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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hri Sep 30. 2015

너와 이루기를

나에게만 일어날 특별함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나의 모든 경험은 평준화가 되는  듯했다. 스무 살 무렵에는 내 모든 것이 하나하나 다 특별할 줄 알았는데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어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내가 실패한 사랑도 다들 똑같이 겪었고 애절했던 감정도 누구나 다 똑같이 겪은 것 같다. 얼마 전 지인이랑 만나던 중 이런 이야기를 했다. 자기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엄청 좋아했단다. 자기만을 위로해 주는 것 같고 공감해 주는 것 같아서 푹 빠져 살았단다. 마치 나만을 위해 글을 써준 것 같아 너무 행복했단다. 그런데 무라카미 하루키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작가인 사실을 깨닫게 되자 그 사람이 혐오스러워졌단다. 이유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다 함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은 결국 나만을 위한 글이 아니고 또한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뜻이라나. 자신의 사랑만이 우주에서 하나뿐인 특별함이고 애틋함이라 생각하였는데 그 마음이 전 세계에 널리고 널렸으니 무라카미 하루키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게 아니냐 하며 무라카미 하루키를 혐오하게 되었단다. 물론 일리 있는 말이지만 많은 이들의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필력도 실력이라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시대의 실력 있는 문학가 임에는 틀림없다. 나도 '왜 이런 일이 나에게만 일어나는가?' 하는 일들을 겪으며 나만의 독특한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내 주위의 누군가들도 나와 똑같은 경험을 안 해본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 지인의 말에 설득당하였고 나보다 두 살 많은 그 지인의 모습은 마치 나의 미래처럼 느껴졌다. 처음에는 그 사실을 부정하려고 애썼지만 결국엔 그 사람이 겪은 그대로를 내가 겪고 있는걸 보고 전 세계의 모든 남자는 나와 똑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아직 나만의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오기가 남아 내가 너와 사랑한다면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를 생각해보게 되더라.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해보고 싶던 일들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고민을 할 것이다. 

'이전의 추억과는 겹치지 않을 새로운 경험이기를' 

나이가 많고 연애경험이 많은 사람들일수록 이 고민이 엄청난 부담감을 준다. 물론 가벼운 만남으로만 상대방을 만나는 사람들은 그런 고민이 덜하겠지만, 지금 나의 이 사람에게 진실로써 다가가고 싶은 사람들은 이 고민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이다. 이러한 압박감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온다. 이십 대 초중반 정도의 나이가 되면 이러한 고민을 하며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오늘은 어디를 가야 하나, 무엇을 먹어야 하나' 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이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자 하는 양심이기 때문에 상대방을 정말 사랑한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양심은 양심일 뿐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 않은가. 내가 입 다물고 그냥 넘어가면 내 양심만 살짝 찌릿할 뿐 상대방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하나 충고하자면 남자들은 양심에 따르는 편이 좋을 것이다. 여자의 촉이란 언제 어느 상황에 예리하게 날아와 꽂힐지 모르니깐 말이다. 


다른 누군가와 똑같은 바람, 겹치지 않을 새로움 이 기를 바라는 것.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대로 선사하고 싶지 않은 두 가지이다. 지금 내 옆의 사람이 내 운명의 사랑이라 생각되어 내가 꿈꿔왔던 일들 몇 개를 그 사람과  함께하고 헤어진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 다음번에 만난 사람도 내 운명이라 생각되어 앞서 만난 사람과  함께했던 일들을 하고 싶은데 차마 하지 못하겠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나도 물론 그런 위시리스트가 있었고  그중 많은 것들이 좋았던 또는 나빴던 사람과 함께 없어져 버렸다. 지금 내 옆의 그녀에게만 줄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내기가 꽤 어려운 편이다. 그래도 스스로가 창의적이라고 생각하기에 많은 아이디어로 새롭고 특별한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그런데 정말 희한하게도 내가 사랑을 하게 된다면 꼭 해보고 싶던 것 1순위는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별것도 아니고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며 많은 사람들도 경험한 특별하지 않은 일인데 말이다. 추운 겨울밤의 공기는 분명 시리디 시린 투명함일 것이고 주위의 불빛이 죄다 어둠에 먹혀버린 어느 곳에서 포근한 니트를 입은 채로 서로 껴안아 입김으로 서로를 녹여가며 올려다보는 밤하늘. 그리고 울컥 쏟아질 것만 같은 수많은 별들. 내가 사랑을 하게 된다면 제일 하고 싶은 것이다. 영화에서도 많이 나오고 이미 많은 연인들이 겪은 아름다운 경험이겠지만 이것을 온전한 나와 그 사람만의 경험으로 남기고 싶다. 다른 누군가와 똑같은 바람일 수 있긴 하지만, 겹치지는 않았다 하는 변명으로 내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듯 하지만 이 소원이 딱 한 명 만과의 소원이 될 수 있도록 절대로 양보하지 않고 노력해왔다. 내가 가장 순수했던 때의 첫 번째 소원은 아직까지 이렇게 이뤄지지 않고 잘 간직되고 있다. 


나만의 특별함이라는 건 누구나 다 겪는 평준화된 경험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어떤 감정을 만들어내게 된 계기와 그 감정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자꾸 그 처음으로 돌렸던 노력들은 절대로 평준화될 수 없는 유일함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특별함은 평준화된 경험일 뿐이라는 지인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특별함은 그저 겪고 나니 경험이었지 하는 과거지향적인 성격을 지녔고 나만의 방식으로 지켜온, 다가올 날들을 기다리는 미래지향적인 성격을 지닌 특별함이 아니다. 겹치지 않을 새로움 이기만 하면 더욱 소중한 특별함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이루고 싶은 첫 번째 소원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고 다가올 그 날이 멀지 않았음에 이 소원은 특별함이 되기 위해 바르르 떨고 있는 것이다.


너와 이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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