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근 목사 설교집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문장에서 서술어인 '창조하셨다'의 히브리어는 ‘바라’ 이다. '바라'는 성경 안에서 오직 하나님만 주어로사용됨으로써 창조 행위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고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선포하고 있다. 즉 다른 피조물이나 존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삼위 하나님(엘로힘-복수)이 홀로 하신 일인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창조하셨다. 우리가 그 미세한 세상에 들어가 관찰할수록 그 질서는 더 정교하고 더 완벽하다.
그래서 인간은 거대한 자연 앞에서 경외감을 느끼며 그 안에서 위로와 쉼을 얻는다. 자연은 우리로 하여금 대자연 속에 있을 때 그것이 스스로 하나님의 작품임을 느끼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세상의 많은 것들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보여주었지만 너희는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 보기를 원하지 않았고 오히려 너희 욕심을 좇아서 악을 행하여서 결국 죄악 가운데서 죽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태초에(베레쉬트)’ 하셨다고 한다.
태초는 언제일까? 까마득한 옛날일까?
김성수 교수(합신의 구약학 교수)는 “태초는 우리의 시선을 인간의 경영밖으로 인간의 한계너머로 인간의 그 어떤 필설로 이렇다 할 수 없는 무한의 영역으로 옮겨 놓은 시간”이라고 하였다. 즉 인간의 지혜와 지식이 닿을 수 없는 영역에 속한 것이다.
이 태초를 말해주는 시편의 말씀이 있다.
시편 90편 2절
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무한의 영역인 태초는 역사적인 시간을 넘어선. 한계를 지을 수 없는 시간이며 그때 모든 것이 출발했고 이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곧 태초는 하나님을 인간의 역사 안에. 시간 안에. 경험 안에 가둘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태초에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만드셨다.
히브리어는 하늘에 정관사가 붙는다. 즉 ‘그 하늘(하샤마임)과 그 땅(하아레츠)’이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현재 보는 하늘과 땅이 아니다.
하나님은 흑암 중(2절)에 윗궁창과 아랫궁창으로 나눈 뒤(7절) 아래 궁창의 물을 한데 모으고 드러난 뭍을 땅(9절)이라고 하였다. 한편 10절의 ‘땅’은 2절에 언급된 땅의 결과물이다. 8절의 하늘(윗궁창)과 창세기 1장의 하늘 역시 다른 하늘이다. 이것은 우리가 모르는 하늘과 땅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1절의 하늘과 땅은 넓은 의미의 하늘과 땅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창세기 1장의 ‘그 하늘과 그 땅은’에서 그 하늘은 무엇인가?
골로새서 1장 16절에 답이 있다.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이 골로새서 말씀은 만물이 성자이신 예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그때 하늘과 땅에는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이때 하늘과 땅은 보이는 하늘과 땅이 있었고 보이지 않는 하늘과 땅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하늘(우리가 볼 수 있는 땅)과 땅 외에 초월적 영역인 하늘(보이지 않는 신령한 영역)이 있다는 말이다. 이 엄청난 사실을 하나님은 우리가 보는 것들(우리가 사는 땅)의 창조주이시면서 보이지 않는 곳(초월적 영역)의 창조주이심을 창세기 1장 1절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이는 영역에서 살아가지만 보이지 않는 영역을 의식하고 살아가야 하며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의 피조물도 하나님의 다스림과 권세 안에 있음을 보여준다.
계시록의 보이지 않는 영역 안에 있는 피조물들의 전쟁과 그들이 하나님의 주권 앞에 엎드리고 하나님의 통치가 그곳에서 완성되며 승리로 끝나는 것들로 채워져 있음을 기억하라.
그런데 왜 이 모든 시작과 끝이 하나님 안에 있음을 우리에게 알리려 하는가?
처음 하나님의 창조를 가장 먼저 들은 자는 모세이며 시내산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에 의해 선포되었다.그래서 성경은 모세오경으로부터 시작된다.
많은 신들로 가득한 애굽에서 그 신들을 심판하심으로 하나님이 참신이심을 보여주신 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에게 왜 부름을 받았는지 알려준 것이 바로 창세기이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출애굽한 이유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야만 했다. 그들이 앞으로 들어가야 할 땅 역시 수많은 우상들이 있던 가나안 땅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오고 오는 세대에 새예루살렘을 위하여도 누가 참 하나님이고 누가 참 통치자인지를 알려주는 것이 모세오경이다. 창세기의 창조 후 결과적 아름다움을 우리와 나누길 원하신 하나님이 그분의 형상인 아담을 위해 에덴을 허락하시고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고 교제하셨다.
그때 하나님과 함께 거닐었던 아담의 죄악으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깨어진 것을 이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으로 동행하시며 우리와 함께 그 사귐을 누리도록 하셨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구체적인 사귐은 경배로 나타난다. 위대한 자연 앞에서 경외함을 느낄지라도 그것에 경배해서는 안 된다. 다만 그것을 지으신 하나님을 의식하고 경배해야 한다.
디모데 전서 1장 17절
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