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온전히 네가 될 수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점이 땅콩처럼 커지고 서서히 사람의 형태를 갖추어가고 정기검진을 다녀올 때마다 흑백 초음파 사진이 늘어간다.
무럭무럭 자라는 아가가 신기하다. 한켠에 몸을 절반으로 접아 아크로바틱 하게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집이 좁아서인가, 엄마가 미안해 큰집이 아무래도 좋겠지?' 하는 조바심에 "아무래도 아기 자세가 불편해 보이는데 괜찮을까요?"라고 질문하니 아가가 가장 편안하고 좋은 자세로 있는 거라고 한다.
아무래도 똑바로 누워있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선생님도 아가에게 직접 물어보진 않은 거니 의심을 가지면서도 딱히 묘수도 없어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아가의 존재감이 더욱 커지고 나서는 슈퍼맨 마냥 손과 다리를 반대 방향으로 동시에 뻗어 스스로 배를 뚫고 나오려는 시도인가 싶은 시기가 있었다. 출산 후에는 주로 엄마가 바닥에 누워있거나 앉아있고 아가는 걷지도 못하는 거의 하루 종일 서서보는 뭔가 역전된 상황들이 왕왕 생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가에게 나를 투영해 '너도 이게 좋지, 그건 불편해 보이는데'라는 생각이 어쩌면 관심과 사랑은 핑계였고 상대의 마음을 알 필요 없이 안물안궁인 내 불편함의 표출이었나 싶다.
임신기간 동안 24시간 함께하며 느꼈던, 이보다 누군가와 가까울 수 없다는 친밀감이 어쩌면 타인보다도 자식을 배려하지 않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싶어 조심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친정엄마가 떠올랐다 잔소리가 통제로 느껴져 아직도 종종 신경질을 내는 철없는 큰딸과 애엄마를 겸직하고 있는 상황.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가까웠던 시절. 엄마는 아직 그때에 머물러있는데 나만 세상을 향해 떠나 많은 사람과 가까워지고 엄마는 혼자 그 자리에 우두커니 남아있다. 마음이 아릿하게 저리지만 오늘도 안부로 시작해 잔소리를 끝나는 엄마의 전화에 삐진다.