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나나 Mar 24. 2016

#14 흘려보내는 시간도 필요하다

2011년도부터 시작한 동물간호사 생활이 벌써 6년째로 접어들었다.

그저 동물이 좋아 시작한일이 동물보호협회 직원에서 동물간호사로까지 확장되고 말았다. 이전에는 단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었던 직업을 말이다.


동물보호협회에서 내가 한일은 구조된 동물들의 입양처를 찾고 입양자가정을 심사, 면담하고 입양후 관리를 하는 일이 주된 업무였다. 호기롭게 시작했던 일은 불과 몇달만에 회의감을 갖게 했고 나의 유리멘탈로는 버틸수 없는 직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일전에 말했다시피 열악한 재정과 인력으로 전국의 모든 유기동물 학대현장출동, 구조, 병원치료, 입양 , 보호소 운영, 전국에서 걸려오는 도움의 전화 등등을 감당하기엔 왠만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버틸수 없었다. 게다가 회원들의 소중한 후원금으로 운영되니 한푼이라도 병원비에 써야지 직원 월급으로 많이 지출할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일을 어떻게 십년이 넘는 시간동안 버텨냈는지 협회 대표님이 진정 멘탈 갑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동물을 떠나고 싶지는 않아서 생각해낸 것이 결국 동물간호사였고, 운좋게도 바로 업종전환을 하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천직을 만났다.

솔직히 피만 봐도 기절할줄만 알았던 내가 간호사라니....지금 생각해보면 피식 웃음이 나기만한다.. 스크럽을 입은 나의 모습이 너무나 어색하기만 했던 근무첫날도 떠오른다. 남들보다 훨씬 늦게 시작한 일이어서 다른 간호사들과 띠동갑차이도 나고 원장님보다 내가 더 나이가 많기도 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 경력없고 나이도 많은 나를 뭘 보고 채용해주셨는지 지금도 이상하기만 하다. 그 고마움에 보답하고싶어 참 열심히 일했다. 출근하면 누가 시키지않아도 더 깨끗하게 청소하고 싶었고, 환자들이 불편한것이 없는지 그저 좋아서 하나라도 더 챙겨주게 되었다. 운이 좋게도 좋은 원장님과 동료들을 만나 지금에까지 이를수 있게 되었다.


허나 아무리 천직이라 생각했어도 왜 힘든일이 없겠는가..

의료도 서비스업이라 생각하는 시대이니만큼 세상에 존재하는 진상손님들은 동물병원에서 다  만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태어나서 처음 접해보는 모욕과 억울함, 모멸감에 몇번이고 그만두고 싶은 위기가 몰려오기도 여러번이었다. 내일 당장 때려치워야지 싶다가도 출근하면 꼬리 빠져라 나를 반겨주는 동물환자들을 보면 어느새 그 화는 눈 녹듯이 사르르 사라져버리는 걸 어쩌란 말인지...붕어의 기억력이 3초라지만 나의 기억력은 채 24 시간이 못되었던 것같다. 그나마 인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붕어나 나나 기억력의 차이는 딱히 없었던듯...나는 영원히 빠져나갈수 없는 '동물이라는 뫼비우스의 띠'에 갇혀버린 것이었다. 헤어나오면 할수록 점점 더 깊숙이 빨려들어가는 늪처럼 ...

.나는 어느새 동물을 탐닉하고 있었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안경" 이라는 영화가 있다. 2007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일본 오키나와현의 요론섬이 영화의 주무대인데, 정말 바다색이 아름답다못해 몽환적이다.가끔 병원일이 힘들고 떠나고 싶을땐 가끔이 영화를 보게된다.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카모메식당'의 전작들을 보면 이 감독의 영화 스타일이 어떤지 잘 알수 있을것이다. 한국에도 매니아가 상당히 많은 미니멀리즘의 끝판이라고 할수 있는 힐링영화..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어 돈도 벌고(물론 무지하게 박봉이긴 하지만)생활을 영위해나가는건 분명 축복받은 일이다. 하지만 늘 아프거나 버려지거나 죽는 동물 환자들을 매일 겪어내는건 그리 녹록치 않는 일이다. 그 속에서 무기력함을 느끼기도 하고 미로속을 걸어가는듯이 가끔 길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채 정처없이 발걸음을 옮기기도 한다. 그럴때마다 생각나는 이 영화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숙소를 찾아가며 꺼내든 간략하기 그지없는 약도에 적혀있는 주인장의 글씨...


왠지 불안해지는 지점에서 2분정도 더 참고가면 거기서 오른쪽입니다


이 약도는 저 멀리 바다건너에서 내게 전해주는 큰 울림이 있는 메세지같았다.  

가끔 내 직업으로 인해 힘들어질때 , 방향을 잃어버렸을때 , 이 길이 맞는지 계속 질문하게 되는 지점에 다다를땐 이 단순하기 그지없는 약도가 내게 한줄기 등대불이 되어줄 것같다. 2분만 참고 가다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무사히 도달하겠지? 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난 동물간호사라는 내 직업이 마냥 사랑스럽기만하다.

구글맵보다 더 뛰어난 정확성을 자랑하는 영화 '안경'속 약도!

앞으로 내 어지러운 마음속 구글맵이 되어주지 않겠니?





매거진의 이전글 #13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 했던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