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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원두커피 가게

by 미셸 오

누가 장사를 접을 때 한편에선 누군가는 또 새롭게 가게문을 열고 장사를 시작하는 법이다.

오늘 이후 장사를 접는 횟집에서 마지막 물회를 먹고 돌아오는 길에 처음 보는 원두가게를 만났다.

예전에 옷가게를 하다가 접은, 임대가 붙었던 가게다. 입구 문 앞에 화분들이 가득하고 안내 문구도 작게 적어놔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새로운 가게라고 보기 힘들다. 유리문 안으로 원두커피가 진열된 게 흐릿하게 보였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유리문에 독일커피라고 쓰인 작은 천조각이 붙어 있다.

"원두커피 가게 같은데?"

"진짜?"

커피라면 나나 딸이나 둘 다 흥분조다.

"가볼까?"

유리문 앞의 화분들을 피해 조심조심 문을 열고 들어섰다.

새로 인테리어를 한 탓일까? 인조향 같은 냄새가 코를 찌른다.

주인은 보이지 않고 봉투에 든 원두커피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독일산 원두커피다.

커피 가게에 커피 냄새보다 인위적인 향이 가득한 것이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을 만큼 역하고 머리가 아파왔다.

"여기 커피소금도 있어"

작은 병에 담긴 게 커피소금이었구나. 나는 소량으로 파는 원두인 줄 알았네.

봉지에 담긴 원두를 들어보니 독일어로 쓰였고 번역한 종이가 따로 붙어 있다. 독일에서 로스팅한 한 커피들 같다. 주인도 없고 머리도 아프고 그만 나갈까 망설이는데 안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누가 있나 봐"

"계세요?"

하고 불렸더니 커튼이 가려진 안의 공간에서 키가 멀쑥한 중년의 남자가 툭 튀어나왔다.

나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남자다.

독일에서 직접 개인적으로 로스팅하는 전문가와 계약하고 데려온 독일산 원두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옆 테이블에 맛보기용 원두커피가 있었는데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으니 아.. 정말 천국의 향이다.

그는 우리가 원하는 커피를 선뜻 내려 주었다. 처음엔 진하게 한 모금.

"음~너무 맛있어요!"

나는 탄성을 질렀다. 역시 산미가 있는 커피가 내게 맞다. 설명에는 초콜릿맛. 미세한 흙냄새. 산미. 과일 맛이다. 원산지는 브라질. 생산지는 독일 부르크슈테트 헤렌하이데.

주인은 진하게 내린 커피를 다 마시자 다시 원두액을 붓고 물에 타준다.

딸은 산미가 없는 유기농 커피를 선택하고 주인은 또 드립해 주었다. 이 커핀 내가 뭐라 말할 수 없는 향을 가졌다. 딸은 이게 더 맛있단다. 그러나 둘 다 맛있다는 결론.

커피를 마시면서 독일에서 살았다는 주인의 이야기를 들으니 너무 재미있다.

머리 아프던 거 어디 갔니? 횟집에서 불쾌하게 불렀던 배도 가라앉고 입가심도 되고.. 기분이 점점 올라가는 나. 입에 딱 맞는 음식을 만나는 건 행운이다.

"저는 독문학을 전공했어요"

독문학?

나는 깜짝 놀란다. 그는 독일과 체코로 일 년에 한 번 여행을 가는데 문학기행을 한다고 한다.

이런이런 나의 취향이잖아.

"저는 체코 프라하에 꼭 가고 싶어요. 카프카를 좋아하거든요."

"카프카? 하... 체코를 말할 때 카프카를 말하는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네요." 주인은 몸까지 들썩이며 반가워한다. 나도 덩달아 신이 나서

"전 국문학을 전공했거든요"

"아~국문학요?"

주인은 갑자기 자기와 같은 인종을 만난 양 신이 나서 독일의 드레스덴. 앙겔라메르켈. 괴테. 브레히트. 등등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본인은 지금도 드레스덴을 자주 간다고 하고 문학강연도 자주 다닌다고 하며 개인출판도 여러 번 했다고 한다.


나는 주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산미와 초코와 흙냄새 맛이 나는 독일의 디카펜 커피를 홀짝인다. 아아 얼마 만에 맛보는 기분인지.

주인은 매년 10명 정도의 지인들을 인솔해서 독일과 체코를 여행한다고 한다. 말하자면 문학기행처럼 말이다. 체코서 독일까진 두 시간 반이면 간다고.

" 그런 여행이면 저도 같이 동행하고 싶네요"

"지금 8명 채워졌고 2명이 비었어요. 내년에 갈 예정입니다."

이 주인 정말 멋지게 살고 있구나... 이렇게 비싼 커피도 선뜻 맛보게 해 주고.. 자신의 스토리도 많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계속하다가

딸은 산미가 없는 커피를 좋아하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 취향의 커피를 200그램씩 샀다.

"지나가다 얼마든지 커피를 맛보고 가세요."

커피숍에 가면 한 잔에 7천 원도 족히 받는 커피를 두 종류나 맛보게 해 준 주인.

역시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낭만과 여유가 있다.

오다가다 주인이 드립해 주는 맛난 커피를 홀짝이면서 문학 이야기를 열어가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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