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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영 Mar 26. 2019

늦잠 자는 남편 길들이기

잠보다 아내가 훨씬 좋다.


  이번 주말까지 그래서는 안 됐다. 밤낮이 바뀐 생활로 밤이 길고 낮이 짧아진 생활을 한동안 하다 보니 아내와 함께 있는 주말까지 늦잠을 자게 된 것이 화근이 됐다. 지난 주말도 같은 이유로 아내의 심기를 건드렸건만 이번 주말까지 같은 일을 겪으니 심정은 참담했다.


  많은 직장인들처럼 아내도 주말, 휴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특별한 계획이 없어도 즉흥적으로 뭐든 할 수 있는 우리이기에 주말이란 우리 부부에겐 언제나 가능성의 시간이다.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다가올 한주에 박차를 가할 수 있고 없고의 운명이 달렸다. 그 운명은 2주에 걸쳐 무참히 깨졌다.


  지난 주말은 그럭저럭 양호했다. 토요일 새벽일을 하고 왔으니 늦게 일어나리란 건 당연지사. 하지만 늦어도 적당해야 하는데 너무 늦게 일어난 것이다. 오후 4시 가까이 되어 잠에서 깼다. 심지어 충분히 잤다고 생각되지도 않았지만 제6의 감각이 보내는 신호로 봐선 그때는 반드시 일어나야만 했다. 조심히 침실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니 아내는 소파에 누워 이미 휴일은 끝났다는 자포자기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눈길조차 주지 않는 아내를 보며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생각했다. 그리고 아내 곁에 납작 엎드리어 애교를 피운 지 한참 뒤 아내의 말문을 틔울 수 있었다. 허탈하게 떠나보낸 휴일의 아쉬움과 매번 늦잠 자는 남편에 대한 원망을 섞어가며 문제를 공유했고, 간신히 해결점을 찾을 수 있었다. 이때도 아내는 울었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홀로 주말을 맞게 된 서운함과 이런저런 서러움이 함께 올라와서인지 한참을 흐느꼈다.


  그리고 다시 한주가 지난 이번 주말. 실수는 반복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마음을 굳게 먹고 금요일 새벽일을 나가지 않았다. 지난주를 만회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벽에 일을 하지 않고 제시간에 잔다면 아내가 일어나는 6시는 아니더라도 9시나 10시는 무난히 일어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자신 있었다. '난 할 수 있다. 난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 잠이 오질 않는다. 아내와 밤 11시쯤 잠들었다가 홀로 새벽 1시쯤 깼다. 여느 때 같았으면 새벽일 나갈 시간이다. 다시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한다. 역시나 잠이 오지 않는다. 계속 시도했지만 도저히 잠이 오질 않는다. 누워 뜬눈으로 이렇게 시간을 보낼 순 없다. 거실로 나가 노트북을 켜 1시간쯤 웹서핑을 한 후 다시 소파에 누워 책을 펼쳤다. 2시간쯤 지났을까?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간, 이제는 잠이 와야 한다. 침실로 들어가 아내 옆에 조용히 눕는다. 잠이 오지 않는다. 아내가 깰까 조심히 뒤척이며 잠이 올만한 자세로 바꿔보지만 어떤 자세든 잠을 부르지 못한다. 그렇게 2시간을 뒤척인 듯하다. 그리고 어떻게 잠들었는지 모른 채 잠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못 잔 것 같은데, 티브이 소리에 다시 깼다.


  아내가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진짜 자야 한다. 아내에게 용인될 수 있는 기상시간을 대략 오후 11시까지로 본다면 3시간 정도는 푹 자야 제정신으로 일상을 보낼 수 있으리라. 잠을 자야 한다는 강박까지 이겨내려 별의별 짓거리를 다한다. 먼저 무선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잠을 청한다. 이때 음악은 켜지 말아야 한다. 플레이리스트의 음악은 잠을 주지 못할 것을 안다. 무선 이어폰만 꽂고 자면 약한 백색소음이 들리는 듯해서 이전에도 잠을 청하는데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오늘은 먹히질 않는다. 차선책은 결국 음악이다. 다른 선택지가 없다. 결국 잠이 들만한 음악을 선곡했다. 선곡하는 동안 정신은 더욱 또렷해지는 것을 느낀다. 선곡한 음악은 즐겨 듣는 라디오헤드의 잔잔한 기계음이 들리는 음악이다. 그것도 미세한 백색소음처럼 귀와 온몸을 릴랙스 시킨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전약후강이라는 점. 기계 메탈 사운드가 점점 커지며 온몸을 뜨겁게 한다. 결국 이마저도 실패했다. 결국 두 시간가량 산송장이 되어 빨리 이승 뜨기를 간구했다.


