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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 Nov 18. 2016

환락의 섬: 이비자, 이비싸!

Solomun, Nervo, etc.

Ibiza는 스페인식의 발음으로는 '이비싸'이다. 스페인에서는 'z'가 'ㅅ' 혹은 'ㅆ'으로 발음되기 때문인데, 영어식 표기로 이비자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이름이야 뭐 어떠랴, 이 곳이 누구든 어디선가 꿈꿀 환락의, 환상의 섬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바르셀로나에서 프리마베라사운드가 끝난 이후, 부엘링항공을 타고 이비싸로 향했다. 거의 밤 12시가 가까워 도착한 공항에서 숙소는 꽤 먼 거리였다. 클럽에서 가까워 사람들이 많이 묵는 이비싸 타운이 아니라, 해변이 가까운 곳인 산 안토니오 데 포르트마니로 숙소를 잡은 탓이었다. 이틀 정도만 머무르는 일정으로 온 여행이어서 괜시리 마음이 급해졌다. 클러빙을 좋아하는 건 아닌데도, '클럽을 가야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놓고 조금 번화한 듯한 길로 나가 클럽 티켓을 파는 매표소에서 구매가 가능한 클럽 티켓을 물으니 파챠에서 솔로문이 디제잉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티켓을 파는 사람이 시간이 늦으면 입장이 안 될 수도 있으니 당장 바로 가야 할 것 같은데 나이트버스는 30분을 기다려야 하니 택시를 타는 게 낫겠다는 거다. 입장이 2시까지라고 하면서. 티켓을 사면서는 그리 늦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시계가 거의 1시 반에 가까워져있다. 섬이라는 곳 자체가 워낙 물가가 비싼 건 알았지만 이 곳은 심해도 너무 심하게 비싼 것 같았다. 택시의 미터기가 이렇게 빠르게 숫자가 올라가나 싶게, 미터기는 무서운 줄 모르고 제 갈 길을 재촉했다.



도착한 파챠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고, 티켓을 보여주니 줄을 설 필요없이 바로 입장이 가능했다. 다들 기다려 입장하는지라 택시는 굳이 탈 필요없었던 것 같긴 했지만(클럽티켓아저씨, 싸우자...) 다행히 클럽에는 문제없이 입장할 수 있었고, 입장해보니 다른 디제이 순서가 거의 끝나고 솔로문이 디제잉하는 순서가 되어 있었다.



최근 핫한 디제이인 솔로문이 고정으로 계속 디제이를 하는 파챠 뿐 아니라, 이름만 들어도 아는 데이빗 게타, 칼 콕스 등의 디제이가 여름 내내 이비싸 타운 안의 클럽에서 계속 디제이를 하니, 여기가 어찌 클러버들의 천국이 아닐 수 있겠나 싶었다. 중간중간에 퍼포먼스를 하는 댄서들도 나와서 무대를 휘저어놓고 들어가기도 하고, 사람들은 밤새 음악과 춤에 열광한다. 새벽부터 아침이 될 때까지 계속되는 디제잉에 클러빙을 즐긴 사람들은 나이트버스를 타고 각기 숙소로 돌아간다.


이비싸에서 기대했던 건 클럽보다도 나에겐 해변이었다. 아니, 잘 몰랐다고 해도 될 정도로 해변이 그렇게 크게 다가오리라 생각하지 않았었다. 산 안토니오 쪽에 묵은 건 바다 쪽으로 가기 좋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그 예상은 적중했다. 이비싸 북서쪽에 위치한 깔라꼼떼(Cala Comte) 해변은 북적거리는 클럽과는 거리가 먼 조용한 해변이었다. 덕분에 클럽으로 북적거리는 이비싸타운과는 또 다른 이비싸를 만날 수 있었다. 지중해 바다의 푸른 빛을 그대로 간직한 바다와, 뜨거운 햇살에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태닝을 하며 수영을 즐겼다. 그래, 이비싸는 해변, 해변을 가지 않고는 갔다고 할 수가 없다. 이 해변 덕분에 환락의 섬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밤낮을 놀아도 아쉬울 게 없을 곳이었다. 낮엔 해변, 밤에는 클럽.



