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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채집자 Feb 16. 2016

찰칵! 마음의 온기를 채워주는
어루만짐

『윤미네 집』- 윤미 태어나서 시집가던 날까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시켜나가는 에너지가 바로 ‘관심(關心)’이라고, '마음의 매듭'이라 표현해주신 분이 있었습니다. 그렇지요, 관심은 그 자체로서 마음의 매듭입니다. 살다 보면 때론 그 매듭이 복잡하게 얽혀 풀어내야 하는 일도 생기고, 반대로 새로운 결속을 위해 매듭을 더욱 곤고히 엮게 되기도 하지요.

마음과 마음을 맺는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끈... 사람과 사람의 마음 가닥들로 엮게 되는 마음의 매듭. 하지만 요즈음의 우리가 살아가는  마음자리엔 그러한 관계 맺음보다는, 외면과 무관심이란 단어가 더 익숙하게 자리 잡아가고 있는 풍경들을 마주할 때가 많지요.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이라는 이름에게 조차도요.


빨간 광목천으로 단정하게 장정된 양장본. 그 위에 간결하게 박혀있는 하얀 글씨의 제목. 띠 종이로 감싼 겉표지의 흑백사진엔 비스듬히 들어오는 햇살을 받고 환하게 웃고 있는 한 여자 아이, 그리고 아이 곁에서 카메라를 쥐고 막 셔터를 누르며 미소 짓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 그들에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전몽각의 사진집 『윤미네 집』은 이따금씩 손 안에서 펴 들 때나 그 책을 머릿속으로 떠올릴 때면, 어김없이 마음을 두드리고, 여운을 안겨주는 책입니다. ‘잊혀져 가는 것을 떠올리게 하고, 다시 숨 쉬게 하는,’ 시간의 기억과 망각 사이에 놓여진 사진이라는 다리.『윤미네 집』은 한 아마추어 사진작가가 딸과 함께 한 26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한결같은 마음의 애정 어린 시선으로 오롯이 담아낸 ‘가족에 대한 작은 전기(傳記)’입니다. 

필름 카메라로 담아낸 오래된 흑백사진들 속엔 갓 태어난 아기가 엄마의 품에서 자라나 새로운 동생들을 맞이하고, 꼬맹이에서 소녀로, 소녀에서 숙녀가 되어 하얀 면사포를 쓰게 된 순간까지,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이 어려있습니다. 유난히 맑게 빛나던 윤미의 눈망울, 순간순간의 감정들이 담긴 꾸밈없고 생생한 표정들, 윤미와 함께 하는 가족의 하루하루가 마치 일기처럼 담긴 담백하고 아련한 풍경들에는 그 렌즈 너머 항상 가족을 지켜보고 그 마음을 엮고 있었을 아버지의 따뜻한 시선이 스며있어 가슴 한 켠을 지그시 눌러오지요. 


1964년부터 1986년까지. 사진집에 뒤에는 당시의 기억과 그 시절 삶의 풍경과 추억들을 꼼꼼히 적은 기록들도 모아져 있다.



태어나 유년시절까지 가족들과 떨어져 외할머니 손에서 자란 내게, 낯설고 어색하게만 다가왔던 부모님의 존재, 울타리 보다는 벽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거리감... 유년의 독사진이라곤 한 귀퉁이가 찌그러진 커다란 양철통 위에 앉아 웃고 있던 두 살 무렵의 모습이 유일한 나에게, 윤미네 집 아버지의 다정하고 따뜻했던 시간의 기록들은 내가 가져보지 못한 시간의 빈자리를 대신 채워주는 듯했습니다. 한 장 한 장 사진 속 윤미네 집을 넘겨보면서 나는 그 풍경들 속에서 나의 형제와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덧대어 보기도 하고  아른아른 잠들어 있던 지난 기억들을 깨워 꺼내보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함께 나누고 웃던 내 형제들의 모습들이 겹쳐지기도 하고, 부모님과 다섯 형제 우리 일곱 가족이 모두 함께 살았던 옛집에서의 추억도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아가의 헝겊 기저귀, 아이의 눈이 감기는 인형, 양은냄비와 밥상, 재봉틀 같은 낯익은 세간살이들. 부엌, 골목길, 담장 밖 시멘트로 만든 쓰레기통.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나의 언니, 오빠를 떠올리게 했던 교복과 졸업사진... 그리고 서울의 옛 풍경들...  사진 속 인물 주변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그때 그 시절’의  정겨운 흔적들과 함께  머릿속에서 필름처럼 스쳐가는 지난 시간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윤미네 집의 사진들을 통해서 작가는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잊고 살아온, 기억에 묻힌 작고 소소한 일상에도 분명 반짝이는 것들이 있음을, 소박하지만 소중한, 내 아름다운 풍경들이 있음을... 


윤미가 태어나서 시집가기까지의 일상의 기록들을 필름에 담아냈던 아버지의 작업은 딸이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가게 되면서 더 이상 진행될 수 없었고, 비행기가 뜨면 하늘을 보는 일이 습관이 되어버린 아버지의 시간들은 그동안 수북이 쌓아둔 필름들을 정리하고 인화하는 일로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리움의 시간들로 길어 올린 한 장 한 장의 사진들.



개인 사진전을 열면서 20년 전 발행되었던 것을 다시 복간한 이 책엔, 작가가 말년에 암으로 생을 마감하면서 소풍 떠나듯 자신의 삶을 추억하며 아내를 위한 마지막 선물로 남긴 또 하나의 기록, <마이 와이프(mywife)>의 사진과 이야기들도 담겨 있습니다. 


『윤미네 집』은 사람의 마음이 오가고 열리는 길에서 촘촘하고 올 고른 마음의 매듭들이 삶의 아름다운 무늬를 이루게 함을 새기게 합니다. 가까이에 있는 것들, 지금 내 곁에 있는 얼굴들, 그리고 곧 사라지는 것들에는 마음이 지나는 순간 머물렀던 자리, 쉬이 지나치는 시간들이 그 순간을 감싸는 향기와 빛깔을 지닌 소중한 삶의 조각들이라는 걸 일깨웁니다.

어제를 돌아보는 오늘이, 또 다른 내일을 만들게 하지요. 사람 사는 일의 기쁨과 행복은 애써 찾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는 걸. 하루하루를 깨어있는 느낌으로 살아가야 하는 일임을 마음의 소리로 들려주는 책, 『윤미네 집』을 여러분께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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