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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soy Apr 06. 2021

커핑, 커핑, 커핑 - 1

빈브라더스 로스터리 루틴 (1/3) − 생두 소싱 커핑

로스터리에서 다들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요. 각자 너무나 바빠 보이는데, 밖에서는 무엇 때문에 바쁜지 잘 모르겠어요.


안녕하세요. 로스터리 소이입니다. 지난 1호 뉴스레터에 남겨주신 반가운 피드백에 이런 질문이 있었어요. (물어봐주셔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COVID-19 이후 오픈 커핑도 멈춘 지 오래고, 로스터리가 워낙 인천 공단에 뚝 떨어져 있기도 해서 바리스타 분들과의 교류가 너무 드물어졌죠. 그동안 새로 오신 분들도 많고요. 몇 편에 나눠 로스터리 루틴을 소개드려볼까 해요.


로스터리의 대표 루틴을 두 가지 꼽는다면,

1. 제품 로스팅에서 출고까지

2. 다른 하나는 커핑일 거예요.


그중 커핑 루틴은 목적에 따라 다시 둘로 나뉩니다.

1. 생두 소싱 : "올여름 라인업으로 출시할 과일스러운 커피 2가지를 찾아야 하는데."

2. 품질 체크 : "이번 주에 생산한 8가지 커피, 모두 목표 퀄리티에 들어오나?"


오늘은 그중 생두 소싱을 위한 커핑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려드릴게요.



BB 라인업을 엄선하는 사람들,

QA팀의 커핑 루틴


BB에서는 매달 평균 3가지 커피를 골라 소개하고 있는데요. 그 세 가지 커피 뒤에는 선택되지 않은 약 140여 개의 커피가 있습니다.




준비...!

화요일 오전 8:00 am


로스터리의 소싱용 커핑은 매주 초 케이브의 공지로 시작됩니다. 매주 수목금 3일간 약 7시간에 걸쳐 진행되는데요. 커핑을 앞두고 월화 이틀간, 로스터 케이브는 샘플 로스팅으로 분주합니다.


커핑은 늘 8시쯤 시작돼요.

무척 불완전하고 쉽게 망가지는 커피 평가 도구, '코와 입'이 가장 쌩쌩한 시간은 커핑에 내어줍니다.




1차 커핑

수요일 8:00 am - 11:30 am


1차 커핑. 빠르게 OX를 판단하는 스피드 퀴즈.

수요일에는 결격인 커피를 빠르게 필터링합니다. 참여인원은 세 명. QA팀* 중 로스터리 멤버들이 참여해요. 보통 30-40종의 커피가 오르고요. 한 커피당 한 컵만 깔립니다. 초점은 매력 찾기가 아니라 문제 있는 걸 걸러내는 거예요. 쓴맛, 떫은 촉감 등의 결격사유에 해당하는 커피는 이 단계에서 Bye.


각 커피 별 코멘트는 하지 않습니다. 1단계에서 필터링된 커피에 대해서는 수입업체에 자세한 피드백을 드리지 못하고, 1단계에서 걸러질 때 어떤 의견이 나왔는지 공유드리고 있어요.




*QA(Quality Assurance) 팀 : BB를 대표해 구매할 커피의 품질을 평가하는 커퍼 팀입니다. 어지러울 때까지 무지막지하게 마시고 평가하고 기록하는 게 일입니다. 지금은 로스팅 리드, 생두 소싱 코디네이터, 수석연구원, 숙련된 바리스타 2인으로 구성돼있어요.



2차 커핑

목요일 8:30 am - 11:30 am


각 커피를 가장 디테일하게 뽀개는 시간입니다. 이 단계가 우리가 커핑 하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모습에 가장 가깝겠네요. 바리스타 멤버를 포함한 QA팀 전원이 참여합니다.


평균 20종 정도를 맛보는데요. 항목별로 구체적으로 평가합니다. 주된 향과 애프터의 강도, 산미와 단맛의 강도, 테이스팅 노트, 컵 간 일관성 및 클린컵과 밸런스까지. 제임스를 주축으로 개발한 자체 BB 자체 커핑 시트를 사용하고 있어요.

BB 커핑 시트. 이 얘기는 나중에 따로.


그리고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용도입니다. 같은 커피라도, 블렌드용인지 싱글 오리진 용인지, 블렌드용이라면 누룽지 같은 몰트용인지, 다크 초콜릿 같은 블랙수트용인지에 따라 적절한지 여부가 달라지겠죠?


60여분에 거친 블라인드 커핑 후에는, 둘러앉아 각 커피 별로 팀원들의 평가를 나눕니다. 로스터 케이브가 샘플 로스터로 로스팅한 특징이 제품 생산용 대량 로스팅에서는 어떻게 다르게 발현될 수 있는지에 대한 참고의견을 공유해주기도 해요.
 

2차 커핑 디스커션 실시간 기록


2차 커핑 기록은 여러 용도로 사용됩니다.


1. 우리 스스로를 위한 기억저장소

수많은 커핑 속에서 이 순간의 기억은 내일만 돼도 아스라해집니다. 그때 어땠더라 궁금해지는 순간에 다시 꺼내봅니다. 구매해서 도착한 커피가 우리의 기억과 다르게 느껴질 때, 그리고 당장 다음 날 브루잉해서 맛보면서.


