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단의 이야기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사람의 삶은 어떻게 다른가?

by 강성호

요나단의 이야기의 배경: 하나님의 영광 내러티브


하나님의 영광을 알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간 이들이 성경에도, 역사 속에도 많이 있지만 다윗과 함께 요나단은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이해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인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우선 다윗과 요나단은 동시대의 인물이면서 전쟁이 여호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대적하여 싸울 때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1] 요나단도 동일한 내용을 선포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2] 다윗이 다른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했던 골리앗과의 전투에 나섰던 것처럼, 요나단은 또한 그의 무기를 든 소년과 함께 블레셋 사람들과 싸웠습니다. 요나단에게 영향을 끼친 성경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요나단과 다윗이 공유한 하나님의 영광의 내러티브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요나단과 다윗의 정치 사회적 역학 관계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울 왕의 아들로서 이스라엘 내부에 신망을 얻고 있던 요나단에게 다윗의 등장은 결코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요나단은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권력은 자식과도 나누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왕이 될 사람이 자신의 왕위를 위협하는 사람을 이토록 지극정성으로 돕고, 다윗이 잘되기만을 바라는 경우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매우 보기 드문 일입니다. 조선이 건국된 이후 이방원에 의해 일어난 왕자의 난이나 예수님 당대에 헤롯 가문에서 나타났던 권력 투쟁의 이야기를 생각해 볼 때, 요나단의 경우는 더욱 특별합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목숨과 같이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왕위와 나라가 다윗에게 위협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그를 도왔습니다. 사무엘상 21장 30절에 사울이 아들 요나단에게 화를 내며 말합니다. 사울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닙니다. 사울의 판단이 지극히 상식적인 것입니다.


사울이 요나단에게 화를 내며 그에게 이르되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사람을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 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이니라 한지라 [3]


사울의 말이 옳은 판단이었습니다. 권력의 역학관계상, 다윗이 흥하면 요나단은 기울어지게 되어 있는 운명입니다. 그런데도 요나단은 이를 아쉬워하지 않습니다. 다윗을 죽이거나 위협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그를 도우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요나단이 분명 보통의 사람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나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길래 이렇게 행동하고 있을까요?


요나단은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었고,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분명한 자기 인식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매일매일의 삶에서 요나단은 자신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며 온 우주의 주인 되시며, 전쟁을 주관하시며, 모든 인생의 주관자 되시며 자신을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요나단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블레셋 군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침략하고, 먹고 살기는 쉽지 않고,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스라엘의 현실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 모든 인생사와 나라들을 주관하는 왕이시라는 사실을 믿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실을 믿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길갈에 모이라고 하면 길갈에 모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도 하였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온 맘과 생명을 다해 자신의 인생을 걸고 삶의 모든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블레셋 군대가 조금만 강해 보여도 요단 강을 건너서 도망치기 바빴습니다.


그런 현실 속에서 요나단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함께 나눌 한 사람, 그 사람을 만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돌아와 요나단과 처음으로 만난 날 요나단은 다윗을 보자마자 목숨같이 사랑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상 18장 1절은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뻤습니다. 자신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소중히 여기며 그 일을 위해 인생을 걸 줄 아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며 복 주셔서 결국 승리하게 하신다는 굳건한 믿음이 다윗에게 있었기 때문에, 요나단은 자신과 동일한 마음을 가진 다윗을 자기 목숨처럼 사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을 알아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은 자기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 때문에 동역자를 자기 생명처럼 아끼며 동역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 가운데 드러나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맛 보아 아는 사람이의 모습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마음이 절실하고 그 마음이 그 사람을 움직여 나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요나단에게 다윗은 그 사람이었습니다. 함석헌 선생님의 시에 나오는 구절처럼, 먼길 떠날 때 가족을 맡기고 떠날 수 있는 사람, 나는 죽어도 너만은 살아 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이 요나단에게는 다윗이었습니다. 또 다윗에게도 그 한 사람은 요나단이었습니다.


요나단이 구현한 하나님의 이야기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4]


다윗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골리앗과의 싸우기 위해서 일어난 것처럼, 요나단도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도무지 승산이 보이지 않는 전투를 벌였습니다. 사무엘상 14장 본문은 다윗과 요나단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는 본문입니다. 사무엘상 14장 말씀을 통해서 요나단이 붙들고 있었던 하나님의 영광의 이야기와 그 이야기가 형성한 요나단의 성품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무엘상 13장까지 블레셋과의 전투를 앞두고 있는 이스라엘의 상황은 매우 절망적입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전투가 믹마스에서 벌어졌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믹마스에 진을 쳤는데도 사무엘이 정한 기일 내에 오지 않자 초조해진 사울 왕은 스스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사무엘이 사울 왕을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돌아갑니다. 사무엘이 떠나 버렸기 때문에 사울에게는 영적인 권위도 능력도 없었고 전쟁의 전세는 더욱 불리해졌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울 곁을 도망쳐서 함께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수도 600여 명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무기와 연장을 만드는 것은 블레셋 사람들이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가진 무기는 오직 사울과 요나단에게만 있었을 뿐입니다. 블레셋 군대는 점점 이스라엘을 향하여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가 이스라엘 진영 바로 코 앞인 믹마스 어귀에 이르렀습니다. 무기도 제대로 없고 싸울 병력도 얼마 없으며 전쟁을 위해 기도해 줄 사무엘도 없는 상황입니다. 더군다나 블레셋 군대는 병거가 3만, 마병이 6천 명인 강력한 군대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나마 있는 군인들조차 대부분 탈영하여 굴과 수풀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어버렸습니다. 이제 전쟁에서 승리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이스라엘 진영은 고통스럽지 않게 죽는 것밖에 기대할 것이 없는 상황입니다. 이렇듯 사무엘상 14장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하루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블레셋 사람들의 부대로 건너가자 하고 그의 아버지에게는 아뢰지 아니하였더라”[5]


