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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조의 호소 Nov 04. 2018

아닌 척하지만 사랑하고 싶다

선 긋기와 연애의 극과 극

 나의 엄마는 강인한 여성이다. 딸 다섯을 낳아 기르면서 무릎과 손목 관절이 다 나갔지만 가족들에게 힘든 내색 않고 집안일을 도맡아 하셨고, 난감한 상황이 닥치면 항상 결정적인 선택지를 먼저 제시해 주셨다. 집안 형편이 나쁠 때든 좋을 때든 엄마는 늘 현하셨고, 누군가에게 쉽게 고민을 털어놓지도 않으셨다. 어렸을 때에는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은 엄마가 늘 대단해 보였는데, 지금은 엄마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싶다. 엄마가 이렇게까지 독립적이게 된 건 가족도 친구도 없는 타지에서 4살 연하인 아빠와 살면서 득할 수밖에 없었던 만의 생존 방식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그랬듯이, 우리도 독립적으로 커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려운 일이 생겨도 웬만하면 혼자서 해나가 정 도움이 필요하면 자매들끼리 해결했다. 타인에게 부탁을 한다는 것은 민폐를 끼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피치 못해 작은 도움이라도 청하게 되면 죄스러운(?) 기분에 안절부절못했다. 자연스레 우리는 남들에게 의존하지 않는 ‘또 다른 엄마’가 되어 갔다.

 자매들 중에서도 나는 가장 개인주의적이고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한 편이다. 무언가를 받게 되면 그만큼(또는 그 이상)은 꼭 돌려주거나 아예 주지도 받지도 않는 게 편했다. 상대가 가족이든, 친구든, 회사 동료든, 이성이든 상관없이 선을 긋는 것이다.


 ‘선 긋기’는 사랑을 하는 데 있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들은 이성친구에게 이것저것 허심탄회하게 얘기도 하고 크고 작은 부탁도 쉽게 하면서 가까워지던데 나는 그게 잘 안된다. 예전에 사귀었던 동갑내기 친구와는 서로 존댓말을 했었는데, 이삿짐을 옮기는 중요한 일이 생겨도 그에게 도와 달라는 말을 꺼내지 못할 정도였다. 거절당할까 봐 두려웠고, 자존심도 상했고, 그 정도의 사이가 맞는지 의구심도 들었다. 결정적으로 '나 역시 그를 위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가' 물었을 때 '그 정도는 아니'다. 그 이후에도 연애 패턴은 비슷. 선을 겹겹이 다가 오해가 쌓이고 쌓여 사소한 계기로 빵 터지면서 끝나는.


 밀당 같은 것은 아니다. 이런 현상은 나도 모르게 저절로 나타난다. 무의식이 하는 일을 내가 어쩔 수 있겠는가. 누군가를 만날 때 마음의 벽이 쳐건, 상대를 경계 대상으로 인지하고 나를 보호하기 위한 모드를 가동하는 것이다. 건물에 불이 났을 때 더 멀리 번지지 않게 미리 차단벽을 내리는 것처럼 말이다. 


 마음 상태가 이토록 방어적이다 보니 주변 사람들은 내가 연애에 관심이 없는 줄 안다. 난 그저 ‘뜨거운 사랑’을 기다릴 뿐이다. 그것은 내가 본능적으로 경계하지 않아도 될 누군가를 만나야만 가능할 것이다. 내게 둘러진 선을 끊어 내고 성큼 들어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굳이 계산하지 않게 되는, 진짜 사랑을 하고 싶다. 요즘 세상에 그런 건 호구나 하는 짓이라 해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 쏟는 거라면 아깝지 않을 것 같다. 인생은 단 한 번 뿐이지 않은가.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을 해야 눈 감는 날 후회 없이 웃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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