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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한아름 Jun 06. 2016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

멍 때리기 대회를 보며 

멍때리기 대회라니!

아무 것도 안하고 누가누가 가만히 있는 걸 잘하나 겨루는 대회라니!!

신기하기만 하다.


아무 것도 안하면 벌 받는 줄 알고 살아온 사람인데,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건 게으르고 나쁜 거라고 배워왔는데,

가만히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사람에게 상을 준다니 말이다.


멍을 때린다는 건 생각조차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멍 때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뻘쭘하고 어색한 상황에서 어김없이 꺼내드는 스마트폰,

이 공간을 벗어나 나만의 세계로 가고 싶을 때 어김없이 귀에 가져가는 이어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예컨대,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서서 갈 때라던지)에서조차 무엇을 듣든, 무엇을 보든, 무엇을 찾든 무언가를 분주하게 하는 것에서 만족감을 누리는 사람이다, 나는. 

체력이 무적일 때는 잠자는 시간이 세상에서 제일 아까웠다. 

갑상선 기능 항진증인가 뭐시기가 오는 바람에 피곤을 많이 느끼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잠을 많이 자고 있지만 한참 건강하고 젊을 때는 그랬다. 자는 시간까지 아끼려고 아둥바둥... 

내게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인생은 한 번뿐인데, 다신 오지 않을 이 순간을 아무 것도 안하면서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서. 

(거창한 이유로) 어쨌거나 아무것도 안하는 건 내게 죄악과 같은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2달 간의 백수 생활은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극한의 '게으름 체험 생활'이었다. 딱히 여행을 간다거나 하는 거창한 계획도 없고, 그냥 집에서 딩굴딩굴하는 것이 일상이었으니 말이다. 


얼마전 티비에서 멍때리기 대회를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뭘 위해서 이렇게 순간순간 분주한걸까.'

'열심히 사는 것도 좋지만 좀 멈춰가는 여유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특히 버스 안에서 요새는 아무 것도 안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어차피 덜컹이는 버스에 50분씩 있다보면 스마트폰을 보고 있노라면 멀미가 나서 안되겠다 싶었다. 무언가를 듣고 있는 것도 머리가 지끈지끈 어지러워져서... 일부러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 생각도 안하는 건 도무지 안되더라. 


버스에서 내린 후의 시간 계획들을 세우며, 이런 저런 잡생각들이 끊이지 않고 내 머릿 속을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아무 생각조차도 안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목욕탕 가는게 좋은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목욕 후의 개운함도 좋지만... 사실, 탕 안에 앉아있는 명상의 시간이 좋아서이다. 왠지 모르겠지만 목욕탕의 따뜻한 물 안에 앉아 있으면 마치 누군가 마음껏 생각하라고 자리를 만들어준것마냥 마음 놓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이상한 성격인 것 같지만 나에게 목욕탕은 그런 곳이었다. 때 미는 것보다 탕 안에 가만히 앉아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기에 딱 좋은 그런 곳 말이다. 


힘든 일이 있거나,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 것 자체를 막아버리고 싶을 때 내가 쓰는 방법은... 

재미있는 드라마나 영화를 왕창 몰아서 보는 것이다. 그 드라마와 영화의 내용 외에 다른 것은 별로 생각나지 않아서. 감정 이입이 워낙 잘되는 사람이라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이 마치 내 자신인것처럼 집중하게 된다. 


할 일도 많고, 생각할 것도 너무 많은 세상이다. 가만히 있으면 뒤쳐지니까.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달려야하니까 말이다. 

무한경쟁사회. 


과연 아무 생각도 없이 가만히 있는다는 것이 도무지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잠시 쉬어가는 시간은 분명히 필요한 것 같다. 


잠시 생각하는 시간, 

잠시 기다리는 시간, 

잠시 가만히 .. 그냥 가만히 있는 시간, 

아무 걱정 없이 쉬는 시간...

심지어 멍 때리는 시간 까지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은채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건 여전히 내게는 '죄악'이다. 

하지만 순간순간 쉼표를 찍는 연습을 해두면, 훗날 삶의 마침표도 잘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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