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이야기는 어떻게 습관으로 형성되는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직후, 저는 장염과 허리 부상으로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다닌 고등학교의 하루 일과는 새벽 6시에 기숙사에 있는 모든 학생들이 기상 음악을 듣고 일어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운동장에 가서 아침 운동을 하고 운동장을 5바퀴를 돈 후 다시 기숙사 방으로 돌아와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아침 7시 30분부터 기숙사 식당에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한 시간 동안 아침 자율학습을 마친 후,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교실에서 수업을 들었습니다. 저녁 6시에 기숙사 식당에서 모든 학생이 저녁 식사를 한 후, 저녁 7시부터 12시까지 교실에서 저녁 자율학습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빡빡하게 짜인 일정을 따라 친구들이 교실에서 공부할 때, 저는 기숙사 방에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입학하자마자 장염에 걸려서 몸무게가 6kg이 빠졌고, 농구를 하다 다친 허리 때문에 고등학교 1년 내내 병원 치료를 받거나 기숙사에 누워 있어야만 했습니다. 당연히 공부에 집중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 결과 제 성적은 한 학기가 지나지 않아서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을 정도로 떨어졌습니다. 병원들이 6시면 문을 닫아서 치료를 받으러 갈 때면, 언제나 수업을 빠지고 가야 해서 일주일에 두세 번은 수업을 듣지 못했습니다. 선생님들께 병원에 가야 해서 수업을 빠진다고 말씀드리면 대부분 별 말씀 없이 보내주셨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저에 대한 기대가 없으셨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쉽게 허락을 해 주셨습니다. 수업을 듣고 있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물리치료와 침을 맞으러 교실문을 나설 때면, 교실 안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바깥 공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서”와 “꽃들에게 희망을”같은 책들을 그 당시 많이 읽었는데, 그런 책들이 위로를 주기보다는 경쟁에서 한없이 뒤처진 것 같은 기분만 더 들게 만들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저는 제 성적을 향상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성적이 안 나온다고 해서 좌절만 하거나 의욕을 상실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녁 7시부터 12시까지 공부를 했고 가을 학기에는 성적이 첫 시험 성적과 비슷한 전체 60명 중 40에서 45등 수준까지 올라갔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했지만, 제 성적이 많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닥까지 떨어졌던 성적을 겨우 첫 시험 수준 정도로 끌어올리는 것으로 끝났을 뿐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좋은 친구를 만났습니다. 고1 가을 학기에 만난 Y라는 좋은 친구와 단짝이 되어 Y의 공부 습관을 따라서 같이 공부했습니다. 저녁 8시 20분부터 주어지는 10분 쉬는 시간에는 운동장 가운데 있는 평행봉에서 운동도 규칙적으로 했습니다. 그 10분 동안 평행봉 운동을 15회 하면, 몸과 마음이 회복되고 상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록 그 학기에 성적은 많이 좋아지지 않았지만, 건강은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한국의 고등학생들에게 겨울방학은 매우 중요한 시간입니다. 많은 학생들이 학기 중에는 개인적으로 공부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긴 겨울방학 때 집중해서 공부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겨울 방학 때 열심히 공부한 사람은 봄학기가 시작되었을 때 성적을 향상시키기도 합니다. 2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 방학 때, 저와 제 친구는 우리가 생각한 만큼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겨울 방학 때 대부분의 친구들이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기 원했고 도서관 자리들 중에도 선호하는 자리들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도서관 좌석은 언제나 추첨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추첨을 하면 제 친구와 제가 같은 자리에서 함께 공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것을 포기하고 교실에서 둘만 남아서 공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리 둘만 남아서 공부하려고 했던 교실에, 한 사람이 더 남은 것입니다. 그 친구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것이 싫었을 뿐만 아니라, 교실에서도 공부를 열심히 할 생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 친구에게 신경 쓰지 않고 공부에만 집중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한 교실에서 같이 있으면서 계속 그렇게 시간을 보낼 수 없어서 방학 동안 셋이서 조금은 풀어진 분위기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드디어 고2 봄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3월이 되자 새로 반배정이 이루어졌는데, 저와 같이 공부하던 Y는 다른 반에 배정되었습니다. 당시 경남과학고에는 한 학년에 60명의 학생들이 있었고 두 개의 반으로 나뉘어서 반이 편성되었습니다. Y가 함께 계속해서 공부할 수 없게 된 것을 알고, 처음에는 교장 선생님께 찾아가 이 문제에 대해서 상의할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반배정 문제로 학생이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는 것을 용인할 수 있는 학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 변화를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3월 첫째 주부터 저는 매우 우울하고 낙담했습니다. 더 이상 희망은 제게 없는 것 같았습니다. 당시 학교 정문 앞에는 과학슈퍼라는 이름을 가진 슈퍼가 하나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그 가게를 “과슈”라고 불렀습니다. 과슈에는 과자들을 팔았고 학생들이 주문하면 라면과 비빔면도 끓여서 팔기도 했습니다. 3월 첫 주 어느 날 저녁, 과슈에서 간식을 산 후 학교 정문으로 다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는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정문을 지나 학교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정문을 지난 후 몇 발짝 걷지 않았을 때,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번쩍하며 든 생각이었습니다. 억울하단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 나왔습니다.