요나단이 블레셋 진영으로 결단한 저 날은 단순한 “하루”가 아닙니다. 죽음까지 각오하고 상대 진영을 공격하기로 결심한 날입니다. 그러므로 그 하루가 오기 전 요나단이 겪었던 번민의 시간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요나단이 가진 번민은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능력을 아는 사람이 가질 수밖에 없는 번민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온 세상이, 온 이스라엘이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원래부터 하나님도 모르고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도 모르는 사람들은 현실 속 눈에 보이는 고통에만 반응할 뿐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무시당하고 조롱을 당해도 그들은 힘들어하지 않았습니다.


요나단은 세상의 이야기보다 하나님의 이야기에 마음을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의 이야기는 눈에 보이는 가치들로 이루어져 있고, 당대의 가장 강력한 가치관들로 가득 찬 이야기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야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야기였으며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신실한 믿음의 이야기였습니다. 하나님을 일상의 삶에서 경험한 요나단에게 하나님의 이야기는 실재했고 살아있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므로 요나단은 하나님이 무시당하고 모욕당하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나단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확신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분연히 일어섰습니다. 그날이 바로 사무엘상 14장 1절의 “하루”입니다.


그 날에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들의 부대로 건너가자”라고 말합니다. 아버지 사울 왕에게도 알리지 않고 적진으로 나아가는 요나단이 전술, 전략에 의지하여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수만 명의 적군을 상대로 단 두 명이서 도무지 싸움이 되지 않을 무모한 전투를 벌이러 가는 상황이 전술적 전략적 행동일 수는 없습니다.


요나단이 이토록 무모한 행동을 벌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영웅이 되고 싶어서 판단력이 흐려진 것이 아닙니다. 요나단은 지금 자신이 죽을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나아가겠다는 결사적인 태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는 시대이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나 한 사람이라도 일어나 싸우겠다는 생각입니다. 그 당대 사람들의 눈으로 바라보면, 요나단의 행동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현실도 모르는 바보 같은 행동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요나단은 자신의 행동이 승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결과가 어떠하든지 나는 나의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자세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피하는 자리이지만 요나단은 그곳이 생명의 자리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리임을 알고 나아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목자 되시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애 가운데 어떻게 자신을 지켜주시고 인도하셨는지 요나단은 알고 있기 때문에 확신 가운데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요나단의 생애 가운데 경험한 여호와 하나님은 요나단의 내면에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를 각인시켜 주었습니다. 요나단이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는 요나단의 신앙 고백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요나단에게 눈에 보이는 블레셋의 군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블레셋의 군사력보다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이 더 중요했고, 그들보다 하나님이 더 강하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믿음으로 요나단은 어떤 두려움이나 주저함없이 적진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단의 마음에 확신을 주셔서 그를 인도하였기 때문에, 요나단은 블레셋과의 전투를 의연하고 당당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요나단이 무기 든 소년과 블레셋 진영으로 건너가려고 할 때 다른 사람들은 기브아 변두리 미그론에 있는 석류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왕이 있어도 제사장이 있어도 그들은 명목만 있을 뿐 믿음 없는 사람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요나단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낙심하고 절망한 그들을 몇 마디 말로 설득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은 다른 이들을 설득하는데 시간을 쓰다가 지쳐서 쓰러질 수 없습니다. 자신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증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인 요나단은 아무도 모르게 블레셋 진영으로 건너가서 전투를 벌였습니다.


들에 있는 진영과 모든 백성들이 공포에 떨었고 부대와 노략꾼들도 떨었으며 땅도 진동하였으니 이는 큰 떨림이었더라 [6]


사람의 힘을 의지하며 나아온 수 만 명의 블레셋 군대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헌신한 한 사람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요나단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이야기를 자신의 삶에서 구현한 사람이었고, 자신의 삶으로써 “구현된 하나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자신의 삶으로써 하나님의 이야기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였습니다. 이렇게 구현된 한 사람의 이야기는 강력한 영향력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울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백성이 모여 전장에 가서 본즉 블레셋 사람들이 각각 칼로 자기의 동무들을 치므로 크게 혼란하였더라 전에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하던 히브리 사람이 사방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진영에 들어왔더니 그들이 돌이켜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이스라엘 사람들과 합하였고 에브라임 산지에 숨었던 이스라엘 모든 사람도 블레셋 사람들이 도망함을 듣고 싸우러 나와서 그들을 추격하였더라 [7]


요나단에 의해서 구현된 이야기는 단순히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도망가기 바빴던 이스라엘 모든 사람도 그 전투에 동참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참여했습니다. 거룩한 제사장 나라의 역할을 감당해야 했던 이스라엘이 요나단에게 자극을 받아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이야기가 한 사람의 삶을 통해서 구현될 때 함께 나타는 변화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일어선 한 사람으로 인해 낙심했던 공동체 전원이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다는 이야기는 요나단 내면에서 요나단의 성품으로 형성되어, 요나단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변화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1] 개역개정, 사무엘상, 17:47.

[2] 개역개정, 사무엘상, 14:6.

[3] 개역개정, 사무엘상, 20:30–31.

[4] 개역개정, 사무엘상, 14:6.

[5] 개역개정, 사무엘상, 14:1.

[6] 개역개정, 사무엘상 14:15.

[7] 개역개정, 사무엘상 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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