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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성호 Nov 04. 2024

선택 2

더 나은 이야기를 선택하다

 영화 속의 상황처럼, 제가 처한 상황도 전혀 긍정적이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우리 가족이 고향을 떠나게 되자, 우리 가족이 완전히 망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고향에서 거제도 누나 집으로 전학 가기 직전,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남은 가족들은 흩어져야 했기 때문에, 우리 가족들 역시 고향을 떠날 때 비슷하게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넷째 누나는 멀리 강원도 있는 먼 친척의 농장으로 갔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막내 누나는 부산에 있는 한 야간 여자 상업 고등학교에 가서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학교에서 공부를 해야 했고 저는 거제도에 있는 둘째 누나 집으로 갔습니다. 할머니는 유일하게 남은 막내아들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고향에 남아있는 우리 가족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고향 집까지도 동네에 있는 친척 아저씨에게 팔렸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이 고향을 떠났을 때,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제 미래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았습니다. 


    고향을 떠나기 며칠 전, 몇몇 사람들이 제게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그들이 제게 진지하게 조언을 하거나 충고를 해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저를 격려하기 위해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조언들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전문가는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서 들은 정보들 중에 제게 도움이 될만한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 조언들 중 하나는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기 때문에, 그 조언이 제게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공부는 중학교 가서 잘하면 돼!! 초등학교 때보다 중학교 성적이 더 중요해.”

    비록 이 조언이 그다지 제 상황에 현실적이거나  적절해 보이지 않았지만, 그 말에는 무엇인가 희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조언을 마음에 간직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 공부는 중학교 가서 잘하면 돼.”

    저는 그 조언을 마음에 새기고 그 말이 진실로 옳은 말처럼 여기며 살았습니다. 실제로 그 말은 제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비록 그 조언을 한 형이 공부를 잘 한 사람도 아니고, 교육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저는 그 조언을 진리의 말씀처럼 제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꼭 붙잡았습니다. 


또 다른 조언을 해 준 사람도 있었습니다. 

“너보다 더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을 생각해 봐.
네가 너무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마.”

    이 말은 부분적으로 옳으면서도 전적으로 틀릴 수도 있는 말이었습니다. 저보다 더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고 해서 제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많이 하는 말처럼, “나만 힘든 건 아니지만, 네가 더 힘든 걸 안다고 해서 내가 안 힘든 건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말도 제 마음에 간직하였습니다.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일 수 있지만, 최소한 그 말은 제게 감사할 이유를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분명 저는 부모님이 계신 친구들보다 불리한 여건에 있었습니다. 또한 불리한 여건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 역시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외롭고 힘들고 지칠 때, 의지할 수 있거나 도움을 요청할 부모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보다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라는 말이 제게 준 도움은 제게도 감사할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들보다 더 나은 상황이라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제게도 주어진 것이 충분히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말도 해주지 않았지만 제게 큰 도움을 주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우리 옆집에 살고 있었던 친구의 어머니는 어머니의 장례식에 오셔서 제 등을 토닥여 주셨습니다. 등을 토닥여 주시는 따뜻한 손길에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조언이나 이야기가 힘든 상황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또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언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그 조언들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마음에 품고 그 상황을 견뎌낼 희망의 말들과 이야기들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이야기들을 제 마음에 간직했고 그 이야기들에 담겨 있는 희망을 따라서 나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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