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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 May 03. 2017

Forever young

아이돌, 청춘에의 끝없는 갈망

중학교 때, 학교가 끝나면 집에 오자마자 교복도 갈아입지 않은 상태로 음악방송을 틀었다. '끼고 살았다'는 표현이 딱 맞다. 케이블TV에서 방송해주는 신곡이나 뮤직비디오를 모조리 챙겨보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들도 많이 들었다. (당시에 들었던 음악은 보이즈투멘이라던가, 베이비페이스 같은 흑인음악, 별밤이나 스윗박스같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타고 나오던 감성적인 곡들 위주였다.) 취업 후 공연계에서 일을 하면서 당연히 트렌드나 활발하게 활동하는 가수들의 동향이나 음악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건 당연한 것이긴 했지만, 회사 생활을 하면서 그 때 당시처럼 트렌드를 잘 알 수 없었기도 하고 그만큼의 열정도 줄어들었던 건 사실이다. 그게 지속되었다면 이미 음악방송PD라던가 음악평론가가 되었거나, 음악 쪽에서 이미 일을 시작하지 않았었을까.





2011년 H.O.T 콘서트




나는 90년대를 가요계의 르네상스였다고 말한다. 새로운 장르가 봇물터지듯 등장했고, 각 장르가 고루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시기였다. 90년대 대중음악의 수혜를 받고 자란 나도 10대 때 가장 심취했던 건 아무래도 댄스/힙합/알앤비 음악이 아니었나 싶은데, 1세대 아이돌 그룹부터 춤에도 늘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댄스가수들을 대개 좋아했던 것 같다. 대학에 가서는 거의 TV를 보지 않고 살기도 했고 스트릿댄스에 심취하느라(였겠지) 음악방송이나 가수 퍼포먼스에 관심을 끊고 살다가,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 오랜만에 다시 음악방송을 보게 되었을 땐 당시 가장 잘 나가는 그룹은 빅뱅, 동방신기, 소녀시대, 2NE1, 샤이니 정도였고 그 외에는 잘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이후엔 보이그룹이든 걸그룹이든 엄청나게 쏟아졌으니 거기서 온 피로도도 한 몫 했으리라. 그래도 여전히 아이돌에 대한 관심은 내 나이와 비슷한 친구들보다 훨씬 많은 편이긴 했어도 대중음악은 내 삶의 BGM정도로 튀지 않을 정도로만 잔잔히 흐르고만 있었다.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잘 생긴 애 옆에 잘 생긴 애.




회사에서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가 업무에서도 점점 중요도를 더해가면서 고이 접어두고 있던 관심사를 조금씩 내 레이더망에 가져왔는데, 다루는 컨텐츠 정도일 뿐이었으니 내가 아는 남자 아이돌 계보는 빅뱅-비스트-인피니트 정도에서 멈춰있었다.(걸그룹보다는 보이그룹이 내가 더 우위를 두는 '퍼포먼스'의 만족도가 조금 더 높은 편이라 보이그룹 위주로만 언급한다.) 그러다 그 때 당시 데뷔를 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던 '방탄소년단' 쪽에 관심이 갔다. 업무 차원에서도 알아두기 위해 그룹 내 멤버에 대한 것이나 뮤직비디오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오랜만에 다시 퍼포먼스형 아이돌 그룹을 만나 참 반가웠던 게 사실이다. (요즘 아이들 진짜 잘하는구나....이러면서, 노인네같이.)




막상 난 그 때까지도 그 아이들을 듣고 알긴 알았어도 속속들이 그 팀에 대해서 알고 있진 못했었는데 '이 팀 괜찮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주다보니, 이게 의도치 않은 영업(?)이 되었는지 주변 사람들이 그 팀에 관심을 갖다 못해 입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닌데도. (진짜 아니라고...)


방탄소년단 '피 땀 눈물' 컨셉포토



지금은 빌보드 차트에서 연일 기록을 경신하는 '기록소년단'이 되었지만, (이젠 좀 무서울 지경이다. 진심으로.) 내가 이 팀에 대해 알게 되고 애정을 갖게 된 계기는 역시나 이 팀을 처음 1위로 만들어준 <화양연화>시리즈 때문이었다. 친구가 뮤직비디오를 해석해주는 유튜브 채널 페이지 링크 하나를 보내주었다. '길어도 꼭 끝까지 봐'라고 당부하던 친구 덕에 내용을 정독했었는데, 그 안에 많은 함축과 상징이 들어있었고, 복합적인 해석도 가능했다. 아이돌의 뮤직비디오에서 몇 편에 걸쳐 청춘, 그리고 성장통, 그럼에도 미해결된 현재의 불확실성까지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신선했다.


사실은 어릴 때는 젊음 때문에 조금 더 용인되는 방황이지만,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나 지금의 나에 대해 겪어내야 할 수 밖에 없을 모든 이의 고민이 뮤직비디오 안에 고스란히 들어있었고, 어찌보면 그게 내가 지나온 발자취와도 닮아서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왜 나는 지금 여기에 이렇게 몰입하게 되는지, 마음이 이상한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그 친구나 내 맘은 사실 똑같은 거였다.



