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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짱 Apr 13. 2024

허망하다는 말의 뜻

[하루 한 편 구비구비 옛이야기] 정주시 설화 20

허망하다는 말이 있어요. "나, 참 허망한 꼴 봤네." 이런 말도 하고요. 허망하다는 거, 무슨 말일까요? 사전 찾아 보면 한자는 '虛妄'이고, "1                  거짓되어 망령(妄靈)됨, 2                  어이없고 허무(虛無)함, 3                  거짓이 많고 근거(根據)가 없음."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죽음 같은 것을 혹시 허망하다고 하려나 싶지만, 죽음도 여러 가지라 늙어서 명대로 살다가 죽은 것은 허망이 아니라고 구연자가 설명합니다. 그 '허망하다'는 말과 관련된 이야기를 이렇게 소개하시네요.




한 여자가 이 '허망하다'는 말의 뜻이 알고 싶었다. 아버지에게 물어봐도 "아, 허망헌 일을 보먼은 허망허다 소리가 나오지야?" 한다. 어머니에게 물어 봐도 소용없었고 누구 하나 그 대답을 똑부러지게 알고 얘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허망한 일을 보면 허망하다고 하지, 뭣을 꼭 지칭해서 허망하다는 말을 지적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여자는 결국 그 말 뜻은 알지 못한 채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남편에게도 물어보고 시부모에게도 어렵게 물어 봤지만 답을 듣지 못하였다. 그런데 하루는 아침 밥을 하면서 샘에 물을 길으러 나갔는데 중이 하나 지나가다가 그릇을 청하기에 물을 주며 중을 붙들고 물었다.

"거 허망허다는 얘기 안 있소, 근디 뭣을 보고 허망허다고 허는 것이요. 고것을 내가 알고 싶어서 시방 죽겄소."

"그려요. 아, 그렇게 쉬운 것을 뭐 알으실라고 그러쌓소?"

"꼭 좀 일러 주시요."

"그러먼 내 발자욱만 디디고 저만치만 따라오시오. 그러면 일러 드리리다."

여자가 중을 따라 몇 발짝 갔나 싶었는데 깊은 산중에 턱 들어섰다. 폭포수가 내려가고, 절간 같은 집이 있었다. 느닷없이 그런 데가 나오니 여자가 놀라서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다. 중은 여자 집에서 수백 리 먼 곳이라고 하면서 이제는 갈 곳 없이 자기와 살자고 하는 것이었다. 여자는 오도가도 못하고 어쩔 수가 없어 그곳에서 중과 함께 살게 되었다. 대번에 아이도 갖게 되었고, 어느덧 삼형제를 낳아 키우면서 그 재미에 빠져 살았다. 아이들이 글공부도 잘했는데, 큰아들이 스무 살 정도 되었을 때 과거 본다고 삼형제가 함께 떠났다. 그리고 장원급제 했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행차하며 집에 오던 날 느닷없이 큰비가 내려 다리가 무너지는 바람에 삼형제가 한꺼번에 떠내려가 버렸다. 소식을 들은 부부는 이거 우리가 살아서 뭣 하겠냐, 죽어 버리자 하고는 폭포수 꼭대기에 올랐다. 둘이 똑같이 죽자고 하였는데 영감이 마누라만 툭 밀어 버렸다. 폭포수에서 둥글둥글 떠내려오던 여자가 어딘가에 걸렸는데, 벌떡 일어나서 보니 폭포수도 없고 그냥 자기 살던 동네 앞 샘에 서 있는 것이었다. 이게 꿈이냐 생시냐 하고 보니 자기가 길어 놓았던 동이가 그대로 있고 자기 집도 그대로 있었다. 물동이를 이고 집에 들어갔더니 남편이 먹었는데 물을 이제 가져오냐고 하였다. 여자는 이제 허망의 뜻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는 대체 왜 하게 되는 걸까요? 허망하다는 말의 뜻을 깨달으면 일생 사는 데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요새 가상현실이나 메타버스, 멀티버스 같은 개념들이 등장하는데요,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같은 영화도 떠오르고요. 여자가 경험한 것은 평행우주일까요? 가상현실인가요? 멀티버스 중 어느 하나를 체험했던 걸까요? 마치 장자몽처럼 나비가 나인가 내가 나비인가 싶기도 하지요. 

'집착하는 모든 현실은 허망하다'는 말도 있더라고요. 진실을 알고자 하고 호기심을 갖고 탐구하는 것도 좋지만, 어떤 것은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아지는 것이기도 하고, 내가 옳다고, 중요하다고,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것들이 사실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던 경험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경험을 해 보았다면 차라리 다행인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이야기 속 저 여자처럼 저 정도 경험을 해야만 꼭 허망하다는 말의 뜻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허망할 수 있음의 가능성인 것은 아닐지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명대사


어떤 성취나 성공의 결과라기보다 그 모든 거절과 실망의 결과 내가 지금 여기 있음을 인정하는 것, 부질없음을 말하면서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 괴로움과 죄책감을 지우는 것. 뻔뻔한 회피일 수 있지만 어느 순간 어떤 이에게는 절실하게 필요한 삶의 태도일 수도 있겠습니다. (지금의 나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일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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