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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영 Mar 16. 2019

화이트데이는 무탈한가요?

잘 넘어간 줄 알았다.

  '넌 왜 아무것도 없어?' 화이트데이가 하루 지난 오늘, 아내가 물었다. 조용히 잘 넘어갔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니 순간 뜨끔했다. 어제 그 시절 할까 말까를 고민했었는데 이렇게 고민할 바엔 하는 게 상책이라는 현인들의 말이 떠올랐다.


  꽃 한 송이 아니면 편지 한 통을 기대했다고 말했다. 그 정돈 충분히 할 수 있었던 건데 별거 아닌 소원을 듣고는 살짝 민망하고 아쉽다. 원하던 편지도 마음을 듬뿍 담아 전해줄 수 있거니와 꽃 한 송이 또한 집 앞 화훼단지에서 집에 걸려있는 빛바랜 보라색 드라이플라워와 어울리는 색을 골라 아내의 손에 드리울 수 있었다. 하지만 생각만 했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내에겐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남들의 돈벌이 상술에 놀아나지 말아야 해.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빼빼로 데이, 이런 기념일을 챙기는 건 그들의 속셈에 놀아나는 거야!" 꼰대라서 이렇게 얘기했다기보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웃음으로 넘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뭐냐며 핀잔만 받았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웃기려 했다. "츄파츕스 사줄까?" "아님 초콜릿?"


  아내는 또다시 꽃 한 송이 아니면 편지를 받고 싶다고 했다. 지금껏 아내에게 두 번의 편지를 썼다. 한 번의 결혼 고백에 덤으로, 또 한 번은 100일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아내가 사탕보다 편지를 원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아내의 출근 가방에 항시 그 당시의 편지를 넣어 보관하는 걸로 봐서 종종 그 첫 마음을 꺼내 보는듯하다. 소중하게 여기는 예전의 편지를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 TV가 올려져 있는 테이블 위 유리병에 예전에 건네준 속이 꽉 찬 보라색 장미가 이젠 그때의 모습과는 다르지만 엔틱 한 자태를 뽐내며 병에 꽂혀있다. 한 번의 이벤트로 버려질 생화가 이렇게 예쁘게 변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처음 알고는 다음번 꽃 선물도 오랫동안 간직될 수 있도록 집에 있는 기존 연보라와 어울리는 색으로 골라 아내에게 선물해야겠다고 마음먹던 차였다. 아내에게 물어보진 않았지만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 당시 꽃을 말리며 우리 둘 다 멋진 색감에 감탄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내의 기대를 채워줄 수 있는 어렵지 않은 기회가 찾아왔는데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지금 와서 살짝 변명하자면 4월에 아내 생일과 5월의 결혼기념일이 있어 더 큰 건을 노리고 있던 차였다. 3월의 사탕 데이까지 챙긴다면 너무 흔해빠진 영혼 없는 이벤트가 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었다. 하나 이 또한 나만의 노파심이었을 뿐.


  상술에 놀아나기 싫은 게 10이라면 좀 전에 말한 이유가 90이다. 아내의 생일과 결혼기념일이라고 성대한 이벤트가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앞서 말한 정도를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의 사탕 데이 이벤트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 이젠 큰일이다. 뒤이을 기념일엔 손가락 빨고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TV 속 애처가들은 기념일이건 아니건, 내용이 크건 작건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고, 아무 때나 아내를 위한 이벤트가 펼쳐진다. 소소하건 성대하건 항상 아내를 기쁘게 해 줄 마음의 자세가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아내의 감동포인트를 잡을 수 있는 이벤트에도 특화돼있어 이들은 남자들의 적으로 간주된다. 왜 나에겐 그런 무기가 장착되지 않았을까? 이벤트에 강한 사람이 있으면 약한 사람도 있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사랑은 표현하는 것'이라는 통념에 할 말을 잃는다.


  나에게는 이벤트의 유전자가 없을까? 아니 분명 어딘가에 있다. 유전자가 아니더라도 기억의 습작에라도 있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보고 배운 것이 분명 어딘가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이벤트의 제왕이다. 자신의 환갑잔치 때 축하해주러 온 하객들을 위해 상금을 걸고 큐브(루믹스 사각 큐브) 대회를 열어 세 아들을 콜로세움의 글래디에이터로 만들었다. 여기에 더해 환갑을 맞이한 아버지가 나서 가족 노래자랑을 선보이까지 했다.


  과거로 돌아가 보자. 아버지는 엄마에게 대체 어떻게 기념일을 챙겼을까? 아버지는 엄마의 생일이 다가오면 삼 형제를 불러놓고 돈을 주시며 엄마 생일에 뭔가를 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그래서 우리 삼 형제는 아버지의 말씀을 받들어 수중에 있는 용돈을 보태어 생일파티 준비를 위해 업무분장을 했다. 매년 사랑하는 엄마를 위해 무슨 선물을 해야 할지 고민에 빠지지만 같은 선물을 피하는 노력만이 우리 노력의 흔적일 뿐이다. 초기엔 엄마 생일선물을 문방구 장난감 코너에서 골랐고, 조금 머리가 크고 난 후 책방으로 가기 시작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를 아는 아버지는 다 같이 선물을 공개하는 시간에 우리 삼 형제가 고심하다 못해 내놓은 조각인형이며, 집 가훈 같은 좋은 글귀 액자며, 아무 책 선물에 비해 아버지는 생화나 화분을 선물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엄마는 꽃을 좋아했다. 화분을 가꾸고 가요보단 가곡을 좋아하는 소녀감성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이 정보를 우리에게 귀띔해주지 않고 홀로 간직하며 선물을 마련하셨다.


  아버지의 이벤트 얘기는 끝이 없다. 어린 시절 용산구 후암동에 살았던 우리 가족은 남산타워에서 찍은 가족사진이 많다. 아버지는 매년 이곳을 찾아가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자고 하셨고, 찍은 사진을 보면 포즈만 똑같았지 우리 삼 형제의 표정은 썩어있기 일쑤였다. 최근 명절에 가족들이 모이면 윷놀이는 기본이겠지만 이 외에도 돈을 건 큐브 대회는 여전하고, 설명이 될지 모르겠지만 수십 년 전 내가 초등학교 시절 형의 만들기 방학 숙제를 지금까지도 투명 아크릴에 고이 보관하여 이름인 즉 '모터를 활용한 엘리베이터'를 명절 온 가족이 모인 거실로 꺼내어 전류를 통하게 하면 두 라인이 왔다 갔다 올라가고 내려가고 반복하며 이를 '고', '스톱'으로 일렬로 맞추는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이건 동영상이 아니면 설명이 어렵다)


  어찌 됐건 이런 아버지의 이벤트 유전자가 내 안에 없을 리 만무하지만 이를 격정적으로 내 몸에서 거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버지의 이벤트 사랑으로 인해 언젠가 아버지에게 대항하며 '이건 도저히 못하겠다며' 진을 뺀 경험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벤트에 질렸다고나 할까?


  하나 이를 핑계로 기념일을 유야무야 넘어가려는 꼼수를 쓰는 건 아니다. 단지 한 인간을 이루는 기본 세포 안에 이벤트를 거부하는 강력한 저항 물질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은 밝혀두고 싶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달, 그리고 다음 달, 그리고 그다음 달에 차례로 찾아오는 기념일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서 항상 머리에 그리고 시뮬레이션해야 한다. 나 또한 남자들의 적이 되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이 말은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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