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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한아름 Sep 05. 2021

'나도 저랬었지' 소녀들의 단짝 친구

영화 <우리들>

 요새 왓챠 덕분에 영화를 가끔 보게 된다.

 영화 보러 갈 시간이 없다고 가끔 "방구석 1열"을 통해 영화 소개만 봐도 그렇게 재미있더니. 

 이 영화도 방구석1열에서 소개한 걸 본 적이 있는 영화. 



 어린 아이들의 이야기라고 해서 흥미로웠다. 큰 영화관에서는 상영할 것 같지 않은 영화. 독립 영화 상영관을 따로 찾아가야만 볼 수 있을 것 같은 영화. 그런 영화가 난 좀 더 끌린다. 대구에 살 때는 그런 영화관에 회원권을 끊어 종종 보러 가기도 했다.  

 그런 영화를 이렇게 손쉽게 집에서 볼 수 있는 세상이 오고야 말았네. 


 영화는 주인공 선이의 관점에서 계속 보여진다. 첫 장면부터. 피구 편 짜기에서 끝까지 선택 받지 못하는 선이의 불안하고 서운한 눈빛에서 시작된다. 


 초등학교 4학년. 그 때의 내가 생각난다. 어렴풋하지만 학교, 학급에서는 이내 이런 분위기가 있었다. 공부도 잘하고 목소리도 크고 인기가 많은 아이가 있는가 하면, 조용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 부류의 아이가 있기도 하다. 

 나는 그 목소리 크고 똑똑한 아이 '김민지'라는 아이를 미워했었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살면서 유일하게 '미워한' 존재다. 그 아이를 이기고 싶어서 반장 선거에 나가서 부반장이 되었을 때의 그 쾌감. 그 아이를 이기고 싶어서 방학동안 피구 연습을 죽어라 해서 다음 학기에 피구 신동으로 거듭났던 일들이 생각난다. 


 나는 선이와는 좀 다른 아이였던것 같다. 나는 목소리가 크거나 눈에 띄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선생님의 눈에 띄고 싶어했고 발표하는 걸 좋아했고 열심히 공부해서 칭찬듣는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선이는 뭐랄까. 마냥 약한 아이는 아니지만, 약간 가까이 하기에 좀 꺼려지는 면이 있고, 어떨 땐 바보 같고, 그러면서도 때론 용감하기도 하다. 



 전학온 지아가 처음 만난 친구 선이. 마침 방학이었고, 둘은 가장 친한 사이가 되었다. 선이는 얼마나 즐거웠을까. 얼마나 신이 났을까. '가장 친한 친구'가 생겼다는 건 초등학교 시절 정말 너무 든든하고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그 친구를 누군가에게 빼앗길까봐 두려운 마음이 있다. 내가 혼자가 될까봐 두렵다. 친구들이 나를 좋아해주지 않을까봐. 든든한 울타리 같은 내 단짝 친구를 꼭 옆에 두고 싶은 마음. 

 아, 나도 그랬었지.. 하며 자꾸 생각하게 된다. 


 그 두 친구의 우정이 금이 가는 사건들이 생긴다. 서로의 약점을 너무 많이 알게 되어버려서 금이 갈수록 서로에게 더 상처 주게 된다. 아이들이 서로 미워하기도 하고 이간질 하기도 하고, 때로는 권력(?) 앞에 무너지기도 하고, 내가 왕따가 될까봐 너를 왕따 시키기도 하고, 물어뜯고 싸우고, 그러면서도 화해하고 싶어하고, 그러면서도 서운해하고, 미안해하기도 하고... 

 친구 사이에 참 많은 감정이 오고 간다. 

 



 이런 아이들의 이야기가 너무 순박하면서도 너무 현실적이어서 놀라웠다. '진짜 내가 저랬었는데..' 하는.. 그 오묘한 감정선들 말이다. 지금 어른이 된 나에게는 아주 별것 아닌 것 같은 일이지만 그 때는 친구 사이의 모든 일들이 너무 엄청나게 큰... 우주 처럼 느껴졌었다. 두렵고, 서운해하고, 좋아하고, 미워하고, 미안해하고, 의지하고... 

 

 감독님은 두 아이의 관계를 '선이의 손톱'으로 묘사해 보여준다. 순간순간 선이가 자기 손톱을 볼 때, 비춰지는 화면에서 선이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봉숭아 물이 잔뜩 든 손톱. 보라가 빌려준 메니큐어를 덧바른 손톱. 봉숭아 물과 메니큐어가 섞여있는 손톱. 봉숭아 물이 다 빠진 손톱. 감독님 천재. 



 나는 이 영화에서 특별히 주목하고 싶은 인물이 있다. 



 선이 엄마


 요즘 내가 엄마 감성이 짙어서 그런지 엄마가 자꾸 눈에 보인다. 

 선이 엄마가 너무 좋은 사람이어서. 앞으로의 선이가 별로 걱정되지 않는다. 

 

 선이 엄마는 남편이 돈을 못 벌어온다고 타박하지도 않는다. 늦게까지 일하는 남편을 언제나 걱정한다. 남편이 친아버지를 증오하지만 며느리인 그녀는 살뜰히 시아버지를 챙기고 남편도 도닥인다. 그러면서도 김밥집에서 일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는다.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한다. 아들이 맞고 들어오면 '애들이 놀다가 그럴 수도 있죠 뭐, 근데 우리 애만 자꾸 다치니까... 아 네네 손님이 와서요'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할 말은 또 하고, 불필요한 언쟁은 피하는 지혜로운 사람. 

 누나인 선이가 동생이 자꾸 맞는 모습을 참지 못해 동생의 친구를 때렸을 때. 상대방 엄마에게는 미안하다고 사과하지만, 선이에게는 칭찬해준다. 잘했다고. 동생이 맞고 있는데 누나가 가만히 있으면 되겠냐고. 너 먹으라고 사온거라며 맛난 반찬을 건네준다. 

 가난해도 아이에게 돈 걱정을 시키지는 않는다. 아이가 공부를 못 따라가자 학원도 보내고, 아이가 무슨 이상한 조짐이 보이면 엄마는 캐치하고 조심스레 묻는다. 무슨 일이 있냐고. 아이의 상처를 보듬을 줄 안다. 학교에서 상처 받은 일에 대해서는 담임 선생님에게 바톤을 넘긴다. 

 

 영화가 해피엔딩도 아니고 새드엔딩도 아니다. 굉장한 서사가 있다기보다는 평범한 이야기들인데, 설명이 장황하지도 않다. 그냥 자연스럽게 따라가면서 보는 영화. 

 어떤 대단한 감동이나 교훈을 기대하면서 볼 필요는 없다. 

 

 보고 나면 일단 잔향이 오래 남는다. 


 '나도 저랬었지' 라는 감성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꾸 장면들과 색감이 떠오른다. 

 선이의 표정이 자주 생각난다. 


 오랜만에 좋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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