“왜 나는 내가 공부를 못할 수밖에 었다고 생각하지?
왜 나는 스스로 안된다고 생각하는 거지?
나도 똑같은 과학고 학생인데 왜 나는 스스로 공부를 못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
이건 너무 바보 같은 생각이잖아. 여기 학생들 모두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공부하는데, 정말 내 가정환경이, 내 상황이 내 성적을 결정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게 아닐까? 다른 학생들에 비하면 여러 가지로 부족한 환경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잖아. 그런데 왜 난 이미 내 실패를 예상하고 스스로 내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잖아.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실패를 나 스스로 당연하게 생각하면 이미 실패할 수밖에 없어. 난 그저 실패를 두려워해서, 미래의 실패를 변명할 이유들을 생각하기 바쁠 뿐이었어.
왜?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해야 해?
그렇지 않아! 내가 못한다고, 나는 안된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어. 결과가 어떻게 돼도 괜찮아. 하지만 겁을 먹고 포기하는 건 너무 바보 같은 행동이잖아.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잖아.
내가 스스로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못할 이유가 없어. 왜 내가 스스로 포기해야 되는 건데?”
이 생각은 마치 제게 은혜의 선물처럼 주어진 것 같았습니다. 이 생각이 저를 완전히 달라지게 했습니다. 저는 잃어버렸던 희망을 되찾은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열정을, 이 마음을 어떻게 지속해 가느냐였습니다. 그즈음 새로 부임하신 고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은 제게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 반 학생 전체에게 주신 말씀이지만 제게는 저를 자유케 하는 진리의 말씀처럼 들렸습니다. 3월 봄학기 시작된 후 며칠 되지 않아서, 담임 선생님은 교실의 모든 학생들에게 “공부는 습관이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제게 성적을 향상하기 위해서 습관의 형성이 필수적인 점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상식에서 습관은 오직 반복을 통해서만 형성될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 제가 덕윤리를 알게 되고, 아리스토텔레스, 맥킨타이어, 하우어워스 등을 알기도 전에 오직 반복을 통해서 습관이 형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무엇인가를 반복해서 습관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반복할 최소 시간 단위가 필요했습니다. 영화 “사랑의 블랙홀”에서 매일 하루가 반복되는 것처럼, 저에게도 반복할 “하루”를 먼저 형성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루 중 제가 사용할 수 있는 공부시간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지 계산해야 했습니다. 중 2 때 했던 것처럼, 저는 일주일 총 시간 중에서 제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들을 계산했습니다. 사용 가능한 시간을 계산하기 위해 하루 24시간에서 필수적인 시간들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사용 가능한 공부 시간으로 계산했습니다. 그때의 계산을 다시 해 보면, 하루 24시간 중 공부를 할 수 없는 시간은 수면시간 4시간과 나머지 2시간으로 총 6시간이었습니다. 수면시간을 제외한 2시간 동안 세수를 하고 식사를 하고, 화장실에 가고 운동을 했습니다. 나머지 18시간을 공부하는 시간에 사용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하루의 계획을 최대한 단순하게 바꾸고 매일 하루의 일정을 동일하게 만들었습니다. 처음으로 제일 중요한 과목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저녁 7시부터 저녁 12시까지 시간 동안 수학을 공부했습니다. 고1 때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저의 수학 실력은 동기들에 비해서 많이 뒤처져 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학을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뒤쳐진 수학 실력을 한꺼번에 따라잡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3월 말에 있을 시험 범위만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매일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서 수학을 공부했습니다. 이렇게 공부한다고 성적이 오른다거나 실력이 좋아진다는 보장이 없었지만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제 목표는 제게 주어진 시간 동안 다른 것들이 끼어들지 않게 계획에 따라서 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
밤 12시부터 2시까지 영어를 공부했고, 10분씩 9번 있는 쉬는 시간에 영어 단어를 외웠습니다. 아침 7시 50분부터 8시 30분까지 국어를 공부하고 주말에는 과학과 사회 과목들을 공부했습니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공부를 했습니다. 어떤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오직 제게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최선을 다한 하루의 시간을 매일 반복함으로써 습관을 형성한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오직 그것만을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님께도 제가 구한 기도는 최선을 다해 하루를 살아갈 있도록 힘과 용기를 더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3주 후에 시험을 보는 날 아침에 저는 매우 행복했습니다. 결과가 좋을 것 같아서 기쁜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한 하루를 3주 동안 21번 반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 기뻤습니다. 시험의 결과도 기대 이상으로 좋았습니다. 여전히 평균보다 조금 잘한 정도의 성적이지만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서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다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성적이 오른 것이 아니라 공부 습관이 형성되었다는 것입니다. 한번 형성된 공부 습관 덕분에 첫 시험 이후 한 달 뒤 두 번째 시험을 볼 때는 큰 어려움 없이 시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성적도 그보다 더 향상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번 형성된 습관은 지속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 경험은 제게 습관은 이야기로 형성되며 형성된 습관은 지속적 변화를 만든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확인시켜준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