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누군가를 판단하는 건 내게 아주 쉬운 일이다.
'이 사람은 이런 종류의 사람이구나.'
'이 사람은 이런 성격의 사람이구나.'
어떤 면에서는 각자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것 같으면서도 나의 판단의 잣대는 언제나 내 주관적인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한 번 그 사람에 대해 생긴 판단은 오랜 시간 변하지 않는다.
'아, 저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지.'
그 사람이 과거에 행했던 일들, 말들, 내가 파악한 그의 환경과 성격으로 그 사람을 어떤 내 나름의 분류표 안에 내 마음대로 집어넣는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좀 달라졌다. 어린아이들을 매일 대하면서도 아이들은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른 걸 느낀다. 늘 까불거리고 말을 참 안 듣던 아이도 한 살 더 먹었다고 어느 순간 의젓해지기도 하고, 늘 조용할 것만 같던 아이도 어느 순간부터인가 슬금슬금 꾀를 부리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사람이 참 쉽게 변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지금 보고 판단한 그 사람의 모습이 영원하지는 않다는 걸 생각하게 됐다.
내 친동생은 어렸을 적 아주 소심한 아이였다. 학교에서 한 번도 먼저 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부끄러워서, 아는 게 없어서, 소심해서 먼저 손을 들고 발표해본 적도 없었다. 공부도 잘 못했고, 전공을 하는 분야에서도 전문적인 기술이 부족했다. 축농증 때문에 늘 훌쩍거리는 내 동생을 보고 어떤 나쁜 아이는 의도적으로 내 동생을 괴롭히기도 했다. (그때 왜 나는 언니로서 그 나쁜 아이를 찾아가 혼내 주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가 안 되지만 난 그때도 참 이기적인 언니였구나 싶다.)
그런 소심했던 아이가 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공부를 지지리도 못하던 동생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다. 지금은 사업을 시작했다. 그 소심한 아이가 겁도 없이 사업이라는 걸 시작했다. 어렸을 적 엄마는 동생에게 농담으로 '언니가 나중에 큰 학원 차리면 우리 xx가 봉고차 운전해주면 되겠다~' 하며... 늘 동생은 언니 등 뒤에 가려져 있었지만 사실 동생은 스스로 산전수전 겪으면서 참 많이도 성장했다.
나는 어렸을 적 기대주였다. 엄마는 내가 대통령이라도 될 것 같았단다. 너무 똑 부러져서. 그런 딸이 중학교에 가더니 변호사가 될 거라고 했다. 엄마 아빠의 기대는 하늘 끝까지! 하지만 그 기대와 다르게 딸은 음악을 하겠다고 우겼다. 꿈만 커가지고, 욕심만 많아가지고 세계 최고가 될 거라는 둥 허풍을 엄청 떨어댔다. 그런 딸은 공부와는 전혀 상관없이 음악을 했고, 그 큰 꿈과 욕심은 온 데 간데 없이 이름 없는 뮤지션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지내고 있다.
나는 똑 부러진 아이라서 걱정이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자라오면서 바보 같은 짓은 골라서 하고 다녔다. 누가 봐도 '바보 아니야?' 싶은 그런 결정들을 많이 했다.
내 모습만 봐도 10대 때의 내가 다르고, 20대 초반의 내가 다르고, 지금의 내가 다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다. 몇 년 전의 내 모습을 생각해도 부끄럽고 쪽팔린 기억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사람이 얼마나 가능성이 많은 존재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떤 부모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자라온 환경이 어떠냐에 따라,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어떤 일을 겪느냐에 따라... 이렇듯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수동적으로 결정될 수도 있다. 인간의 삶은 수많은 가능성을 수반한다. 내가 태어나게 될 집, 그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런 상황과 여건 속에서도 내가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내가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내가 무엇을 붙잡느냐에 따라 내 삶이 내 모습이 달라지기도 한다.
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지금보다 조금 더 온유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부드러운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사랑이 좀 더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만나면 만날수록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내 사람들에게 자랑스러운 존재이고 싶다. 나이가 들어도 꿈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머지않아 나도 누군가의 엄마가 되었을 때, 지금 현재 내 아이의 모습으로 전부를 판단하는 오류는 범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좀 소심할 수 있고, 지금은 조금 이상할 수도 있고, 지금은 조금 부족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예쁘다'고 얘기해줘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그런 엄마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 뜻대로 자라 주지 않아도 미워하지 말아야지. 모든 사람은 가능성의 존재니까. 좋은 가능성을 많이 열어주는 엄마였으면 좋겠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
어떤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고 싶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