  아내가 잠 추이를 보기 위해 침실에 들렀다. 새벽일을 하지 않았으니 이제 일어날 때도 됐다고 생각했는지 누워있는 내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가와 이곳저곳을 건드려본다. 하지만 이때마저도 자려고 발버둥 치던 시기였다. 깨어있던 나는 아내에게 인상을 한껏 쓰고,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도저히 잠이 안 와!", "잠이 안 와서 미쳐버리겠어!", "별짓 다해봤는데도 잠이 안 와!" 아내는 할 말을 잃은 채 조용히 방을 나간다. 아내가 방을 나선 뒤 30분쯤 지나고 나서야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그리고 깨어보니 오후 4시였다. 비극의 서막이 올랐다.


  지난주의 기시감이었으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지난주의 리얼의 반복이었다. 살며시 문을 열고 나간 거실이 지옥이 아니길 바랬다. 아내는 지난주와 똑같은 포즈로 소파 안쪽으로 얼굴과 몸을 묻은 채 핸드폰 영상을 시청하고 있었다. 물론 내 인기척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누워있는 아내의 옆구리 맡에 앉아 동태를 살폈지만 아내는 핸드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핸드폰 사운드는 바로 성우들이 성경을 읽어주는 어플이었다. 어플 속 성우들은 불안한 내 마음도 모른 채 성경 속 이야기를 멋들어지고 맛깔나게 읽어내고 있었다.


  평소 주말이었다면 한 상 차려 거하게 먹고 소화시킬 겸 이곳저곳 돌아다니거나 정 할 게 없으면 영화를 보러 가곤 했을 텐데 그런 이 시간에 이리도 불편하게 서로의 호흡을 느끼고 있어야 함이 참으로 서글펐다. 그럼에도 빨리 기분을 풀어 주는 것만이 최선이라 생각하고 뭔가의 새로운 시도는 계속되어야 했다. 하지만 아내의 냉랭하고 무관심한 태도는 더 이상 살갑게 다가가려는 시도조차 막아 세웠다. 하는 수 없이 홀로 아침 겸 점심 겸 저녁을 해결하려 조용히 식탁으로 자리를 옮겨 너구리 라면(매운맛) 하나를 끓여 먹고, 냉장고에 있던 식혜로 입을 가셨다. 


  결혼의 장점이 단점으로 변할 소지가 여기에 있다. 싸운 뒤 부부가 한자리에 있는 것은 곤욕이다. 그나마 방과 거실이 분리되어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그마저도 싫으면 밖으로 나가 바람을 쐐면 되는데, 홀로 밖으로 나가게 되면 고독을 삼키며, 오만가지 생각으로 시간을 때우다 들어와야 하는 것이다. 그 패턴을 아내가 먼저 시도했고, 두껍게 옷을 껴입고 집을 나섰다. 난 다시 침대에 누워 날씨가 추우니 빨리 들어오라는 걱정 아닌 걱정 같은 문자를 날렸고 알겠다는 짧은 답을 마지막으로 이후 어디냐는 물음부터는 답이 없었다. 1시간쯤 뒤 집에 돌아와 다시 각자의 공간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그날 하루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새벽에 반전의 기회가 있긴 했었다. 꼼지락꼼지락 거리며 아내에게 다가갔고, 아내도 길게 끌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지 조금 머뭇거리긴 했어도 기꺼이 다가와 날 안아주었다. 이로써 화창한 아침을 맞을 수 있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아침에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 아내를 보니 역시나 눈 맞춤을 하지 않았다. 


