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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랑 Oct 26. 2022

불꽃축제뷰 아파트 VS 한강돗자리

기다려지는 무언가 있다면 당신은 행복한 사람

3년 만에 불꽃축제가 열렸다. 105만 명이 불꽃축제를 보기 위해 모였다고 한다. 이 중엔 아침 일찍부터 나와서 기다린 사람들도 많았다.


댓글 중엔 구태여 사람 많은 곳에 가서 왜 시간을 낭비하냐는 반응들도 있었다. 나도 솔직히, 제주도 맛집 앞에 텐트 치고 밤새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별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곤 했었다.


그런데 불꽃축제날 남편과 노들섬에 산책을 갔다가 우연히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게 되었다.


한강대교 난간 밑에 해가 중천인데 벌써 돗자리들이 빼곡히 펼쳐져 있었다. 돗자리마다 각자의 좌판이 벌려져 있다. 비싸보이는 DSLA카메라들을 삼각대에 설치하고 전문적인 느낌을 풍기는 아저씨들도 있고, 아들이랑 같이 나들이를 나온 가족도 있고, 대낮부터 맥주판을 벌인 친구들도 있다. 아저씨들은 치킨을 시켜먹고, 가족들은 싸온 도시락을 먹고 있다(집에서 싸온 수없이 많은 비닐 봉다리가 그들의 비장함을 보여준다).


끝없이 이어지는 저마다의 이야기, 저마다의 간식. 딱딱한 바닥에 앉은 사람들의 표정이 그렇게 행복해보일 수가 없다. 한강이 원래 이런 장소였나? 그들이 기댄 난간의 자살방지턱이 무안하게 느껴질 정도다.



우리 신혼집은 한강뷰 아파트는 아니지만 63빌딩은 보이는 불꽃축제뷰 아파트다. 이 집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불꽃놀이라서 이번 축제는 집에서 구경해보기로 했다. 우리동 앞에 있는 206동이 살짝 가리긴 하지만 각도를 잘 맞춰서 보면 불꽃 반경의 80% 정도는 볼 수 있다. 남편과 아파트 복도에 서서 와인을 홀짝거리면서 어른이처럼 불꽃을 구경했다.


약간 웃기는 건 빛과 소리의 시간차다. 63빌딩이랑 거리가 멀다보니 불꽃이 보인 뒤 2초 뒤에야 폭죽 소리가 들리게 된다.


불꽃을 보면서도 계속 낮에 한강에서 보았던 사람들의 표정을 떠올렸다. 여기 멀리서도 이렇게 눈물나도록 좋은데, 여의도에서 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 사람들은 불꽃을 보기 한참 전부터 이미 행복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들의 표정과 목소리가 그렇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불꽃을 보고나서 소리를 들은 것처럼, 그들은 이미 불꽃의 시작을 이른 아침 간식을 싸서 차가운 공기를 뚫고 집을 출발할 때 느꼈을지 모른다.


나는 여행 중 새벽에 캐리어를 끌고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탈 때를 제일 좋아한다. 더 전으로 돌아가 여행을 위해 호텔을 예약할 때도 좋아한다. 더 전으로 돌아가 여행지를 정할 때도 좋아한다.



기다리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기다림이 시작된 순간 기다리는 그 날의 행복의 일부가 먼저 찾아온다. 불꽃의 빛이 소리보다 먼저 찾아오는 것처럼. 기다리는 것은 어쩌면 행복을 오랫동안 느끼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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