크로소프트의 전용서체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다. 디자인적인 이야기보다는 어쩌다 전용서체를 만들게 됐는지, 역사적인 흥미로운 사실들을 언급한 것에 가깝다. 기업 전용서체는 문자의 사용성과 가독성, 브랜드 정체성을 담아야하기 때문에 정말 어렵고 복잡한 작업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서체는 궁극의 브랜딩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모든 문자가 의도적으로 설계된 디자인이라면 얼마나 브랜드와 사용자의 접점이 넓어질까. 국내에도 전용서체로 인해 브랜드가 더 강력해진 사례들이 많기에 앞으로 더 새로운 형태, 새로운 방식의 서체가 등장할 것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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