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기다려지는 한 여름
그 어느 날 태양은 아침부터 구름 뒤에 숨었다.
이 반가운 숨바꼭질은 으스름을 절로 만들어내었고, 나는 더 하여 집 안의 조명은 모조리 꺼두었다.
창문은 열어놓기로 한다.
가을의 것과는 달리 포근하고도 차가운 이 흐린 날의 공기는 여름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이는 곧, 지금 창문에 부딪치고 있는 무수한 선선함을 양껏 들이키고 싶은 까닭이 된다.
이제 비만 내렸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었다.
단, 비가 올 때까지만 듣는 게 적당할 것이다.
이불 속에 하반신을 구겨놓고 읽고 싶어 벼르던 책을 편다.
서장을 다 읽어내려 가는 동안에 이마 끝부터 가슴까지의 살결은 서늘해진다.
그러나 그 아래는 온통 따뜻한!
바로 이 때의 기분과 느낌을 사랑한다.
말하자면 허공은 가장 허공답게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내 안과 입 속은 각각 온도와 새로운 문장들로 그리고 누군가의 삶과 나의 삶으로 가득 찬다.
버겁지만 감탄하며 목구멍은 멋대로 갈라지나 어느새 어딘가 축축하다.
비가 내린다.
빗소리는 이 순간의 종지부가 되며 미처 의절하지 못 한 것들이 찌꺼기인 양 남겨진 채 책의 종잇장만 덮여져 있다.
다만 생각에 잠겨 천장을 마주하면 스르륵.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하나는 한 마리 양이 되고 그렇게 떼를 지어 몰려오면, 흐려 비 오는 날의 단 - 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