2. 샘플을 보내준 수입업체와의 동기화

디테일한 커핑 피드백이 쌓여갈수록, 파트너도 BB팀의 취향을 점점 더 잘 알아갑니다. 샘플을 보내주는 단계에서부터 구매할만한 걸 골라서 보내줄 수 있고 타율이 높아지니, win-win이죠. 로스터리 팀에서는 같은 가짓수의 샘플을 로스팅하고 커핑할 때 고를만한 게 늘어나니 좋고요. 한 번에 4-5가지 이상의 업체로부터 샘플을 받다 보니 로사는 금요일이 되면 기록을 번역하고 메일 쓰느라 바쁩니다.


3. 여러 장소에 있는 팀과의 동기화

이날 커핑 후 남은 원두들은 데릭의 랜덤 뽑기를 거쳐 빈브라더스의 각 스테이지(카페)로 보내집니다. 각 스테이지에서 이 시트를 보면서 각자가 느낀 노트와 QA팀의 의견을 비교해볼 수 있는 참고자료가 되죠.



3차 브루잉

금요일 8:00 - 8:45 am


로스터리 QA팀이 구매 후보 5~10개 이내의 커피가 테이블에 오릅니다. 이번에는 커핑 볼이 아니라 클레버 드리퍼로 추출합니다. 왜냐?


1. 후각 미각 리셋 후 더블체크

주변에 깔려있는 게 무엇인지에 따라서 놓칠 수 있는 점이 있는데요. 하루를 사이에 두고 다른 컨디션에서, 주변에 깔린 컵이 훨씬 더 엄선된 상태에서 한 번 더 검증하면, 어제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거나, 결론이 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어제 검증하고 싶었던 포인트를 확인합니다.


2. 일관성 체크 보완

2차 커핑에서 커피 별로 두 컵만 평가하면서 놓칠 수 있는 일관성 항목을 보완합니다.


3. 고객이 맛볼 방법으로 마지막 확인

브루잉된 용액은 커핑으로 맛볼 때보다 농도가 낮고 향의 강도도 약해지는데, 여전히 소개하고 싶은 매력이 잘 드러나는지 확인합니다.


이 날은 정보를 공개하고 커핑합니다. 맛본 의견을 나눌 때 원산지, 품종, 가공방법, 농장 이름, 수분함량, 유기물 손실률(a.k.a. 로스팅 포인트) 데이터를 보며, 관능평가에서 보정해야 할 부분이 없는지, 생두 수분함량이 너무 높거나 낮지 않은지 등을 검토합니다.


수목금에 걸쳐 팀이 나눈 생각과 배움을 정리해 데릭이 커핑 로그를 공유합니다. 각 스테이지로 배송된 원두는 이 커핑 로그의 관전 포인트를 갖고 맛보면 의미가 더 풍부해져요.


번개 같은 데릭의 커핑 로그. 3차 브루잉이 끝나면 바로 공유됩니다.




장바구니 담기

금요일 8:45 am - 9:00 am


3차 커핑을 거치면서 QA팀이 검증한 후보가 정해지면, 종합적으로 검토해 구매 여부를 결정합니다. 출시될 라인업별 적정 가격인지, 물량이 구매하기에 적정한지, 그 구매처로부터 구매할만한 커피가 최소 단위를 꾸릴 수 있을지, 월별로 다채로운 싱글 라인업이 만들어지고 있는지 같은 것들이죠. 단, 판단이 섰다면 빠르게 수입업체에 연락해 예약합니다. 우리에게 맛있는 커피는 다른 사람들도 좋아해요. 그래서 구매에 필요한 정보는 생두가 로스터리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받아서 준비해두고 있어요. (로사 최고..!)



마치며


평균적으로 한 달에 150종의 커피가 테이블에 오르고, 월 3-4개 커피를 소개드리고 있으니, 샘플로 입수하는 커피 중 1-2%에 해당하는 커피가 선정되는 셈입니다. 잠시 자뻑으로 이어질 뻔했지만, 그런 얘기는 아닙니다. 참여하는 팀원 수를 감안하면 매주 커핑에만 거의 30시간이니, '쯧, 너무 비효율적이네' 생각할 만큼 많은 리소스입니다.


로사의 샘플 입수에서 피드백 공유까지 수입업체와의 커뮤니케이션, 케이브의 30-40여 종 샘플 로스팅, 데릭의 기록과 커핑 로그 시간을 더하면, 계산은 그만 하는 게 좋겠네요. 게다가 처음 로스터리에 왔을 때는 낭만적으로만 보였던 커핑이, 세네 테이블 연속으로 하고 나면 더 이상 놀이 같지 않게 느껴지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핑 시간은 여전히 이곳이 가장 로스터리다워지는 시간 중 하나입니다. 팀원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소리가 가장 크게 들리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소싱과 로스팅과 추출과 연구의 관점이 스파크 튀며 만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하루빨리 코로나 단계가 완화되고, 그 전처럼 10명 넘게 바글거리며 커핑하는 날이 왔으면. 다양한 코와 입이 모여 한층 더 풍요로웠던 커핑 세션이 무척 그리운 요즘입니다. 원격으로나마 더 가깝게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볼게요.


다음에는 매주 제품으로 로스팅한 제품의 품질 체크를 위한 커핑 이야기를 들고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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