방탄소년단 '화양연화 pt.1'


이 방탄소년단이라는 아이들의 컨셉에 이렇게 젖어들어도 되나 싶었던 건, 대부분의 대중음악은 얕은 사랑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특히나 힙합을 빗댄 음악엔 자기과시나 허세가 잔뜩 더 들어있는 게 사실이기 때문에 이런 힙합을 앞세운 아이돌그룹의 컨셉에 공감한다는 게 (편견이긴 했어도) 유치한 듯하고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안에 있는 이야기가 비단 그들 뿐 아니라 누구든 공감할 만한 세대를 관통하는 것이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던 건 일종의 자위였을지도 모르겠다.



그 후에 알게 되었던 건, 흥미롭게도 그 화양연화 시리즈를 만들어가고 있던 방탄소년단의 그룹 멤버들 또한 화양연화의 내용에 대해 비슷한 먹먹한 기분을 함께 하고 있다는 거였다. 물론 그들의 이야기를 기본으로 작업을 시작했을 것이므로, 그게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 또한 신기하기까지 했다. 화양연화 시리즈 이후의 데미안의 이야기를 골자로 한 <Wings>도 마찬가지로 그 맥을 같이 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청춘을 지나면서도 여전히 성장통과 현재 그리고 이상과의 괴리를 겪어내가는 과정에 있다는 걸 보여주는 듯 했고, 불분명하고 해석의 여지가 많은 이야기를 중심에 두면서도 좀 더 그 내용이 분명해지는 가지를 뻗어나가게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세계는 여러 색깔의 총 집합체이듯, 내가 인식하지 못해도 그 색이 불타오를 세상을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맞닥뜨려야 할 수 밖에 없을 우리의, 이 자라나는 과정 말이다.



현재 그들은 글로벌 대세, 케이팝의 선두에 있지만 여전히 국내에서 활동하는 반경이 해외보다 적고, 어찌보면 본인들의 위치를 아직도 중소기획사에서 자란 편견 밑에서 힙합을 위시한 아이돌이라는 이름 때문에 여기저기서 뭇매를 맞는 여전한 마이너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겠지만, 현재의 위치는 아무래도 이전보다도 훨씬 더 분명해진 듯 하다.



'봄날' 뮤직비디오 중



최근 고척돔에서 진행되었던 방탄소년단 콘서트에서 쓰인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 소년은 남자가 될까'(원작은 밥 딜런의 'blowing in the wind'의 첫 소절에서 인용/발췌한 것이라고 한다.)로 시작하는 영상의 글은 나로서도 꽤나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성장, 망설임, 그리고 뒤돌아 봄, 겪어내야 할 성장통, 그리고 어느새 커버린 자신과 어린 시절의 꿈의 괴리, 그럼에도 이 길을 함께 걷는 사람에 대한 고마움에 대해서 읊조리듯 덤덤하게 적힌 글에서 막연히 묘한 동질감을 느끼는 내가 여전히 이상했다.



피터팬처럼 영원히 소년일 수 밖에 없는 네버랜드에서 살아야 하는 그들은, 그럼에도 내면에서 겪어야 할 어른으로서의 삶을 공존시켜야 할 상황 속에 스스로를 내어놓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건 그네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여전히 나도, 너도, 우리 모두 그 길을 걷고 있다. 마음 속의 어린 아이, 그리고 커버린 몸뚱이와 숨겨두느라 덜 자랐을 꿈을 동시에 다 움켜쥐고 산다. 자라며 겪어내는 성장통을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앓고 있으며, 치열하게 고민하지 못하고 지나버린 사춘기를 한탄한다. 나이가 들면 당연하게도 해야할 과업과 상황으로 남의 틀에 날 끼워맞춰 산다. 그게 아닐 경우 '자유로운 영혼'이니 '특이하다', 혹은 '정신 못 차린다'는 말로 부러움을 빙자한 비아냥을 받기 일쑤다.




왜 지금도 내가 '자라고 있다'거나 '여전히 젊다'라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걸까, 그게 사실인데도. 몸의 성장이 멈춘다고 해서 청춘의 방황은 끝나지 않는다. 나는 늙는 게 아니라 자라고 있으며, 자람의 완성형, 완료형은 죽음이 아닌가. 멈추지 말고, 조금 더 발을 내딛어 내 스스로를 더 자라게 할 수 있다면 다시 청춘이요, 젊음일테니까.




'봄날' 뮤직비디오 중








시간은 돌아오지 않고, 각자의 시계는 서로 다른 속도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시계가 움직이는 동안,
너와 나는, 영원히 청춘이다.




각자의 기준과 잣대가 남에게 혹독해지지 않기를, 또한 날 너무 옥죄는 사슬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꿈을 꾸는 것이 죄가 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이 무모한 것이 아닌 값진 것이길.




난 오늘 또 철들기를 포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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