  오늘의 공동일정은 교회 가는 일 외엔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걱정됐다. 간단한 몇 마디 말로 12시 예배에 가자고 합의했고, 말없이 집을 출발했다. 차에서도 말이 없었으며, 교회 도착해서도 말없이 자리로 가서 앉았다. 이때부터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다투긴 했어도 예배는 예배여야 했다. 하지만 난 예배조차도 드리기 싫어졌다. 교회서 울려 퍼지는 찬양소리도 듣기 싫었고, 그냥 앉아있다가는 괜한 설교까지 트집 잡을 기세였다. 신은 이런 마음 상태로 앉아있는걸 원치 않으리라 생각하고, 기도중 아내에게 차에 있겠다고 말하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아내는 나가려는 내 손목을 붙잡았지만 살며시 떼어냈다.


  예배를 마치고 차로 돌아온 아내가 펑펑 울기 시작한다. "예배 중에 왜 나갔어?" 드리고 싶지 않아서 나갔다고 대답했지만 다시 질문이 돌아왔다. "왜 드리기 싫은데?"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마음 상태가 아니라고 말했고, 더 구체적인 이유를 물어 더 이상 신에게 매달리기 싫다고 말했다.


  클라이맥스는 곧 화해의 시발점이 됐다. 예배 중 빠져나온 것에 대해 충분한 해명이 되진 않았지만 심경이 불편하다는 점을 확실히 인식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후 또다시 각자의 공간으로 나뉘어 자리 잡았다. 이번엔 아내가 먼저 내 구역의 경계를 넘었다. 큰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로. 멀뚱이 날 보며 서있는 아내에게 얼른 다가가 본격적으로 울음을 터트리기 전에 아내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얼굴을 쳐다봤다. 이미 터져버린 아내의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흘렀고, 눈물에 이은 리얼한 asmr까지. 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아내가 충분히 울고 나서야 차분히 얼굴을 마주했다. 직면의 시간이다. 아내는 자기만 남겨둔 채 예배당을 빠져나온 것에 대한 서운함과 본질적으로는 매번 늦게 일어나 일상을 함께하지 못하는 점이 서운하다고 했다. 새벽일로 낮밤이 바뀌어 일어나기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서운함이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나 또한 당신과 멋진 주말을 보내고 싶고, 그래서 새벽일도 나가지 않은 거라고. 더욱이 지난주의 서운함을 만회해보려 다짐했는데 결국 잠이 오지 않아 이렇게 돼버렸다고 말했다.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마음을 바라보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아내도 보아하니 얼추 풀린 듯 보였다. 이제 치유와 화합의 시간이다. 서로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언젠가부터 서로의 얼굴을 오래 보고 있으면 웃음이 터지는 기이한 현상이 생겨났다. 나도 그랬고 아내도 그랬다. 오래라고 해봐야 5초에서 10초 정도다. 얼굴을 보다 빵 터지고, 다시 서로 노려보다 빵 터지고를 몇 차례 반복하고 나서 완전한 화해의 순간을 맞이했다.


  이제 좀 늦기는 했지만 남은 휴일에 대한 보상이 남았다. 이때 시간 오후 3시. 뭐라도 해야 하니 아무거나 던지기 시작했다. 아내는 송어, 아니면 초계국수를 먹고 싶다고 했다. 나도 시원한 초계국수가 좋다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또 다른 제안을 했다. 서울 나갈까? 더 반가운 제안에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그리고 옷을 챙겨 입고 한 번에 종로까지 갈 수 있는 버스를 탔다. 의미 없이 흘러간 주말 휴일을 되돌리는 작업이 시작됐다. 요즘 핫하다는 익선동과 인사동 인근을 돌아다니며 사람 구경을 하며 길거리 음식 몇 점을 집어 들었다. 극적으로 화해를 맞이한 순간부터 우리 부부는 더욱 각별해진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 말 실감한다. 특히 우리 부부는 싸움이 오래가지 않는 편이다. 최장 이틀이다. 대부분의 싸움이 당일에 풀어지는 걸 보자면 이번 다툼은 2주 연속 늦잠의 특수성이 반영됐으리라. 주말 멋진 시간을 보내고 싶은 건 아내나 나나 마찬가지다. 결국 잠의 노예가 되어 이 사달이 났지만, 더 이상의 3주 연속 기네스는 등재는 없으리라.


  일명 '빼박(빼도 박도 못하게)'으로 주말 일정을 미리 짜 놓기 위해 아내에게 물었다. "다음 주엔 어디 놀러 갈까?" 아내의 대답. "나 약속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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