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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짠나의일기 Apr 03. 2020

보통의 하루

평범한 직장인의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예쁘게 화장하며 출근을 준비하는 상상을 했다. 지하철이 다소 붐비지만, 회사에 도착하면 그 날 업무 할 일을 정리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하고 싶었다. 회의는 모든 사람이 만족할만한 결과로 끝나고, 잘 풀리지 않는 일이 있더라도 차분히 잘 대처해 주변 팀원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때때로 야근을 하더라도, 밀렸던 업무를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친구를 만나거나 영어학원을 가고, 하루를 헛되지 않게 보내고 싶었다. 내가 꿈꾸고 상상했던 워너비 직장인의 생활이다.


직장인 8년 차. 허둥지둥 일어나, 눈뜨자마자 머리를 감고 화장을 하고 지하철 시간에 맞춰 빠르게 움직였다.  꽉 끼는 지하철 안에서 온갖 피곤과 짜증이 몰려온다. 아직 출근 전인데 벌써 피곤하다. 아무 생각 없이 스트리밍 음악을 듣기도 하고, 가끔은 이북을 읽기도 하고, 넷플릭스를 보다 보면 어느새 회사에 도착한다.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이 참 아깝다고 생각했다. 캘린더를 보며, 오늘 회의가 있는지 없는지 체크하고 할 일을 정리하고 커피 한잔을 마신다. 왠지 오늘 하루는 알차게 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오전 회의가 1시간을 넘어 계속되면, 그 날 오전은 다 날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 회의에 내가 왜 들어왔을까. 누군가 빨리 결론을 내줬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드는 회의를 마치고 나면, 무언가 진이 빠진 느낌이다. 가끔 이렇게 답 없는 회의를 하게 되면 그 날 하루가 계속 답 없는 느낌이다.


회의를 마치고 정신을 차려보면 벌써 점심시간이다. 나는 아무리 바빠도, 힘들어도 점심은 꼭 맛있게 먹고 싶다. 일이 많다고 샌드위치를 먹거나, 노트북을 하며 끼니를 때우는 건 참을 수 없다. 같이 먹을 사람이 없으면, 혼자라도 카페에 가서 따끈따끈한 베이글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고 싶다. 나에게 점심시간은, 하루 중 꽤 고귀한 시간이다. 맛있는 음식과 짧지만 행복한 산책이 가능한 시간이다.


오후가 되면, 그 날 해야 할 일과 급작스런 이슈들을 쳐낸다. 가끔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짜증도 나고, 업무상 감정이 상하는 일들이 생기면 하루가 정말 힘겹다. 노을이 지는 순간은 보지도 못한 채, 한숨 돌릴 때쯤 창가를 보면 어느새 하늘이 까맣다.


그날 업무를 깔끔하게 마치고 퇴근하고 싶지만, 어느새 내일 할 일을 잔뜩 생각하며 퇴근한다. 어차피 오늘 하지도 못할 일, 내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말은 이렇게 해도 마음은 무겁게 퇴근한다. 나는 생각보다 업무에 대한 책임감이 꽤 큰 것 같다. 그렇다고 일을 엄청 잘하는 건 아니지만…


사실 퇴근 시간이 되면, 이미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있다. 엄청 고단한 하루가 아니어도, 퇴근길은 늘 힘들다. 퇴근 후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저녁 먹고, 설거지하면 벌써 하루를 정리할 시간이 된다. 가끔 저녁 하는 것도 힘들어서 외식을 하거나 배달을 시켜먹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후회된다. 뭐니 뭐니 해도 집밥을 먹는 게 몸과 마음에도 좋다.


대충 씻고 TV를 튼다. 요즘 TV는 재미가 없다. 어렸을 적에는 엄청 재밌었는데… 학생 때는 거실에서 TV 보는 게 그렇게 좋았었는데… 물론 지금은 책도 읽고, 유튜브도 보고, 모바일 쇼핑도 한다. 곧 잠이 들 때쯤, 다이어리를 꺼내 그날 하루를 정리한다. 그나마 나에게 남은 가장 좋은 습관이 다이어리 쓰기다. 사실 매일매일 쓰지는 못해도, 나를 돌아보는 가장 좋은 습관이다.


누군가는 새벽에 일어나 운동도 하고, 명상도 하고 회사가 끝나면 동호회 활동이나, 학원도 다니며 하루를 꽉 채우며 살아간다. 사실 너무 부럽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그렇게 살아가기엔, 나는 하루 7시간 이상은 자야 생활이 가능한 너무나 평범한, 보통의 직장인이다. 그렇지만 종종, 남편과 저녁 산책을 하며 소소한 행복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새벽부터 자기 전까지, 빈 틈 없는 하루를 보내는 직장인을 보면, 내 하루가 너무 부끄럽다. 그래도 자책하지는 않는다. 몇 년 동안 쉴 새 없이 출퇴근하며 버텨온 삶이 이미 대단하다고. 충분히 널브러져 있어도 된다고. 그렇게 나 자신을 정당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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