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 기록] 늑대의 뼈를 모으는 노파, 라 로바 이야기
서담재 독서모임에서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을 읽기 시작했다. '원형심리학으로 분석하고 이야기로 치유하는 여성의 심리'라는 매력적인 부제를 갖고 있다. 지은이 클라리사 에스테스는 융심리학 전문가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여걸'(wild woman)은 '여성 본연의 본능적 자아'를 말한다. '길들여지지 않은'(wild)은 '통제할 수 없는'으로 해석하는 말이 아니다. 본래 의미대로, '자연스런 삶', '피조물이 본연의 건전한 한계를 지켜나갈 수 있는 생활 방식'으로 해석하길 바라며 가져온 말이라고 한다.
"따라서 여걸에 대한 이해는 실천이자 진정한 의미의 심리학이다. 여걸은 영혼 자체, 혹은 영혼에 대한 지식이다. 여걸이 없는 여성은 자신의 영혼에 대한 이야기나 내면의 리듬을 인식할 능력이 없고, 어떤 시커먼 손이 내면의 귀를 막아버린다." (17p)
그 시커먼 손이란, 관습이나 제도, 원리원칙, 당위, 도리, 자기신념 등 교육에 의해 내면화된, 옳다고 의심 없이 믿고 있는 것들을 모두 포함할 것이다.
여걸을 되살려내기 위한 과정에서 첫 번째 제시하는 이야기가 '늑대의 뼈를 모으는 라 로바'이다. 저자가 푸에블로 인디언에게서 들은 골족(bone person)의 이 이야기는, 세상에서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들, 특히 늑대 뼈를 모으는 노파 라 로바가 주인공이다. 라 로바는 늑대의 뼈를 모아 골격을 재구성한 뒤 모닥불을 피우고 노래를 시작한다. 그러면 늑대의 뼈에 살이 붙고 털이 돋기 시작하며 마침내 눈을 뜨고 달려가다 별안간 여인으로 변해 갈깔 웃으며 지평선을 향해 달아난다.
이 늑대 뼈는 꼭 '상실' 대상만은 아닐 것이다. 혹은 '결핍'이나 '부재'로 이해할 것도 아닐 것이다. 우리가 찾아야 할 나의 뼈는 '배제'되어 있던 그 무엇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정수이자 원형으로서 존재하는 뼈가 있을 텐데 어떤 이유로 잠시 어두운 면으로 밀려나 있던 그것이다.
라 로바가 나타나 내게 노래해주고 숨을 불러넣어주길 기대해 본다. 내게는 '이야기'들이 그 역할을 해주고 있기에, 나와 관계 맺는 이들 또한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뼈를 찾는 일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키키 스미스라는 작가의 전시회가 2023. 03. 12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있었다고 한다. (봤으면 좋았을걸, 이런 정보를 왜 몰랐을까, 한탄스럽다.) 아래 사진은 키키 스미스의 대표작 <황홀>이다. 한 여성이 늑대의 배에서부터 당당하게 걸어나오는 모습인데, 작가 스스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나 달 위에 앉아 있는 성모 마리아의 전통적인 도상에 비교하기도 했다고 한다.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빨간 모자'를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 늑대의 야성을 몸으로 체감한 뒤 재탄생하는 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