깔라꼼떼 해변


깔라꼼떼에서도 유럽 해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세미누드의 여성들은 자유롭게 상체를 드러낸 채 태닝을 하고 있었고, 그게 전혀 놀랍거나 부끄러운 것이 아닌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지중해의 푸른 빛을 머금은 바다는 반짝이는 햇살을 반사해내고 있었고, 모래는 하얗게 빛났다. 햇살은 바닷바람과 햇빛을 받는 모든 사람들을 검게 그을리며 지나갔다. 해변에 심취했던 내 살갗도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사실 내가 갔던 6월 초의 이비싸는 클럽의 여름 시즌이 시작되는 시기여서 오프닝 파티가 대부분의 클럽에서 진행되고 있었는데, 미리 어떤 공연이 있는지 다 알아보지 않고 이비싸로 향했던지라 꼭 괜찮은 파티나 클럽 공연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오프닝 파티가 이어져서인지 덕분에 우슈아이아의 오프닝 파티 일정이 맞아 갈 수 있었다. 우슈아이아의 오프닝 파티에는 네르보가 헤드라이너였고(우리나라 울트라뮤직페스티벌에서 중간 정도급의 아티스트였는데 인기가 많아서인지 파티에서는 헤드여서 좀 놀랐다.) 파티에는 여러 디제이들이 순서대로 디제잉을 진행해 흡사 일렉트로닉 음악페스티벌에 온 것 같았다.


맥주 한 병에 16유로를 (쳐)받는 이비싸의 물가도 적응되지 않았지만, 페스티벌에 가거나 별도로 우리나라에 초청해서 단독공연을 하지 않는 이상 한 자리에서 보기 힘든 아티스트를 여기서는 클럽에만 가도 볼 수 있다는 사실도 여전히 적응되지 않았다. 우슈아이아는 공연이 12시 정도에 끝나는 비교적 일찍(?) 마무리되는 클럽이었는데, 그 이후에 파티가 진행되는 클럽은 이비싸 곳곳에 당연히 있었고 우슈아이아 내에서 우연찮게 만나게 된 한국인들과 이후에는 다시 다른 클럽으로 향하기로 했다. 이번엔 이비싸에서는 명물로 손꼽히는 암네시아로.



내가 방문했던 날에는 코쿤 파티가 있다고 해서 티켓을 파는 사람도 암네시아를 추천해주었는데, 알고보니 다른 디제이 라인업으로 파티가 있다는 이야기는 거품파티가 없다는 것과 똑같은 말이었다. 입장게이트에서 거품파티가 오늘 있냐 물으니 없다고 해서 실망, 대실망이었지만 그래도 마지막 날이니 여기서 이비싸의 마무리를 하기로 하고 거품파티는 그 언젠가 다시 올 그 날에 즐기는 것으로 막연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아쉬움이 남아야 진정 여행이지, 그래야 다시 올 이유가 생긴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래도 가 있는 동안 기대했거나 계획 혹은 생각했던 것들을 하지 못하면 아쉬움이 배가되는 건 사실이다. 암네시아의 거품파티는 정해진 날짜에 진행되고, 패리스 힐튼이 마지막 디제잉을 하면서 시작된다고 한다. 거품파티는 새벽 4-5시경에 진행되기 때문에 밤새 클러빙을 즐겨야 거품파티까지 하고 나올 수 있다.



코쿤 파티로 진행된 암네시아 클럽은 세 개의 스테이지에서 디제잉이 진행되었다. 디제이가 음악을 트는 동안 가운데에 자리한 무대에 댄서들이 올라와 춤을 추기도 하는데 그 중에 아주 나이가 어린 아이도 공연을 했다. 이비싸는 어린 아이가 유흥업소 무대에서 춤을 추는 것이 허용되는 곳이구나 싶어 적잖이 놀랐지만, 이비싸는 그 모든 것이 가능해도 이상하지 않을 곳이었다.



누구도 파티의 기운이 가득한 클럽을 떠나지 않을 새벽 3시, 내게도 일탈이었던 이비싸 클럽은 떠나야 할 시간임을 알려주는 조명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음악소리에 멍멍한 귀는 숙소로 돌아가는 내내 윙윙거리는 것 같았고, 여전히 비트에 맞춘 심장박동은 바삐 소리를 내며 뛰었다. 클럽과는 상반되는 침묵의 나이트버스는 큰 엔진소리를 내며 날 데리고 갔지만, 길엔 새벽의 땅거미가 짙게 깔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떠나기 전 날 밤에 맡았던 코끝에 스치는 바람냄새는 떠나는 날의 다시금 햇살을 머금은 바람과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그 때의 공기는 왠지 모를 허탈함같은 것을 담고 있던 것이었는지, 아니면 또 맞이할 새로운 시작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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