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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 May 17. 2017

덴마크와 가장 가까운 스웨덴, Malmö

따뜻한 회생의 도시

덴마크를 떠나기 위해 중앙역에 도착해보니 나와 행색이 비슷한 사람들이 역 여기저기 널려 앉아있다. 좀 싸한 느낌이 들어 티켓창구로 가보니 역시나, 스톡홀름으로 가는 티켓이 '오늘은' 없다는 거다. 로스킬레 안에 있을 때 예약을 하려고 했지만 느리고 잘 되지 않는 인터넷 때문에 기차표 예약을 미리 하지 않은 게 잘못이었다. '여기엔 티켓이 없으니 제일 가까운 스웨덴인 말뫼로 가서 한번 확인해봐라, 티켓이 있을지 확신은 못 한다'고 하는 할아버지 직원의 꼬장꼬장한 말에, 알겠다고 대답한 나는 영국에서 나올 때 구입해두었던 인터레일 패스를 꺼내어 말뫼로 가는 차를 기다리며 플랫폼에 앉아 시간을 패스에 적기 시작한다. 뭐 그래, 방법은 있겠지. 며칠 여행계획이 조금 달라지는 건 큰 일도 아니니까.



플랫폼을 사이에 두고 서 있는 기차에 우박을 머금은 비가 소리를 내면서 쏟아지기 시작한다. 기차 차창을 때리는 타탁타탁하는 소리와 세차게 내려쏟치는 비소리가 유난히 크다. 여기도 그리 날씨가 얌전한 곳은 아니구나, 싶다가도 어디든 움직이려고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지는 비가 이젠 지겹지도 않은 기분이다. 여기선 비가 이렇게 내려,라고 알려주는 듯도 하고.



기차를 타기 전에도 여권 검사를 하더니 가는 기차 안에서 역무원인지 경찰인지로 보이는 남자가 들어와 여권을 확인한다. 국경을 건너기 때문이다. 덴마크에서 스웨덴으로 건너오는 데에는 4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유럽은 그러고 보면 정말 서로 가까운 나라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말뫼에 도착해서 다시 기차표를 확인해봤지만 스톡홀름을 갈 수 있는 기차는 그 다음 날에나 있었다. 일단 덴마크를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지라 말뫼로라도 발 길을 돌렸던 나는 그 동네에 하루 머물러야 할 처지가 되었다. 사실 말뫼에 대한 사전 지식은 없었지만 이전 회사 동료가 나보다 여행을 먼저 가면서 말뫼가 좋더라고 말해주었던 것, 조선 사업으로 한 때 도시를 이끌어갈 정도로 유명했으나 우리나라나 다른 국가의 조선업에 의해 완전히 망한 후에 대체 에너지 개발로 도시를 다시 일으켰다는 회생의 도시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스톡홀름으로 가는 티켓을 예매하고 일단 역을 빠져나와서 가까운 호스텔을 검색했다. 걸어 10분 정도 걸리는 호스텔을 찾아 예약을 하고 길을 찾아 걷기 시작하는데, 날씨가 정말 너무 좋았다. 덴마크에서 출발할 때와는 완전히 딴 판이었다. 덴마크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스웨덴은 좀 더 아기자기한 동네였다.






따뜻한 햇살이 몸을 감는 느낌은 덴마크보다 스웨덴이라는 나라에 대한 첫 인상을 조금 더 '따뜻한' 곳으로 만들어주었다. 조용하고 한산한 도시, 그럼에도 따뜻한 곳. 백야가 있는 북유럽답게 호스텔 방 안에는 암막커튼이 있었다. 방 안에는 벌써 며칠 째 그 자리에 있는 듯한 나이가 지긋해보이는 분이 앉아 책을 읽고 계셨다.





짐을 풀고 다시 나선 말뫼의 풍경은 노란색으로 칠해진 조그마한 번화가, 음식점이 모여있던 광장으로 기억에 남는다. 신발 가게의 부츠 간판이 정겨운 느낌을 주었다. 광장에 있는 대부분의 레스토랑이 야외에 테이블을 놓고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시간이 되자 하나 둘 테이블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유로2016의 준결승전을 시청하는 사람들로 여기저기 가득한 사람들이 경기 중계에 환호하기도, 야유하기도 했다.





길 곳곳에 있는 분수나 동상들이 도시의 일부분으로 슬쩍 녹아들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말뫼 자체는 큰 도시는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잠시 쉬어가기에 제격인 곳인 듯 했다. 왠지 모르게 호스텔에서도 같은 방에 머무는 사람들이 며칠씩 '별 거 없을 것 같은' 그 동네에 며칠씩 죽치고 앉아 있는 것이 이상해보이지도 않았다. 스웨덴 특유의 편집숍같은 가게들을 구경하고, 골목길 구석구석을 돌아보면서 걷다보니 말뫼의 하루가 흘렀다. 도시의 랜드마크라는 트위스트 빌딩도, 도시의 허리에 있는 강도 다 좋다해도 결국 내 발걸음을 이끈 곳은 작은 숍들과 음식점이 모여있는 그 광장이었다.





다음 날 스톡홀름으로 가는 기차를 타러 가는 길에 다시 곁눈질로 마을을 한 바퀴 더 둘러보았다. 어제 비어있던 길가에 아침에 서는 장 준비로 바쁜 사람들이 보인다. 분수 근처의 카페에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한 나는 또 다시 떠날 채비를 한다.





왜 어딜 가든 떠나오는 길엔 아쉬움이 남는 걸까, 문득 그 아쉬움의 깊이나 향취는 짙거나 얕은 정도만 다를 뿐 그 색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영과 울림이 다르듯 '다음'을 기약하는 건 그 무게의 순서대로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생기게 될까.




내 손목에 남을 그 내음이 허공에 흩어져 사라지기 전에는 다음 역에 도착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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